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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이재오 용퇴론’ 수습 나섰지만

중앙일보 2011.12.30 00:00 종합 6면 지면보기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29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김형수 기자]
개인적 돌출발언이냐, 박근혜의 차도지계(借刀之計, 남의 칼을 빌려 상대를 침)냐.


이상돈 비대위원 주장에 발칵 뒤집힌 한나라

 한나라당 이상돈(중앙대 교수) 비상대책위원이 28일 ‘이재오·이상득 용퇴론’을 제기하면서 당이 발칵 뒤집혔다. 직격탄을 맞은 이명박계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이명박계 안형환 의원은 29일 “이명박계 의원들이 박 위원장에게 고개 숙이고 조용히 있는 것은 지금이야말로 당이 화합해 쇄신의 동력을 모을 때라고 생각해서인데 지금 개인의견을 앞세워 당의 화합을 깨는 발언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재오 의원과 가까운 이군현 의원도 “이재오 의원이 현 정권에서 무슨 득을 봤느냐. 정권창출 1등 공신이면서도 2년 동안 유배 갔다 오지 않았느냐”며 “비대위는 공정한 공천 원칙만 세워야지 구체적으로 누구를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월권”이라고 반발했다.



이상돈 비대위원
 이재오 의원은 이날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용퇴론에 대한 질문을 받았지만 “오늘은 할 말이 없다”며 답을 피했다. 한 이명박계 의원은 “비대위가 이런 식으로 나가면 박 위원장이 외부 인사의 입을 빌려 정적(政敵)을 제거하려 한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상돈 위원으로부터 “이상한 발언으로 당을 웃음거리로 만든 전직 지도부”로 지목된 홍준표 전 대표는 더욱 노골적으로 반격했다. 그는 이 위원의 과거 발언을 겨냥해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을 부정하는 사람을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둬서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이 위원은 지난해 자신의 블로그에 천안함 사건이 외부 공격이 아니라 선체피로에 따른 누수 사고일 가능성을 제기한 적이 있다. 홍 전 대표는 또 “당에 부담을 주는 요인은 하루빨리 제거해야 한다”고 한 김종인 비대위원에 대해서도 “검사 시절 내가 (동화은행 뇌물수수 사건에서) 자백을 받았던 사람”이라며 자격을 문제 삼았다.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이 29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 참석했다. 이날 이 의원은 이상돈 비대위원이 전날 주장한 ‘이재오?이상득 용퇴론’에 대해 “오늘은 할말이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박근혜 위원장은 진화에 나섰다. 그는 이날 의원총회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이상돈 위원의 주장에 대해 “개인 의견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또 의총에서도 “쇄신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단정적으로 누구는 쇄신 주체이고, 누구는 대상이라고 해서는 쇄신이 성공할 수 없다”며 분위기를 추스르려 했다. 박근혜계 핵심인 유승민 의원도 “비대위원들은 앞으로 무엇을 할지 원칙과 순서를 정해 놓고 일을 진행해야지 중구난방으로 떠들면 안 된다”고 견제에 나섰다.



 이상돈 위원도 이날 “파장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며 추가 발언을 자제했다. 하지만 파문이 쉽게 가라앉진 않을 듯하다. 이 위원의 주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당내 쇄신파와 박근혜계 강경 그룹에서 공공연히 나돌던 얘기다.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의식해 섣불리 공론화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던 차에 당 밖에서 날아온 이 위원이 거침없이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다. 이 때문에 당내엔 이 위원이 “거칠긴 해도 할 말은 한 것 아니냐”는 반응도 많다.



 쇄신파 권영진 의원은 “(이상돈 위원이) 국민이 생각하는 것을 얘기해 준 것 아니겠느냐. 우리에겐 아픈 얘기지만 국민의 상식을 대변한 것”이라고 거들었다. 원희룡 의원도 “비대위가 방향을 잘 잡고 있고 ‘점령군’이란 소리가 나올 정도로 해야 한다”고 옹호했다.



 박 위원장은 2008년 총선 때 자신의 계파가 ‘공천 학살’ 당했던 경험이 있다. 따라서 이번엔 거꾸로 자신이 이명박계를 상대로 정치보복을 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의 측근들은 “박 위원장이 어떤 경우에도 공천에 직접 관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의 의중이 어찌 됐든, 비대위 출범 이틀 만에 ‘이명박 정부 인적 청산론’이 터져나온 이상 이명박계에선 박 위원장의 정치적 복선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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