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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준법지원인이 법조계 밥그릇인가

중앙일보 2011.12.30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법무부가 자산 3000억원 이상의 상장회사들은 의무적으로 내년 4월부터 준법지원인을 두도록 하는 상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미 자체적으로 준법감시인이나 법조인을 고용하고 있는 대기업들보다 중견기업이 큰 부담을 안게 됐다. 법무부는 자산 규모 기준을 2조원으로 올려달라거나, “감사가 기업 내부 감시와 통제를 하고 있는데 준법지원인까지 강제하는 것은 전형적인 이중 부담”이란 기업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았다. 올해부터 쏟아지는 로스쿨 졸업생 등 법조인의 밥그릇을 챙겨주려는 직역(職域) 이기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윤리(倫理)경영이 중요하다 해도 기업 자율에 맡기는 게 정석이다. 선진국 대기업들은 70% 이상이 자체적인 필요에 따라 준법감시인을 두고 있다. 내부 직원의 부정으로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에 말려 회사가 위태롭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예방조치다. 우리도 준법감시인 제도를 강제할 것이 아니라 효과적인 내부통제 체제를 갖춘 기업에는 이사(理事)의 책임을 가볍게 해주는 식으로, 자발적인 준법감시인 도입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다 업종별 특성에 따라 자산 규모는 들쭉날쭉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모든 업종에 대해 ‘자산 3000억원 이상’이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못하다. 500여 명의 신참 변호사를 소화해야 한다는 인위적인 기준에 따라 시행령을 짜맞춘 게 아니냐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내년의 경제성장 전망은 암울하다. 고용시장에도 한파가 몰아칠 게 분명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1인당 1억5000만원가량이 드는 준법지원인 제도를 강제할 경우 결국 다른 양질의 일자리 3~4개를 뺏는 것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입법 예고 후 40일간의 조정기간 동안 이 제도의 적용 대상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자산 기준을 대폭 끌어올리고, 업종별 특성을 감안해 차별적으로 준법지원인을 두도록 길을 열어두어야 할 것이다. 입법예고안대로라면 준법지원인 제도는 ‘중견 기업 뜯어먹기’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법조계가 기업들을 자신의 밥그릇으로 착각(錯覺)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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