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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인성교육 잘 되는데 … 초등 1학년 교실은 정글의 법칙

중앙일보 2012.01.04 03:00 종합 4면 지면보기
3일 숙명여대 부설 유아원에서 어린이들이 남을 배려 하고 사회성을 기르는 인성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해 예절 바르게 인사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오종택 기자]


학교폭력은 범죄다. 가해 학생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 학교폭력의 70%가 중학교에서 발생하지만 현행법으로는 등교정지 10일이 고작이다. 폭력을 행사하면 강제 전학이나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근본 대책은 예방이다. 전문가들은 옳고 그름을 익히는 초등 저학년까지 자존감을 키워주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잘못이라는 인성교육을 청소년들에게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① 인성교육 전담교사 1만 명 보내자



지난해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김모(36·서울 서초구)씨는 학교에서 아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를 다른 엄마들에게 귀동냥으로 듣는다. “요즘은 1학년에도 ‘정글의 법칙’이 있어요. 반에서 힘이 센 아이 밑으로 죽 서열이 있는…. 선생님은 이런 얘기를 전혀 안 해 주세요.”



 아이에게 ‘누가 누구를 때렸다’는 말을 들은 엄마가 피해 학생 엄마에게 귀띔해 주지만 그나마 친한 경우다. 가해 학생 엄마는 “그럴 리 없다”며 이런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는다. 김씨는 “유치원 선생님은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가르치고 가정에도 자세히 전달해 줬다”며 “초등학교는 학교폭력 예방 내용을 가정통신문에 한 학기 한 번 보내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학교폭력은 갈수록 일상화·집단화하고 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의 초·중·고생 조사(2010년)에서 “교내 폭력서클이 있다”는 응답은 2008년 11.2%에서 지난해 14.4%로 늘었다. 연령도 낮아지고 있다. 폭력 피해를 경험한 시기는 초등 4~6년 14.2%, 중1 7.4%, 초등 1~3년 6.9% 순이었다.



한국교총 수기공모전 대상을 받은 경기도 G초교 김모(49) 교사는 “6학년 교실은 도가니다. 힘센 남학생 두 명이 ‘절대권력’으로 군림하며 장애학생에게 물을 붓고 얼굴을 걸레로 닦았다”고 말했다. 가해 학생들은 괴롭히지 않는 대가로 상품권도 받았는데, 망을 봐주겠다며 아첨하는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김 교사는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처럼 교실엔 가해자·피해자·침묵하는 자가 섞여 있다”고 토로했다.



 학교폭력은 수습이 쉽지 않아 예방교육이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특히 초등 저학년까지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자존감과 감정조절 능력 등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유치원·어린이집에서 놀이·체험 형태로 받던 인성교육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싹 사라진다.



중앙대 장영은(가족복지학) 교수는 “유치원·어린이집 교과 과정에는 규범을 가르치는 내용이 들어 있다”며 “초등학교부터는 제대로 된 수업 안이 없는 데다 사교육이 시작되고 교사도 가정에 책임을 돌리곤 한다”고 지적했다. 초등 5학년부터 선행학습을 시작해 중·고로 갈수록 인성교육은 요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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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 3년까지 기본 가르치자=서울의 한 초교 교장은 “캐나다 초등학교를 방문했더니 3학년까지는 사회성을 기르는 데 초점을 두고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줄 서기와 조용히 하기만 가르치는데, 교과 과정이 덜 빡빡한 저학년 때 자존감을 길러 줘야 한다.



암기과목으로 전락한 도덕·사회·가정과목은 교육과학기술부가 학생에 도움이 되게 바꿔야 한다. 장 교수는 “영어시간에도 자신을 사랑하는 법 등 수업방식만 바꿔도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초·중·고 1만1000여 곳에 인성교육 전담 교사를 파견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교사들은 “인성교육법을 배우지 못했고 학교폭력이 발생해도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학교별 상담교사에게 인성교육법을 익히게 해 파견하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대구의 중학교 교사는 “학교·교원평가에서 학력 향상을 주로 보기 때문에 교장에게 ‘인성교육은 안 해도 된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교과부가 학교폭력을 발굴해 해결하는 학교·교사에게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교과부 관계자는 “담임 업무를 줄여 생활지도에 나서게 하고 교사 연수에도 생활지도 비중을 늘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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