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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미당이 말을 걸었다 … 화사하게, 처연하게

중앙일보 2011.12.27 00:00 종합 24면 지면보기
미당(未堂) 서정주는 20세기 ‘한국시의 왕국’이었다. 그 시발점이 70년 전 출간된 『화사집』이다. 26일 오후 서울 동국대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열린 ‘화사집 출간 7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인디밴드 커플디가 미당의 ‘서름의 강물’에 곡을 붙여 노래를 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미당 서정주
말이 굴렀다. 말은 굴러서 사람들을 구슬렸다.

서울 동국대 이해랑 예술극장서 『화사집』 출간 70년 기념 시낭송 콘서트



 26일 오후 7시 서울 동국대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화사집(花蛇集)』시낭송 콘서트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가 열렸다.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의 첫 시집 『화사집』 출간 70년째를 기념하는 자리다. 우리 문단에서 보기 드문 큰 잔치였다. 김남조·유안진·신달자·문정희·문태준 등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과 박정자·이정섭·김성녀·정경순 등 우리 연극계의 대표 스타 24명이 각각 한 편씩 수록시 24편 전체를 낭독했다.



 미당은 생전에 자신의 시어를 ‘구슬리는 말’이라고 풀이한 적이 있다. 사실이 그랬다. 그가 『화사집』을 내놓은 이후, 한국어가 제 모국어인 이들은 그의 시어에 자주 마음이 후들거렸고, 종종 홀렸다.



 이날 공연장에서도 엇비슷한 말의 풍경이 펼쳐졌다. 낭독자가 미당의 시를 읊을 때, 미당의 말은 공연장을 굴러다니며 사람들의 마음을 구슬렸다.



26일 오후 시인 김남조(왼쪽)와 연극배우 전무송씨가 미당의 『화사집』에 실린 시를 낭송하고 있다.
 시작은 ‘자화상’이었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않었다….”



 배우 손숙의 낭송이 시작되자 객석은 침묵에 휩싸였다. 그가 시를 읊을 때, 배경에는 젊은 미당의 모습이 사진에 실려 흘러갔다. 70년 전 스물여섯 청년 미당이 말을 걸어오는 듯, 사람들은 눈을 감은 채 시간을 거스르기 시작했다.



 공연은 배우의 낭송과 시인의 낭송 등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배우들은 미당의 시어에 감정을 잔뜩 실었다. 박정자는 ‘화사(花蛇)’를 읽을 때 화사처럼 화사한 낭독을 뽑아냈고, 이정섭은 ‘입마춤’에 담긴 관능의 언어를 매혹적으로 읊었다.



 전무송이 낭송한 시 ‘문둥이’에선 울음이 묻어났다. ‘해와 하늘 빛이/문둥이는 서러워/…/꽃처럼 붉은 우름을 밤새 우렀다.’ 그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다섯 줄짜리 시편을 반복해 읊었는데, 처연함이 거듭 깊어졌다.



 미당의 문학적 세례를 받은 시인들은 헌사를 올리듯 엄숙하게 낭송을 이어갔다. 정진규(‘부흥이’)·장석남(‘엽서’)·허영자(‘고을나의 딸’)·문효치(‘웅계(상)’) 시인 등은 미당이 남겨놓은 매끈한 모국어의 결을 매만졌다. ‘수대동시’를 읊은 이근배 시인은 “『화사집』은 시의 대장경이고 모국어의 경전”이라고 했다.



 미당의 시편은 노래로도 새로 태어났다. 인디밴드 커플디과 블루코크와인이 각각 ‘서름의 강물’과 ‘벽’에 곡을 붙여 노래를 불렀다. 어쿠스틱 선율에 올라탄 미당의 시편은 노래 위에서도 저 홀로 아름다웠다. 공연을 주최한 미당기념사업회 측은 이날 2011년 미당문학상 수상자인 이영광 시인에게 미당의 얼굴이 조각된 메달을 수여했다. 이 시인은 “칠십 노인이 된 젊은 시집 『화사집』을 낭송하니 뜨거운 피가 다시 끓어오른다”고 했다.



 공연 말미 미당의 말년 모습이 담긴 영상이 흘렀다. “미숙한 사람이란 뜻에서 ‘미당’이란 호가 붙었다”고 그의 육성은 말하고 있었다. 그는 “길은 항시(恒時) 어데나 있고, 길은 결국 아무데도 없다”(‘바다’)고 노래했는데, 『화사집』 이후 70년간 미당은 우리 시가 따라온 단단한 길이었다.



글=정강현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화사집』=1941년 2월 10일 출간된 미당 서정주의 첫 시집. 동료 시인 오장환(1918~51)이 운영하던 출판사 남만서고(南蠻書庫)에서 나왔다. 출간 당시 100권 한정으로 찍었다. “한국 시문학사에서 시혼의 신대륙을 발견한 일대 사건”(고려대 이남호 교수)이란 평을 받는 기념비적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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