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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사람들 ⑤ 대남 공작 총책 임무교대 오극렬과 김영철

중앙일보 2011.12.28 00:00 종합 10면 지면보기
2010년 4월 대연합부대 종합훈련 때 김정일을 수행한 오극렬(흰원 내). [중앙포토]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지난 23일 당·정·군 고위 간부들을 대동하고 김정일 시신을 참배할 당시 눈에 띄는 인물이 등장했다. 오극렬(80) 국방위 부위원장이다. 김정일 사망 직후 발표된 국가장의위원회 서열 29위였던 그는 이날 11번째로 호칭됐다. 나흘 사이에 서열이 대거 상승했다.


오극렬, 김정일과 막역한 술친구
김영철, 김정은 대학 때 과외선생

 이날 김정은과 동행한 간부들 중 군부에선 이영호 총참모장(3위), 김영춘 인민무력부장(5위), 이용무(10위) 국방위 부위원장에 이어 4위다. 특히 이영호와 김영춘이 현재 북한의 실제 무력을 관장하고 있고, 이용무가 김일성의 사촌 처남임을 감안하면 향후 그의 역할을 짐작하게 한다. 일각에서 김정은이 오극렬을 숙청할 것이란 전망과 다른 양상이다.



 오극렬은 김일성의 빨치산 활동 시 부대원이었던 오중성의 외아들이자 북한이 김일성부대의 귀감으로 내세우는 오중흡의 5촌 조카다. 북한 사회에서는 성골(聖骨)인 셈이다.



 무엇보다 오극렬은 지난 17일 사망한 김정일과 술친구를 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다고 한다. 그를 옆에서 지켜봤던 한 탈북자는 “오극렬은 머리가 비상하고 조직력과 추진력이 뛰어나 김정일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다” 고 말했다. 북한이 김일성 중심의 유일체계를 구축하던 70년대 후반에는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과의 불화로 밀려나기도 했다.



 당시 지방으로 좌천될 위기에 놓였던 그에게 구세주로 등장한 게 김정일이라고 한다. 신씨는 “김정일이 그를 빼돌리다시피 해서 보호했다” 고 설명했다.



 작전부는 대남 침투와 공작을 전문으로 하는 당 부서다. 김정일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은 것이다. 오극렬은 20년 넘게 작전부를 맡으며 사단급 정예부대를 육성하고 침투용 선박 건조 공장(대동강선박공장)을 건립했다. 작전부를 김정일의 별동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오극렬은 군 원로이자 빨치산의 피로써 명분을 중시하는 북한 사회에서 김정은의 버팀목이 될 가능성이 크다.



2010년 김정일의 제586군부대 지휘부 시찰을 수행한 김영철(왼쪽). [중앙포토]
 오극렬이 뒷선으로 물러나며 등장한 인물이 김영철(65) 정찰총국장이다. 북한은 2009년 초 노동당의 작전부와 35호실(대남 공작 담당), 인민무력부 산하의 정찰국을 통합해 정찰총국을 신설했다. 대남 정보수집과 비밀공작, 침투작전을 통합해 운영키로 한 것이다. 형식적으론 총참모부 밑에 있으나 실제론 김정일의 직속기관으로 운영됐다.



 우리 정보당국은 지난해 천안함 폭침 사건(3월 26일)을 기획하고 감행한 주체를 정찰총국으로 지목하고 있다. 실제로 천안함 사건 조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4월 김정일이 정찰총국을 방문해 격려하는 사진이 노동신문에 공개될 정도로 김영철 역시 김정일의 신임을 톡톡히 받았다고 한다.



 그는 2007년 남북 군사회담 당시 정승조 현 합참의장의 카운터파트였다. ‘매파중의 매파’이자 대남통으로 꼽힌다. 2008년 12월 국방위원회 정책국장 직함으로 개성공단에 내려와 TV 드라마인 ‘이산’을 거론하며 “‘백성은 물이고 임금은 물 위에 뜬 배’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민심이 흔들리면 배가 뒤집힌다”며 남측 기업인들 앞에서 우리 정부를 공격했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은이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다닐 때 김영철이 과외선생을 하다시피 했다는 정보가 있다”고 전했다. 결국 대남 공작 파트의 신·구 책임자들이 김정은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셈이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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