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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수의 희망이야기] 기쁨놀이

중앙일보 2011.12.30 00:00 종합 33면 지면보기
손병수
논설위원
“감사합니다. 올 한 해도 우리 가족 무사히 보냈네요. 다같이 건배합시다.” 지난 주말 저녁, 집 근처 식당이었습니다. 아내는 멀리 여행 중이고 아들은 아직 일터에 있는지라 도리 없이 혼자 밥을 먹고 있었지요. 마침 크리스마스 이브, 옆자리의 가족이 제 또래로 보이는 가장과 잔을 부딪쳤습니다. 그들의 만찬에 왠지 방해가 될 것 같아 후루룩 그릇을 비우고 돌아왔네요. 어둠이 깔린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다가 붙잡은 책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얘기를 발견했습니다.



 기억하시는지요. 미국 작가 엘리노 포터의 1913년작 『폴리애나(Pollyanna)』. 국내에 번역판이 여럿 나왔고, 영화·연극으로도 소개된 일종의 성장소설입니다. 가난한 선교사 부모가 죽은 후 세상에 홀로 남겨진 11세 소녀 폴리애나가 생면부지의 이모 집에 얹혀살면서 벌어지는 얘기입니다. 죽음을 예감한 아버지가 폴리애나에게 가르쳐준 게임이 ‘기쁨놀이(glad game)’였지요. 말 그대로, 어떤 상황에서든 기쁨을 느낄 요소를 찾아내는 놀입니다. 어린 딸이 앞으로 닥칠 온갖 고난을 이겨 나갈 수 있도록 미리 훈련시킨 셈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목발 선물입니다. 인형을 간절히 원한 가엾은 폴리애나에게 막상 선물이라고 주어진 것은 선교용품으로 들어온 목발뿐이었습니다. 이 난감한 상황에서 폴리애나는 말합니다. “나는 두 발이 멀쩡해서 목발이 필요 없으니 얼마나 기뻐요!”



 폴리애나는 이런 기쁨놀이를 앞세워 쌀쌀맞기 짝이 없는 이모와 주변 인물들을 변화시켜 나갑니다. 불행한 소녀가 보여주는 밝고 명랑한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아직 어린지라 슬픔과 외로움, 너무 일찍 떠난 부모에 대한 원망에 혼자서 눈물 흘리기도 했지요. 그래도 이내 기뻐할 무엇인가를 찾아내서 독자와 관객들을 열광시키곤 했습니다. 물론 폴리애나의 기쁨놀이가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잠시 고통을 잊게 해준다는 점에서 보면 진통제에 가깝다고 할까요. 훗날 심리학자들은 궁지에 몰린 사람이 아무 대책 없이 무조건 “잘될 거야” 식의 믿음에만 의존하는 경향을 ‘폴리애나 현상’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책을 덮고 저만의 기쁨놀이를 생각했습니다. 돌아보니 기쁘고 감사할 일이 수두룩했습니다. 무엇보다도, 4년여 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해서 다시 글을 쓰고 있지 않습니까. 부모와 가족이 건강하고, 친구와 동료들은 여전합니다. 성탄전야의 나 홀로 저녁식사? 굶지 않았다는 점만 해도 감사해야겠지요. 2011년이 이틀 남았습니다. 지금 외롭거나 괴로우신가요. 세상이 온통 불의와 반칙으로 가득하다고 느끼시나요. ‘왜 나만이야’, 소리치고 싶으신가요. 저처럼 기쁨놀이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세밑에 무엇이든 기쁘고 감사할 이유를 찾으시면 좋겠습니다. 거기서 희망의 싹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폴리애나 현상’은 내년에 걱정해도 됩니다. 참, 제게 기쁨놀이를 되찾아준 옆자리 가족을 깜빡했네요. 감사합니다.



손병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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