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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희 아나, 바람피우다 걸렸을때 김정일이…

중앙일보 2011.12.27 00:10 종합 5면 지면보기
왼쪽부터 장해성, 현인애, 김광진.


김정일 사망 이후 열흘째. 오열하는 시민들로 넘치는 평양의 길거리 뒤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북한에서 엘리트로 살다 지금은 한국에서 살고 있는 세 명의 탈북 인사를 만났다. 최근 북한 주민과 연락했던 이들로부터 현지 상황을 들어봤다. 조선중앙방송에서 20여 년 정치부 기자로 활동한 장해성(66)씨, 청진 의과대 철학교수 출신의 현인애(54)씨, 싱가포르 동북아시아은행 대표로 외화벌이에 나섰던 김광진(44)씨가 그들이다.

1인 독재에 익숙한 북한, 집단지도체제 어려울 것
이틀 전 통화한 북한은 지금 … 김일성대학 출신 엘리트 탈북자 3명 좌담



25일 북한 당국이 평양 분향소에서 주민들에게 설탕을 나눠주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26일 “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조치 ”라고 보도했다. 주민들은 야외 분향 후 설탕물을 마시며 언 몸을 녹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1994년 김일성 사망 때와 지금 북한 주민들의 눈물엔 차이가 있나.



▶장해성=당시엔 김일성이라는 우상 같은 존재가 있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망가진 지금은 다르다. 이틀 전 통화한 북 주민에 따르면 민심이 그때와 판이하게 다르다. 조문을 가긴 가는데 열이면 열, 마지못해 간다고 한다. 충성심이 우러나 우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현인애=방송기자가 대성통곡하는 사람을 찍으러 갔는데, 그다지 울지 않아 비상이 걸렸다는 말도 들린다. 지금은 행사를 조작하고 유도한다. 배급이 끊겼고, 생계가 어려워서다. 추도 기간 중 장마당을 폐쇄한 것에도 불만이 많다. 모두 ‘이놈의 장례식 빨리 끝나야지’ 할 거다. 노동신문을 보면 길거리에서 따뜻한 설탕물을 나눠주고 있다는데, 다 조문을 유인하는 방편이다.



 ▶장=당장 입에 풀칠할 게 없는데, 김정일이 죽고 말고가 뭐 중요한가. 다 짜증나지. 그래도 이럴 때 행동 잘못하다간 목이 날아가기 때문에 우는 거다. 94년에 그랬다. 애도 기간 뒤엔 사정바람이 분다. 가차 없다.



-민란 가능성은.



▶현=김정일 사망 후 국가안전보위부가 모든 행사를 간섭한다. 94년엔 없던 일이다. 김일성 동상, 김정일 초상화 , 구호판 앞에도 불상사가 일어날까 무장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북 체제에서 민란은 가능성이 없지만 그 정도로 불안한 걸 북한 당국이 알고 있다는 얘기다.



-쿠데타 가능성은.



▶장=김정은의 핵심 세력은 대체로 장성택의 사람들이다. 우동측 보위부 제1부부장 정도만 아닐까. 언젠가는 김정은 세력이 탄탄해지면 제거될 것을 걱정할 거다. 기회만 되면 ‘철딱서니’ 밀어내고 김평일(김정일의 이복동생)을 올려 놓든지, 다른 누구를 올려 놓을 수 있다.



▶현=글쎄다. 분명한 것은 북한에서 집단지도체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장성택이 개혁·개방파라고 하지만 평생 본 게 김정일의 1인 독재다. 장성택이 국정을 놓고 핵심들과 ‘토론하자’고 하진 않을 것이다. 장성택이 민주주의자냐. 독재의 주인이 자신이냐, 김정은이냐의 문제일 것이다. 당장은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뭔가 모색할 수도 있다. 남북 화해 무드가 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북한이 중국에 병합될 것이란 우려도 있는데.



▶현=북한의 핵심은 주체사상이다. 여기 사람들은 북·중 관계가 한·미 관계 같다고 여기는데, 북한에서 살아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중국의 노선이 어떻다 얘기하는 것 자체로 사대주의, 수정주의, 대국주의에 굴복하는 것이다. 북한은 북한만의 세계에 산다.



-김정일이 여러 번 중국의 변화를 보지 않았나.



▶현=가봐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참 발전했다고 말하면, 그 사람도 의심 받는다. 북한엔 친중파도 친러파도 없다. 중국에 친척만 있어도 요직에 못 들어간다. 남한에 있으면 반동이다. 향후 장성택이 중국식 개혁을 고려해 보겠지만 중국 한 바퀴 돌고, 남한 두 번 갔다 와도 사람이 바뀌진 않는다.



-장성택의 섭정이 시작됐다는 분석도 있는데.



▶김=섭정은 시작됐다. 김정은의 권위는 할아버지·아버지의 것과 다르다. 통치력도 사회 응집력도 차이가 크다. 김정일까지는 절대권력이었다. 지금 힘의 공백 상태다. 김정은이 장성택·김경희·이영호와 협의하지 않을 수 없다.



 ▶현=중국식의 집체적 협의체로 생각하면 안 된다. 옛날에는 김정일 혼자 했지만, 이젠 측근 몇 명에 의존한다는 거다. 장성택은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자다.



▶김=김정은과 당·군 간부의 다리 역할을 장성택이 맡으면 섭정이다. 유일 지배체제여서 집단토론은 허용이 안 된다. 간부들도 익숙하지 않다. 장성택이 틀어쥐면 그게 섭정이다.



▶장=주민들에게 물어보면 ‘정은이가 하든 누가 하든 무슨 상관인가. 밥 한 끼 먹기 힘든데’라고 한다. 서민들은 전혀 생각이 없다.



▶김=김일성이 죽고 나서 김정일이 승계할 때는 호칭을 쓰더라도 정교하게 했다. 지금 김정은에게는 붙일 수 있는 표현 다 쏟아내 붙이고 있다. ‘존경하는’으로 시작하더니 ‘위대한’ ‘전설적인’ 등 모든 표현 다 쓰고 있다. 준비가 안 된 것이다.



-휴대전화 80만 대가 보급됐다. 민심 동요의 한 요소가 아닌가.



 ▶김=정권으로선 부담일 거다. 북한은 현재 너무 힘든 상태이기 때문에 장성택이 엘리트층이나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서도 밖으로 더 손을 뻗치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현=나는 반대다.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이 핵실험 하니, 미국도 남한도 다 갖다 바친다는 식으로 알고 있다. 김정일이 죽자마자 갖다 주는 것 없으면 장성택의 위신이 위협 받을 것이다. 더 강하게 몰아붙일 것이다.



▶김=장성택이 자기 존재감을 드러냈다.



▶현=지난 24일 장성택이 대장 군복을 입고 등장한 날이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 생일이자, 김정일의 최고사령관 추대일이다.



▶김=그날 당 중앙군사위원회를 연 것 같다. 장성택이 ‘대장 칭호’를 붙이고 자신의 위상을 대내외에 과시한 것 같다.



▶현=장성택이 김정일 뇌졸중 이후 실세로 부상했지만 지난해 9월 당 대표자회에선 힘을 잃었다고 한다. 이 회의에 참가한 사람이 ‘판이 더럽게 돌아가더라. 김정은파와 장성택파가 싸움하는 게 보이더라. 각자가 살 길을 찾아야겠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두 달째 모습을 감추었던 아나운서 이춘희가 김정일 부고를 전했는데.



 ▶장=원래 인민군 연극 조에 있었는데 다리가 짧아 아나운서로 왔다. 60세 넘자 집에서 놀면서 필요할 때 나온다. 캐딜락과 평양 창광 거리의 멋있는 집을 받았다. 김정일이 많이 챙겨줬다. 90년대 초 바람 피우다 걸렸을 때 ‘이춘희 문건 다 지우라’ 했다. 김정일이 죽었을 때 이춘희는 정말 슬펐을 거다.



정리=김수정·권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정치부 기자 출신 장해성(66)씨- 김일성 종합대학교 철학과 / 북한 조선중앙방송 정치부 기자, 문예부 작가 / 1996년 탈북 / 프리랜서 / 개그맨 박성호씨 주례



철학 교수 출신 현인애(54)씨- 김일성 종합대학교 철학과 / 청진 의과대학철학 교수 / 2004년 탈북 / NK지식인연대 부대표 / 북한 인권 및 탈북자 권익 활동



북 지도부 자금 관리한 김광진(44)씨- 김일성종합대학교 외국어문학부/ 주 싱가포르 동북아시아은행 대표 / 2003년 탈북/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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