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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수세

중앙일보 2011.12.30 00:00 종합 33면 지면보기
섣달 그믐밤을 새우는 것이 수세(守歲)다. 고려인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수세(守歲)’라는 시는 “대궐 마당 폭죽 소리 시끄럽지만 어찌하겠나(庭中爆竹奈支離)”라고 대궐에서 폭죽을 터뜨렸음을 말해준다. 사귀(邪鬼)를 내쫓으려는 행사다.

 조선에서는 입직(入直:숙직) 신하들에게 음식을 내려 주었는데, 사가(私家)에서 음식을 지인들에게 돌리는 것이 세찬(歲饌)이다. 중국에서는 서촉(西蜀) 지방 풍속으로 궤세(歲)라고 했다. 이날 잠을 자면 눈썹이 희게 된다는 속설이 있어서 잠자는 사람의 눈썹에 몰래 백분(白粉)을 발라놓기도 했다. 혼자 밤 새우기는 어려우므로 지인들이 모여 함께 지새웠다.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두위 집에서 수세하네(杜位宅守歲)’라는 시에서 “사람들 모이니 마구간의 말 시끄럽고/횃불 켜니 숲의 까마귀 흩어지는구나/내일 아침이면 마흔도 지나는데/저녁 해는 지는구나(簪喧馬/列炬散林鴉/ 四十明朝過/飛騰暮景斜)”라고 읊었다. 이렇게 친척, 친구들끼리 모여서 한 해를 보내는 것을 별세(別歲)라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한 해가 가는 것이 바람 같다. 그래서 송나라 소식(蘇軾)은 ‘수세(守歲)’라는 시에서 “한 해 가는 것을 알고 싶은가?/골짜기로 달려가는 뱀과 같도다(欲知垂盡歲/有似赴壑蛇)”라고 노래했다.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은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지은 시에서 “긴 밤 두 눈도 깜짝이지 않지만/수세도 소용없는지/세월 꽃은 이미 살쩍에 들어섰네(永夜目不瞬/守歲亦徒然/年華已添)”라고 노래했다. 섣달 그믐 밤을 지새웠지만 흰 머리카락이 귀밑에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이날 밤에 마시는 술이 도소주(屠蘇酒)다. 자연히 새해 첫날 아침 마시는 술도 되는데, 후한(後漢)의 명의 화타(華), 또는 당(唐)나라 손사막(孫思邈)이 산초(山椒)·방풍(防風)·백출(白朮) 등을 섞어서 만들었다는 약술이다. 고려 말 가정(稼亭) 이곡(李穀)은 갑신년(1344) 원일(元日:새해 첫날) 지은 시에서 “도소주를 어찌 혼자 마시나/새해 첫 시를 짓는데 만감이 교차하네(屠蘇可獨飮/萬慮入新詩)”라고 노래했고, 북송(北宋)의 왕안석(王安石:1021~1086)도 원일(元日)이란 시에서 “폭죽 소리 속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네/봄바람 따뜻하게 부는데 도소주를 마시네(爆竹聲中一歲除/春風送暖入屠蘇)”라고 했다. 고려와 중국에서 모두 마셨던 술이다. 새해에는 봄바람처럼 따뜻한 소식이 많기를.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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