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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아버지의 유산

중앙일보 2011.12.27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사람들은 극심한 심리적 갈등이나 중대한 고비를 겪을 때마다 부모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밀고 나갈 힘, 또는 마음의 양식을 고대하는 것이다. 그런 때 어머니는 언제나 연민이었고, 아버지는 깃발이었다. 부모의 영정 앞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 까닭은 어머니의 연민이 자신에게 투영된 탓이고, 아버지의 깃발이 외롭게 펄럭이는 탓이다. 연민과 깃발이 서로 엮여 자신의 인생에 어떤 무늬를 드리우고 있었는가를 알려면 적어도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들어서야 한다.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을 보냈을 때엔 지천명의 나이였다. 공식 후계자로 지명되고 20년 동안 세자 수업도 충분히 마친 상태였다. 7년 전 어머니를 여읜 김정은은 김정일의 사망으로 천애의 고아가 됐다. 금년 나이 27세. 남한의 풍경에 대입하면 군복무를 마친 복학생 또는 입사시험을 막 통과한 사회초년생 정도에 해당한다. 병사한 어머니를 아련하게 떠올렸을 법한 이 청년은 아버지 시신 앞에서 북받치는 울음을 참느라 두 볼을 한참 불룩였다. 아버지의 깃발이 어떤 행로를 예고할 것인지를 감지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벅찼다. 오히려 정체성 혼란이 빚은 눈물처럼 보였다.



 세자 책봉을 위해 조부(祖父)의 헤어스타일과 의상으로 연출된 이 청년의 심중엔 머지않아 북한의 운명을 좌우할 심리적 모순과 정체성 혼란이 자라고 있다.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적자가 아닌 데서 오는 열등감이다. 김일성은 그의 생모 고영희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혈통을 중시하는 이 특이한 나라에서 정통성 결핍은 극단적 경계심을 낳는다. 게다가 그는 세상에 눈뜨는 사춘기를 낯선 이국땅에서 혼자 보냈다. 정신적 고립과 물질적 풍요가 혼합된 스위스 학생 시절의 추억은 춥고 어두운 북한 현실에 막연한 거부감과 이질감을 부추겼을 것이다. 귀국 후 받았던 6년간의 군사교육이 그를 현실로 되돌려 놓기는 했겠지만, 심리적 균열은 잠재되어 있다. 경계심·고립감·이질감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엄청난 권력이 주어졌다. 조부의 외모를 빌린 자신은 누구일까, 어리둥절할 것이다.



 그는 스위스에서 민주주의를 배웠다. 조부의 망토가, 아버지의 절대권력이 명하는 철권통치와의 간극을 메우고 감당할 이론적·사상적 자산을 배양할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더욱이 백두혈통을 치장하는 항일무장투쟁의 조작된 역사와 자신을 일체화할 아무런 계기도 없는 터에, 만주 항일유적지를 데리고 다녔던 아버지의 안쓰러운 정치적 몸부림을 얼마나 내면화했을까? 실력 부족과 정체성 혼란에 직면하는 청년이 저 극단적 권력을 감당할 방법은 과대망상에 호소하는 길이다. 과대망상은 현실도피의 매혹적 방법인데, 자주 과시적 행위로 이어진다. 한국에도 이런 사람이 더러 있다.



 그래서 이 청년에게 아버지의 깃발은 너무 버겁고 혹독하다. 김정일은 겨우 2년여간의 세자 수업을 해주는 대신 해결하기 난망한 유산을 남겼다. 핵문제, 땔감과 식량, 그리고 권력장악. 세계 현대사에서 이 세 가지 난제를 해결한 청년은 보지 못했다. 핵무기를 제외한다면, 27세에 권좌에 오른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와 33세에 쿠바를 장악한 카스트로가 있기는 하다. 그들은 폭력이나마 자기 실력으로 정권을 세웠고, 이데올로기도 만들었다. 북한에는 어지간해서 끄떡도 않는 무력이 존재한다. 그 무력집단 내부로 진입해 실권을 장악하는 일이 이 경험 없고 정통성이 취약한 청년에게 쉽겠는가?



 북한전문가들은 엘리트 집단이 결속해야 할 절박성 때문에 김정은 체제가 안정될 거라고 예견한다. 그럴지 모른다. 그런데 북한정권의 아킬레스건인 혁명이념의 상징적 매력이 점점 쇠락한다면 어떻게 될까? 3대에 걸친 승계가 성공하려면 권력자가 상징자원을 갱신해야 한다. 적어도 김정일은 주체사상 수립 과정에서 노회한 혁명세대와 상징자원을 공유했다. 외모 외에는 주체사상과 하등 연관이 없는 신인류 김정은이 혁명을 운운한다고 해서 감동받을 일은 없다. 아버지 김정일은 ‘상징정치’가 하강하고 ‘현실정치’가 상승하는 교차로에 이 준비 안 된 아들을 몰아넣었다.



 상징정치가 그나마 작동하려면 땔감과 식량조달이 선결과제다. 카다피는 석유로, 카스트로는 사탕수수와 바나나로 국민을 먹였다. 곡물생산이 조금 늘었지만 600만 명이 배를 곯고, 북한의 민둥산은 풀 한 포기 틔우기를 포기한 지 오래다. 핵이 남았다. 군부의 손에 말이다. 핵을 둘러싼 그 복잡한 방정식을 김정은 자신과 정치적 멘토들이 풀어내야 한다. 험악한 권력투쟁의 장에 내동댕이쳐지기 전에. 올겨울 그가 가장 먼저 착수해야 할 일이 핵정치에 관한 공부다. 핵공학보다 더 어려운 핵정치, 27세 청년에게 아버지의 유산은 험난하다. 여행은 시작되고 길은 없다. 지천명 나이까지 20여년, 그의 위태로운 곡예비행은 도대체 얼마나 갈까?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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