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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MB가 대구에 문상 갔으면 한다

중앙일보 2011.12.27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철호
논설위원
평생 이렇게 슬픈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같은 반 친구들의 괴롭힘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구의 중학생 권모(13)군의 유서(遺書) 이야기다. 인터넷에 ‘대구 중학생 유서’란 검색어를 치고 꼭 읽어 보시라. 친구 2명에게 죽도록 얻어맞은 13살의 소년은 그날 밤 유서를 쓰고, 어머니 휴대전화에 저장된 자기 전화번호를 지웠다. 다음날 아침 학교로 출근하는 어머니께 “잘 다녀 오시라”고 인사한 소년은 거실을 깨끗이 치우고, 어머니 핸드백을 놓는 자리에 유서를 두고 베란다에서 몸을 던졌다.



 유서에는 폭력에 가위 눌린 소년의 공포가 낱낱이 적혀 있다. 소년은 “12월에 들어서 자살하자고 몇 번이나 결심을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 아빠가 생각나서 저를 막았어요”라고 썼다. 그러곤 “저, 진짜 죄송해요… 제 이야기는 다 끝이 났네요… 저는 먼저 가서 100년이든 1000년이든 저희 가족을 기다릴게요”라고 말했다. 죽음을 앞둔 소년은 “마지막 부탁인데, 그 녀석들은 저희 집 도어키 번호를 알고 있어요. 우리 집 도어키 번호 좀 바꿔 주세요”라며 두 번이나 부탁한다. 도어키 번호가 제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듯이.



 소년은 “모두들 안녕히 계세요… 매일 맞던 시절을 끝내는 대신 가족들을 볼 수가 없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그리고 제가 없다고 해서 슬퍼하시거나 저처럼 죽지 마세요”라며 ‘우리 가족을 너무나 사랑하는 막내 ○○○ 올림’으로 글을 맺었다. 그러곤 끝에 이렇게 덧붙인다. “P.S. 부모님께 한번도 진지하게 사랑한다는 말 못 전했지만 지금 전할게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이 마지막 느낌표 4개가 너무 아득하다. 차마 눈물이 어른거려 읽기조차 힘들다.



 소년의 어머니는 “엄마 언제 와”라는 아들의 문자가 친구들의 구타(毆打)를 의미했음을 알고 오열했다. 그러곤 아들의 바람대로 눈물을 그쳤다. 어머니는 “삼우제 때 아들이 좋아하는 피자를 놓았다”며 “애가 일찍 가긴 했지만 이렇게라도 기록을 했으니 죽음이 헛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이제 우리가 “학교 폭력의 희생자는 우리 아이로 끝나야 한다”는 어머니의 소원에 답해야 할 차례다. 나는 적어도 우리 사회가 세 가지는 해야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문상을 갔으면 한다. 소년의 비극은 개별적 사안이 아니다. 이 땅에서 자식을 키우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대통령이 우리 사회를 대표해 더 이상의 비극은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유족들에게 전해주면 좋겠다. 미국·유럽도 최고 지도자가 사회적 비극에 직접 조문하는 경우가 흔하다. 더구나 차기 정부에는 더 기대하기 힘들다. 대권 유력주자라는 박근혜 전 대표는 독신이고, 안철수 서울대 교수는 중1인 딸과 함께 미국에 건너가 아이비리그에 보냈다지 않은가. 평소 “이 땅에서 자식 3명은 키워봐야 교육을 말할 수 있다”는 이 대통령이 끝장내야 한다.



 그 다음, 비극의 단초를 제공한 메이플 스토리도 n분의1의 책임은 졌으면 싶다. 넥슨은 방학 때마다 동시접속자 기록 경신을 자랑하곤 했다. 그렇게 쌓은 창업주의 주식가치가 3조원을 넘었다. 이제 애들 코 묻은 돈만 노리는 ‘돈슨’이란 오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돈을 더 벌지 말라는 게 아니다. 적어도 청소년 게임중독을 예방하고, 해킹 피해자 구제에 적극 나서야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의 맞벌이 부부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체벌금지와 학생인권조례에 비례해 학교 폭력도 증가하기 십상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상담 교사 확충’ 같은 낡은 레코드판이 돌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의 처방에도 왜 학교 폭력은 6년 만에 세 배나 늘었는지 되묻고 싶다. 차라리 소년의 유서를 원문 그대로 학교 교과서에 실었으면 한다. 한 글자를 더하거나 뺄 것도 없다. 일본도 이지메를 다룬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침묵’을 교과서에 담고 있다.



 P.S. 가해자를 너무 쉽게 용서하는 풍토는 괜찮은 걸까. 유명 가수가 소년원에 노래 가르치는 TV프로그램도 좀 그렇다.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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