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 “도시에 살아 좋겠습니다”

중앙일보 2011.12.27 00:00 종합 33면 지면보기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내 주요 취재지는 농산물 생산 현장이다. 늘 농민을 만난다. 20년이 넘었다. 스스로 내 몸의 절반은 농민이라 여긴다. 말로는 농사 못 짓는 것이 없다.



 최근 나는 한 농민에게 취재 거부를 당했다. 그것도 아주 매몰차게 내몰렸다. 그 농민은 젊었고, 화가 잔뜩 나 있었다. 국회가 한·미 FTA를 비준하고 며칠 뒤였으며, 그 농민은 가격 폭락으로 인건비도 건질 수 없는 쪽파를 수확하고 있었다. 그는 이랬다. “취재? 도시 사람들을 위한 취재이겠지요. 그런 거 필요없습니다. 농민 목소리 한번 제대로 전달해 준 적이 있나요? 가세요! 농민들 죽든 말든!”



 그 박대에도 그와 대화를 했다. “농민의 말을 전해줄 언론인도 있다”고 했으나 그는 화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마침내 나에 대한 반감을 꼭 찍어 말했다. “FTA 덕에 물가 내려간다는데, 도시에 살아 좋겠습니다.” 말로 농촌, 농민 안다고 떠들어봤자 도시인 아니냐는 말이었다. 그의 확연한 가름에 내 20여 년의 경험은 무의미해졌고, 그 쪽파 밭에 농민을 남겨두고 이 도시인은 물러나야 했다.



[일러스트=백두리]


 “가난한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한때 한국 사회에서 성공한 이들이 자신을 소개할 때 이런 말을 흔히 했다. 196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한국은 ‘농민의 나라’였고, 농민은 다 가난해 이 말이 주는 공감이 컸다. ‘가난한 농민의 자식’은 도시에서 자식을 낳았으며, 이제 한국의 도시에는 ‘가난한 농민의 자식’의 자식들이 모여 산다. 그들은 두어 세대 위의 조상이 농민이었다는 사실을 잊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사니 당연한 일이다. 요즘 출세기에는 “가난한 노동자의 자식으로 태어나…”라는 글이 더 많이 쓰여 있을 수도 있겠다.



 한국 농업은 국제경쟁력을 따질 것 없이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뒷전으로 밀릴 것이 뻔했다. 농민은 줄고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농업 비율은 낮아질 것이다. 이는 모든 산업국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한국 농업이 더 불행한 것은, 산업화 진전 속도에 맞추어 농업이 서서히 변화한 유럽 등과는 달리 그 변화가 급격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불어닥친 농산물 무역 자유화 바람은 엎어진 놈을 밟고 지나가는 꼴이었다. 그들의 여러 실패한 정책에 대해 변명해 줄 생각은 없지만, 정부에서 농업 지원정책을 내놓는다 해도 그 큰 변화의 틀 안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농민은 큰돈을 만질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한때 벤처농업이니 하며 헛바람을 넣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농사는 수익성이 낮다. 농민들도 농업의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다. 손해 안 보고 적당히 밥벌이만 하면 된다고 여긴다. 욕심 없기로는 여러 산업 분야 중에 농업 종사자가 일등일 것이다. 문제는 그 최소한의 욕심, 손해 안 보고 밥은 먹고살 수 있었으면 하는 그 작은 욕심이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우루과이라운드 타결이 있었을 때 우리 농산물 애용 운동이 일었었다. 정부와 관변단체에서 주도한 면이 있었지만 도시인은 여기에 크게 공감했고 소비도 따랐다. 그 운동으로 ‘우리 농산물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상식처럼 되었다. 그러나 그 운동이 어찌 보면 도시인 건강 챙기기 운동 정도에 그친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농민과 도시인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데는 미흡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것이다. 그랬더라면 지금처럼 농민이 힘들어하지 않을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젊은 농민이 내게 던진 “도시에 살아 좋겠습니다”는 말에 가슴 한쪽이 무너진다.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