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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한국의 키신저’를 갈망한다

중앙일보 2011.12.28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오병상
수석논설위원
1946년 2월 3일 모스크바 주재 미국대사관에 한 장의 전문이 날아왔다. 소련의 대외정책에 대한 워싱턴의 문의였다. 대사는 부재 중이었다. 42세의 부대사 조지 케넌이 답했다. 그는 비밀 전문 머리말에서 “복잡 미묘하고 예상하기 힘든, 그래서 매우 중요한 분석이기에 짧게 쓸 수가 없다”며 ‘본부의 양해’를 구했다. 5개 항목에 걸쳐 19페이지 분량을 써 내려갔다. 이례적으로 ‘긴 전문(Long Telegram)’이었다. ‘긴 전문’은 20세기 국제정치를 지배한 냉전이데올로기의 성경(Bible)이 됐다.



 전문을 읽어 보면 오히려 짧다는 느낌이 든다. 러시아의 역사와 민족적 특성, 레닌에 의해 토착화된 마르크시즘의 속성까지 대외정책의 주요 변수를 총망라하면서 하나씩 날카롭게 분석했다. 시대를 앞서가는 대전략가의 혜안이다. 당시 서방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동지였던 소련에 막연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케넌은 이런 환상을 단숨에 박살내고 소련의 미래 행동패턴을 정확히 내다봤다.



 그에 따르면 러시아 전통과 마르크시즘이 결합해 악의 제국을 낳았다. 차르의 공포정치와 볼셰비키의 환상이 결합하면서 인륜과 도덕은 철저히 무시된다. 이에 대한 대응전략은 ‘봉쇄(containment)’다. 외교정책은 크게 보자면 봉쇄와 포용(engagement)이다. 봉쇄는 포위며, 적의 붕괴가 곧 승리다. 반면 포용은 타협이며, 적의 변화를 이끌어 내려 한다. 케넌이 말하는 봉쇄는 ‘세계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확고한 위력으로 정면 대응’하는 것이다.



 케넌식 냉전이데올로기는 미국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래서 미국은 4년 뒤 한국에서 전쟁이 터지자 ‘한반도는 미국의 태평양 방어선 밖’이라던 기존 정책을 번복하고 곧바로 참전했다. 케넌은 6·25의 숨은 공신인 셈이다. 그러나 이어진 베트남전쟁은 사정이 달랐다. 베트남전쟁은 냉전이데올로기로 정당화하기엔 너무나 명분 없는 학살이었다. 공산주의는 적이고, 자유진영(사이공 정부)은 친구라는 냉전적 이분법이 통하지 않았다.



 세상이 변한 것이다. 냉전이데올로기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데탕트(detente·긴장완화)’의 문을 연 사람은 미국의 헨리 키신저다. 키신저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의 평화외교를 전공한 박사다. 이데올로기보다 현실을 인정하는 균형외교론이다. 키신저가 주목한 나라는 중국이다. 당시 미국은 소련보다 중국을 더 적대시했다.



 키신저는 저서 『중국론(On China)』 (2011·Penguin Press)에서 베트남전과 핵(核) 때문에 중국을 주목했다고 밝혔다. 계기는 우수리강 분쟁이다. 중국과 소련 국경에서 군인들끼리 몸싸움이 전투로 확산됐다. 마오쩌둥(毛澤東)은 당시 중국 지도부에 ‘베이징을 떠나라’고 명령했을 정도로 위기감에 싸였다. 미국 입장에선 호기다. 베트남전을 마무리하려면 중국이 도와야 했다. 핵 보유국 간의 전쟁은 공멸이다. 중국에 손을 내밀었다. 72년 닉슨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다. 마오는 닉슨을 만난 자리에서 강경파 린뱌오(林彪)의 죽음을 조롱했다. 죽의 장막은 거둬졌다.



 그로부터 40년, 키신저의 예측대로 미국은 중국을 파트너 삼아 세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 북한 김정일의 사망이 별 충격을 주지 못하는 것도 중국과 미국 사이에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전략가 키신저가 오늘날 한반도에 안전막을 깔아준 셈이다.



 한 해를 보내며 우리를 되돌아보게 된다. 대한민국은 전쟁 이후 냉전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해 왔다. 닉슨의 중국 방문에 영향을 받아 같은 해 7·4 남북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직후 남한은 10월 유신으로, 북한은 주체사상으로, 냉전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역주행의 페달을 밟았다.



 남북 관계가 미·중 관계와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 많이 변했다. 케넌 이후 66년, 닉슨의 중국 방문 이후 40년. 아직 우리 사회엔 케넌식 냉전이데올로기가 세력을 잃지 않고 있다. 이젠 달라져야 할 상황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김일성이 사망한 94년과 지금은 너무 다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남한이 북한을 봉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없어져야 할 핵이라 확신해도, 북한이 핵을 보유한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격동이 예상되는 2012년, 긴 안목에서 대전략을 구사할 ‘대한민국의 키신저’를 갈망해 본다.



오병상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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