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에 딱 1명 ‘열관리 명장’ 함이호씨 … 지하 보일러실서 홀로 기술 썩힌다

중앙일보 2011.12.27 00:10 경제 2면 지면보기
강릉 문화체육시설관리사업소 지하실에서 열관리 명장 함이호(55)씨가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30여 년간 기술을 갈 고 닦아 이 분야 유일한 명장이 됐다. 그러나 지금 그는 기술을 전해줄 후배 하나 없이 혼자 일한다. [강릉=최승식 기자]


“국가 발전의 대들보 역할을 하는 숙련기술자들이 존경을 받고 그들의 기술이 빛을 발해야 한다.”

[스페셜 리포트] ‘마에스트로’ 홀대하는 대한민국



지난해 12월 27일 정부는 ‘숙련기술 장려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하며 이렇게 취지를 밝혔다. 요컨대 ‘명장’이나 국제기능올림픽 수상자들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1년. 중앙일보가 명장들과 기능올림픽 수상자들을 만나 그들이 체감하는 사회·경제적 대우를 들어봤다. 냉대는 여전했다. 명장이든, 기능올림픽 수상자든 대부분이 “기능인이 된 것을 후회한다”고 고개를 저었다.



특별취재팀=장정훈·김한별·이상화·류정화·홍상지 기자



강원도 강릉시의 6급 기능직 공무원 함이호(55)씨. 그는 강릉시 교2동 문화체육시설관리사업소의 어두컴컴한 보일러실에서 혼자 일한다. 함씨는 지난해 9월 ‘대한민국 명장(名匠)’ 칭호를 받았다.



 열관리 분야 국내 최고의 기술자라고 국가가 인정했다. 30년간 보일러에만 매달린 결과였다.



 하지만 승진 같은 인센티브는 없었다. 되레 명장 인증을 받던 바로 그날, 함씨는 5명이 함께 일하던 시청에서 문화체육시설관리사업소로 일터를 옮겨야 했다. 시청 측은 “순환보직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로 간 곳은 ‘나 홀로 일터’여서 자신의 기술을 전해줄 사람이 없다. 60세인 정년까지 4년 정도 남은 시간을 이렇게 보내야 할 공산이 크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09년 캐나다 캘거리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장식미술 분야 우수상을 탄 이아름(22·여)씨. 강서공고 1년 때부터 3년간 벽·문·창틀 등을 그림으로 꾸미는 장식미술에 매달렸다. 사포질을 잘못해 손등이 벗겨지기도 여러 번.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밤 10시까지 연습에 몰두했다.



 기능올림픽에서 입상하고 2년이 지난 지금, 이씨는 모교 행정실에서 서류 정리 일을 하며 명지전문대 야간 과정에 다닌다. 애초엔 대학에 갈 생각이 없었다. 세계에서 인정받은 실력이면 어떻게든 취업이 되겠거니 했다. 하지만 오라는 곳이 없었다. 결국 취업을 포기하고 유아교육과 진학을 택했다. 이씨는 그렇게 학창시절을 다 바쳐 익힌 기술을 버렸다.



 뛰어난 기능인을 우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산업기술력을 높이겠다며 25년 전인 1986년부터 ‘명장’을 뽑아온 나라. 1967년부터 올해까지 모두 26차례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종합우승만 17번을 차지한 것이 바로 한국이 거둔 성적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월 명장과 기능올림픽 입상자 등을 청와대로 초청해 “학력보다는 능력이 중시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명장’ 타이틀도, 국제기능올림픽 메달도 장식품에 불과했다. 명장들은 대접을 받기는커녕 정년조차 채우지 못하기 일쑤였다.



 기능올림픽 수상자들은 취업을 못해 애를 태웠다. 중앙일보가 명장 115명과 2005~2009년 기능올림픽 수상자 중 30명을 조사한 결과다.



 농기계 명장인 L씨(58)는 2008년 30여 년간 일한 중소 농기계 회사를 떠났다. 정년(59세)을 4년 앞두고서였다. 승진을 못해 ‘직위 정년’에 걸린 탓이다. L씨는 “명장 증서는 승진에 전혀 도움이 안 됐다”고 말했다. 2007년 은퇴한 윤태호(63·농기계) 명장은 “임금 인상이나 승진이 없었던 것은 물론, 업무 시간에 기술 전수 강의 같은 것을 나가게 될까 봐 회사는 오히려 명장이 된 것을 싫어하는 눈치였다”고 털어놨다. 창원의 한 대기업에서 일하는 금속재료 명장 K씨(55)는 “남들보다 더 많은 혜택을 줘야 한다는 부담감에 회사와 노동조합 모두 명장을 꺼린다”며 “회사·동료와 불편해지는 게 싫어 명장이란 사실을 숨기는 사람도 꽤 있다”고 귀띔했다.



 이 같은 현실은 중앙일보가 명장들에게 설문한 결과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응답한 명장 115명 가운데 ‘우리 사회가 숙련기능인을 잘 대접한다’고 답한 사람은 6명(5.2%)뿐이었다. 80명(69.6%)은 ‘그렇지 않다’ 혹은 ‘매우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정부 역시 명장들을 제대로 예우하지 않는다는 생각(62.6%)이 다수였다. 또 65.2%는 ‘자녀에게 본인의 일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열관리 명장 함이호씨는 “말만 명장이지 주변에선 여전히 ‘보일러쟁이’로 본다. 그런데 누가 기술에 매진하고, 또 자식에게 기술을 물려주려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기능올림픽에서 입상한 젊은이들은 일자리에 목말라했다. 중앙일보가 근황을 조사한 수상자 30명 중 취업에 성공한 이는 11명(36.7%)뿐. 그중 대기업 취업자는 삼성전자 4명, 현대자동차 1명, GS건설 1명, 식품업체인 SPC 1명 등 7명이었다.



 2005년 핀란드 헬싱키 국제기능올림픽 목공 분야 금메달리스트인 최세현(26)씨는 아직 청년 백수다. 금메달을 딴 뒤 바로 일자리를 찾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대형 건설사는 “하청업체를 쓰기 때문에 시공인력이 별로 필요없다”고 외면했고, 중소업체는 “세계대회 금메달리스트이니 임금을 더 줘야 할 텐데 부담스럽다”며 거절했다. 결국 진학(서울산업대 건축공학과)을 했다. 최씨는 “올 2월 졸업 전부터 지금까지 200 곳 넘게 지원서를 냈으나 아직 소득이 없다”고 근황을 전했다.



 2007년 대회 모바일로보틱스 동메달리스트인 김재봉(23)씨는 대기업에 들어갔다가 바로 나왔다. 그는 “입사한 대기업에서 별 관련이 없는 것 같은 생산라인에 배치하기에 한 달 만에 나왔다”고 말했다. 한때 고졸의 벽도 생생히 느꼈다. 그 회사를 나온 뒤 외국 업체에 들어가 고교생 대상 로봇 강의를 하는 일을 맡았다. 그런데 강사 이력서를 요구한 일부 학교에서 ‘고졸’임을 들어 강사 교체를 요구했다. 김씨는 “몇 번 그런 일을 겪고 나서 2009년 결국 대학(오산대 디지털전자과)에 입학했다”며 “한국은 정말 학벌주의가 뿌리 깊은 사회인 것 같다”고 술회했다.



2009년 캘거리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귀금속공예 금메달을 딴 윤태식(23)씨. 그는 내년에 기능인을 대접해 주는 해외에서 일자리를 찾기로 했다.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2009년 귀금속공예 금메달리스트인 윤태식(23)씨는 해외 취업을 알아보고 있다. 대전 충남기계공고의 교내 기업 ‘SN주얼리’에서 병역특례로 일하는 그는 “내년 9월 특례를 마치면 유럽 쪽 취업문을 두드리겠다”고 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재주를 지닌 기능인조차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국내 현실을 절감해서다. 대학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선진국은 최고의 기술을 가졌다는 것 자체로 대우를 해주므로 굳이 학벌을 쌓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이유다. 그는 “호주나 유럽 쪽에서 일자리를 구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수상자들은 하나같이 기능올림픽 출전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미래를 생각해 기능에만 매달리지 말고 공부를 하라”고 조언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취업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건 기능올림픽 메달이 아니라 대학 졸업장이다.”



 인하대 서승직(건축학) 교수는 “임금 부담 같은 것 때문에 명장들이 승진을 못해 조기 퇴직을 하고, 기능올림픽 수상자들이 일자리를 못 찾는 것은 산업 기술경쟁력 측면에서 큰 손실”이라며 “이들을 고용하는 기업을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명장=정식 명칭은 ‘대한민국 명장’. 1986년부터 총 520명이 선정됐다. 선발되면 증서와 휘장·명패, 일시장려금 2000만원이 수여된다. 매년 주는 장려금은 현직에 계속 종사하는 경우에만 지급된다.













◆ 관련기사



▶ BMW 마이스터, 부사장급 대우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