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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국민 행복하게 해야 … 판사 무절제 발언에 신뢰 추락

중앙일보 2012.01.04 00:00 종합 12면 지면보기


2012년 한국 사회는 갈림길에 섰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은 새로운 리더십을 놓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충돌하는 장이 될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할지, 후퇴할지 결정될 것이다. 이강국(67) 헌법재판소장에게 인터뷰를 청한 것은 헌재가 또다시 사회 변화의 풍향계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소장과 마주 앉으면서 임기 6년 중 마지막 1년을 남겨놓은 그가 세우고자 한 헌법의 가치는 무엇인지, 우리 사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궁금했다. 헌법이란 한마디로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지요. 나는 인간이 추구하고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단계가 행복이라고 봅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어요. 어디까지나 행복으로 가기 위한 수단, 조건일 뿐입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임기 1년 남은 이강국 헌법재판소장, 한국사회를 말하다



-중앙일보·동아시아연구원의 ‘2011년 파워조직 영향력-신뢰도’ 조사에서 헌재가 국가기관 중 1위를 기록했는데요.



 “새해 벽두에 감회가 새롭습니다. 꿋꿋하고 의연하게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지킴으로써 국가와 사회의 통합을 위해 노력해온 것을 국민께서 평가해주신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난 5년을 평가한다면.



 “우리 4기 재판부에선 사회적 쟁점에 관한 헌법적 문제들이 많이 제기됐습니다. 사회의 다양한 욕구를 헌법의 관점에서 판단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대목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한국언론법학회 등은 ‘미네르바 헌법소원’ 위헌 결정을 ‘2011년 최고의 재판’으로 선정했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인터넷 선거운동을 허용하는 결정을 했다. 이 두 결정엔 어떤 사회적 의미가 있는 걸까.



 “표현의 자유는 현대 민주사회에서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국가권력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때는 최소한에 그쳐야 합니다. 제한의 목적과 절차, 방식이 명확해야죠. 미네르바에게 적용됐던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에 대한 위헌 결정은 그 기준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유언비어가 나돌면 사회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있습니다.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걸러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허위나 오류를 담거나, 결과적으로 봤을 때 해악을 가져올 의견도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그런 의견들을 ‘공익을 해친다’는 모호한 요건으로 솎아내려고 하는 건 자칫 정치적 표현 행위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자정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명예훼손 등 다른 처벌 법규를 적용하고, 필요하다면 국회 입법을 통해 정리해야 합니다.”



 -인터넷 선거운동 허용 결정도 같은 맥락입니까.



 “물론 그런 점도 있지만 인터넷의 효용성을 새롭게 주목하고 평가한 결과입니다. 인터넷은 어떤 한쪽에만 많은 기회를 주는 게 아니고, 비용도 적게 들어요. 돈은 묶되 입은 풀어야 한다는 선거법 정신에 맞습니다. 또 총선, 대선, 지방선거, 재·보궐선거 등이 맞물려 돌아가는 상황에서 ‘선거일 전 180일’로 제한하면 국민이 너무 장기간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해 아무런 의사 표시를 할 수 없게 될 수 있습니다.”



 -현행 선거법(254조 2항)은 정보통신망 등을 통한 사전선거운동을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데 서로 충돌하는 건 아닙니까.



 “1차적으로는 법 집행기관이 판단할 문제이지만 헌재의 위헌 결정 취지가 254조 2항을 적용함에 있어서도 충분히 고려되고 참작돼야 할 겁니다.”



 -조용환 재판관 후보자가 지난해 6월 국회 청문회에서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대해 “정부 발표를 받아들이지만 보지 않아 확신이란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습니다. 이후 재판관 공백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우리 헌법은 헌재를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도록 하고 있는데 6개월 넘게 후임 재판관이 임명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헌법 위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헌재를 구성해야 할 책임 있는 기관들은 헌법 위반 상태를 빨리 끝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재판관 한 명의 의견으로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 주요 사건들은 뒤로 미뤄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헌재가 일부 정치적 사건에서 정치권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정색을 하며) 헌재가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바로 그겁니다. 우리 사회는 헌재 결정을 너무 정치적·사회적으로 견강부회하는 경향이 있어요. 헌재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선 국민께서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 소장은 헌재와 대법원을 통틀어 최고참(1967년 사법시험 8회 합격)이다. 그는 후배 판사들의 SNS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는 “법원과 법관을 아끼고 사랑하는 선배의 충정으로 말씀드리고 싶다”며 이렇게 답했다.



“일부 판사는 ‘우리도 표현의 자유가 있지 않으냐’고 주장합니다. 물론 모든 국민이 표현의 자유를 갖지만 헌법은 공무원, 특히 법관에 대해선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요. 더욱이 판사들이 정치적·사회적 현안에 대해 비속어나 품위 없는 표현을 써가며 절제 없는 개인 소신을 피력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법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크게 추락시키는, 아주 잘못된 행동입니다. (잠시 말을 멈춘 뒤) 판사들이 근래에 너무 자주 집단행동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에 대한 견해는.



 “성장통으로 봐야 합니다. 보수는 탐욕을 버리고 따뜻하고 건강한 보수, 개혁하는 보수로 진화해야 하고요. 진보도 이념 과잉에서 벗어나 책임 있는 진보, 역사와 국민 앞에 겸손한 진보로 발전해야 합니다.”



 -내년 1월 임기를 마친 뒤 계획은.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없는지 생각해보려 합니다. 개인적인 희망이 있다면 통기타를 배우고 싶습니다. (웃으며)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어서요.”



권석천·이유정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이강국 소장=전북 임실 출신. 전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을 거쳐 대전지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역임했다. 2000~2006년 대법관으로 재직했다. 판사 시절 독일 괴팅겐대에서 헌법학을 전공하고 고려대에서 헌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 판사들의 ‘대법관 인선’ 집단반발 당시 법원행정처장이었다. 당시 차장이 양승태 현 대법원장이다. 십팔번은 해바라기의 ‘사랑으로’와 서유석의 ‘가는 세월’. 가수 임재범을 좋아한다. 최근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부친은 고(故) 이기찬 변호사이고, 장남은 이훈재 사법연수원 교수로 3대가 법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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