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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FTA 했는데 와인 왜 비싼가

중앙일보 2011.12.28 00:00 경제 12면 지면보기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
매년 연말연시면 술자리가 이어진다. 술자리에 가보면 이젠 국내에서도 제법 와인을 즐기는 분들이 많아졌음을 체감한다. 와인을 소재로 대화도 풍성해지고 과음도 자제하는 분위기가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아 흐뭇할 때가 많다.



 그런데 와인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올해엔 추가적으로 받는 질문이 한 가지 생겼다. 바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는데, 왜 와인 값은 싸지지 않느냐 는 게 그것이다.



 와인 가격이 해외보다 높은 이유는 현행 세금 구조에서 기인한 탓이 크다. 와인에 부과되는 세금은 FTA가 체결되기 전 수입 와인의 운임보험료 포함가격(CIF)의 68.245%(관세 15%, 주세 30% 등)였다. FTA로 없어지는 부분은 15%에 해당하는 관세뿐이다.



 세금이 부과되는 기준 가격의 출발점이 CIF 가격이라는 것도 아쉽다. 상품 가격이 아니라 운반돼 오는 운임과 보험료를 포함한 값에 세금이 붙다 보니 그만큼 와인 값은 올라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수입 금액에 비례해 세금을 부과하는 종가세 제도를 따르다 보니 와인 수출국 환율변동의 여파가 수입원가에 미친다. 예를 들어 환율이 30%가량 인상되면 수입원가가 30%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환율인상분에 세금(68%)을 곱한 20%가량이 추가로 환율 인상분에 더해진다. 소비자 입장에선 50% 가까이 오른 가격에 와인을 맛보게 되는 셈이다.



 낙후된 유통구조도 와인 값을 올리는 원인이 된다. 와인은 현행법상 수입·도매·소매사업자가 분리돼 있다. 수입사는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할 수 없고 소매사도 직접 와인을 수입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소매사가 상품을 선정하고 유통상의 모든 리스크를 부담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수입사를 별도로 설립하거나 타 수입사를 이용해야 하고 이들에게 일정 규모의 마진을 할당해 줘야 한다. 현실적으로 와인 시장 규모상 한 수입사가 수입한 상품을 관계 소매상 한 곳을 통해 모두 소화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다른 도매상이나 소매상을 함께 활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관계 소매상에 다른 업체보다 저렴한 값에 와인을 납품하면 추가로 세금을 내야 한다. 결국 수입사 입장에선 소매 자회사에도 높은 가격에 공급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현실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와인 같은 저(低)도주에 대해서는 주류 전문 인터넷 판매업을 허용하는 방법이 있다. 와인의 인터넷 판매는 중국에서도 허용돼 있는 일이다.



 또 유통구조상 백화점 같은 대형 유통회사들에 입점하기 위해 지불하는 높은 마진과 여기에 근무하는 여직원까지 파견해야 하는 것도 문제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주류코너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사실상 수입사의 직원이다. 이들의 인건비는 수입사가 부담하는 게 일반적이다.



 물류 관련 규정도 와인 가격을 외국보다 높게 만들고 있다. 주류는 다른 상품과 함께 운송(혼적)해서는 안 되고 제3자 물류를 이용할 수도 없다. 오로지 수입사나 도매사의 허가를 받은 차량으로만 운송할 수밖에 없어 원가가 상승하게 된다. 세제관리상 다른 상품과 혼적이 불가하다면 주류 전문 3자 물류를 허용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만하다.



 와인 자체의 특수성 때문에 국내에서 유통되는 와인 값이 비싼 원인도 있다. 와인은 다품종 소량 수입품으로 운송 과정에서 온도 관리 등 부가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국내 와인 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 문제다. 많이 사면 보다 싸지는 것은 기본이지만, 한국 와인 시장은 전 세계 와인 시장을 기준으로 볼 때 이제 첫걸음을 뗀 수준이다. 근본적으로 와인 문화가 널리 보급되면서 시장이 커지기를 기다리는 방법밖에는 달리 길이 없다.



 정부는 이제라도 소비자들의 불만을 반영한 여러 정책을 내놓으려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와인값이 더 싸지면 폭탄주 같은 독한 술 대신 가볍게 기분을 내는 방식으로 송년회 관행이 바뀔 수도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가벼운 와인만이라면 사회생활 중인 여성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이런저런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정책이 수립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든 소비재의 값이 빠르게 오르는 시대에 와인 가격만이라도 내린다면 더 많은 사람이 와인으로라도 스트레스를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새해에는 보다 저렴해진 와인을 즐기는 건전한 음주문화가 꽃피길 기원한다.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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