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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흑룡

중앙일보 2012.01.04 00:00 종합 33면 지면보기
임진년(壬辰年)의 임(壬)은 방위로 북방(北方)이고 색으로는 흑색(黑色)이고, 진(辰)이 용(龍)이니 흑룡의 해다. 옛날에는 金·木·水·火·土의 오행(五行)의 상생으로 왕조가 흥망(興亡)한다고 보았다. 주(周)나라가 화(火)이니 진시황(秦始皇)은 화(火)를 이길 수 있는 수(水)를 내세워 전국을 통일했다. 『사기(史記)』『한서(漢書)』 등은 진시황의 선조 “진문공(秦文公)이 사냥에서 흑룡(黑龍)을 얻었으므로 수덕(水德)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조선 개국도 흑룡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성계의 조부인 도조(度祖) 이춘(李椿)의 꿈에 함경도 경흥(慶興) 남쪽 연못(南池)에 사는 백룡(白龍)이 나타나 한 번 도와주면 후세에 큰 경사가 있으리라고 말했다. 다음 날 연못으로 가니 흑룡과 백룡이 싸우고 있기에 명사수 이춘이 흑룡을 쏘아 죽였다. 그 피가 연못을 붉게 물들여서 적지(赤池), 또는 용을 쏘았으므로 ‘사룡연(射龍淵)’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보면 흑룡을 죽인 공으로 건국한 조선이 흑룡의 해인 선조 25년(1592) 임진년에 일본의 침략을 받은 것도 우연만은 아니게 된다.

 조선이 청나라와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를 세운 해도 숙종 38년(1712) 임진년이었다. 이때 조선 대표인 박권(朴權)·이선부(李善溥)는 청나라 대표인 오라총관(烏喇總管) 목극등(穆克登)이 늙었다고 따라오지 말라고 하자 역관(譯官) 김경문(金慶門)만 딸려 보내는 한심한 작태를 보였다. 그나마 김경문이 다퉈서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이 된다(西爲鴨綠, 東爲土門)”는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진다. 『만기요람(萬機要覽)』 ‘백두산정계’조는 “비문에 동쪽이 토문강이라고 했으면 토문강의 발원지에 세워야 마땅했다”며 “그때 한 사람도 쟁변하지 못하고 수백 리 강토를 잃었다고 식자들이 한탄했다”고 전하고 있다. 『만기요람』은 또 윤관이 만주의 속평강(速平江)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비를 세웠는데, ‘이 비를 증거로 내세워 따지지 못한 것도 한스럽게’ 여기는 기록을 남겼다.

 대한제국 말기 매국 단체 일진회(一進會)에 합방청원을 내게 조종했던 일본 대륙 낭인 계열의 도야마 미쓰루(頭山滿)·우치다 료헤이(內田良平) 등이 결성한 극우파 단체가 흑룡회(黑龍會)였다. 일제시대가 좋았다는 일본 극우파의 침략 논리가 이 땅에서 다시 고개를 쳐드는 가운데 맞은 흑룡의 해! 도조 이춘의 심정으로 무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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