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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의 시시각각] 진중권과 김명호

중앙일보 2012.01.04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
구경 중 최고는 싸움 구경이라 했던가, 요 며칠 나를 흥미진진한 논박의 세계로 이끈 건 진보적 시사평론가 진중권이었다. 그는 지난해 말 굵직한 전투 몇 건을 동시다발로 치렀다. ‘나는 꼼수다’ 비판부터 사상 전향 논란까지. 상대는 공교롭게 모두 진보진영이었다. 각 이슈들을 되짚어가다 새삼 감탄했다. 이 사람, 놀랍도록 변하지 않았구나.



 그를 인터뷰한 건 7, 8년 전이었다. 무미(無味)한 만남이었건만 묘하게 잔영이 길었다. 당시 그는 온라인상에서의 집요한 논전으로 좌파 선동꾼이란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하나 내가 본 그는 뼛속 깊이 철학자였다. 끝없이 회의(懷疑)하는, 무지와 비논리를 못 참아 하는, 사람들을 화나게 해서라도 이성(理性)을 자극하고 싶어 하는. 그에게 ‘내 편’은 없었다. ‘무식하고 촌스럽고 타락한 것’이면 보수든 진보든 가리지 않고 가차없이 공격했다. 가장 혐오하는 건 맹신과 극단주의였다. 주사파나 극우세력처럼 “정치 가지고 종교 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는 “종교적 욕구는 절이나 교회 가서 푸시고 정치는 맨정신으로 하라”고 일갈했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오늘도 그의 전쟁은 현재진행형인 듯하다. 그는 나꼼수의 전략과 효용을 십분 이해한다. 그럼에도 일부 방송 내용을 “저열하고 비열한 공격”이라 비판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아니면 말고’ 식의 사생활 이슈를 들고 나온 데 대한 우려다. 진보진영에서 정명훈의 연봉 삭감을 주장하자 “예술의 문제는 예술의 논리로 풀어야 한다”고 맞섰다. 이윽고 대표적 좌파 논객인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로부터 직격탄이 날아왔다. 일련의 발언을 문제 삼아 그를 ‘거래를 전제로 주류에 귀환한’ 전향자로 못 박은 것이다. 이런 술렁임에 ‘적의 적은 내 친구’라며 물색없이 좋아하는 보수 인사가 있다면 냉수 한잔 드시고 속 차리길 권한다.



 진중권은 좌파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지향이 사민주의+무정부주의+녹색당임을 분명히 해왔다. 내 생각에 외려 그는 우리나라 진보진영의 백신이자 최전방 수비대다. 진보의 약한 고리를 미리 쳐 내부 쟁투를 유발하고 논리적 방어막 형성에 기여한다. 그 과정에서 여러 오해를 받지만 개의치 않는다. 과거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나에 대한 공격은 세 가지다. 싸가지 없다, 애정이 없다, 기분 나쁘다. 어떤 것도 날 논리적으로 감동시키지 못한다. 당연히 화도 안 난다.” 당시 인터뷰 제목으로 ‘과성숙과 미성숙의 절묘한 동거’란 표현을 쓴 이유다.



 같은 맥락에서 요즘 유독 관심을 끄는 이가 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주인공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다. 그는 1995년 대학별 고사 수학문제의 오류를 지적했다가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관련 소송에서 거듭 패소하자 2007년 항소심 재판장에게 석궁을 쏜 혐의로 징역 4년형을 받았다. 지난해 출소한 그는 사법부가 괘씸죄를 적용해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고 항변한다. ‘수학처럼 정확한 우리 법’을 판사들이 앞장서 훼손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금 “법대로!”를 외치며 각종 소송을 진행 중이다. 대상은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사법부가 법을 어겨도 왜 국민과 시민단체가 못 막는지 아는가? 제 입맛에 맞으면 지지하고 안 맞으면 반대하기 때문이다.” 룰을 지키는 게 진정한 보수라 믿는 그의 신념은 정치논리와 반지성적 정파주의를 혐오하는 진중권의 그것과 상통한다.



 이런 이들의 존재는 집단을 불편하게 한다. 하지만 성숙한 사회, 유능한 리더라면 그 가치를 과소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IBM 창업자 토머스 왓슨은 저서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승진시키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말 뭐가 사실인지를 말하는 반항적이고 고집 센, 거의 참을 수 없는 타입의 사람들을 항상 고대했다. 만약 우리에게 그런 사람들이 충분히 많고 우리에게 이들을 참아낼 인내가 있다면 그 기업에 한계란 없다’. 정당도, 사회도 마찬가지 아닐까. 발전과 혁신은 ‘다른 목소리’에서 나온다.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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