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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하고 진심 어린 마음의 상징,直火보다 뜨거운 재 속에 익혀야

중앙선데이 2011.12.25 03:40 250호 28면 지면보기
지금부터 3100년 전쯤 중국 주(周)나라의 주공(周公)이 만들었다고 하는 '의례'에는 혼례 후 시부모님을 뵐 때 신부가 시아버지에게 예물로 밤과 대추를 올린다고 기술돼 있다. 이때의 밤은 ‘공손하게 진심 어린 마음을 갖추어 올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김상보의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알아보는 ‘제철 수라상’ <5> 밤

조선 왕조는 주대(周代)에로의 복고주의로 흘러
'의례'를 표본으로 한 혼례를 택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폐백에서 시부모님에게 밤과 대추를 올리고 있다. 밤은 이렇듯 중국 고대사회에서 윗사람을 처음 뵐 때 부인네의 선물로 쓰였다.밤이 가장 경사스러운 날 예물로 쓰이게 된 이유로는 중국 양쯔강 유역에서부터 일본까지 펼쳐진 조엽수림문화(照葉樹林文化)지대에서 광범위하게 산야에 자생해 왔던 역사를 꼽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밤은 구석기시대가 끝날 무렵인 약 1만 년 전부터 조엽수림문화지대(중국 남쪽·한반도·일본)에서 식량으로 먹어온 작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조엽수림지대라 할지라도 한반도에서 자생한 밤이 유난히 크고 달았던 것 같다. 청동기 말경에 한반도 남쪽을 지배했던 한(韓)에서 배만 한 크기의 대율(大栗·큰 밤)이 나온다고 중국의 사서(史書) '삼국지'는 기록하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수서'역시 “백제에서 생산된 밤이 크다” 했다. 도대체 얼마나 크고 좋았기에 역사책에까지 기록되었을까.시대를 훌쩍 넘어와서 1907년, 일본은 자기 나라 전역에 밤나무가 있음에도 평양산 밤을 함종률(咸從栗)이란 이름으로 수입했다. 껍질을 벗기기가 쉽고 달아 호평을 받았으며 이후 이의 육성에 힘썼다.

이렇게 크고 맛이 단 밤은 연율(軟栗·음력 8월산, 조율(早栗)이라고도 했다), 생률(生栗·음력 9~10월산), 피적률(껍질이 저절로 잘 벗겨지는 밤), 황률(黃栗·껍질을 벗겨 햇볕에 바싹 말린 밤)로 구분돼 있었다. 허균(1569~1618)이 살았던 시절에는 경상도 상주의 피적률, 지리산의 주먹만 한 대율, 밀양의 대율 식으로 전국적인 명품 밤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어 있었다. ※ 상단 박스 중 식당 정보를 바로잡습니다  미마지 (예약제 맛집) : 충남 공주시 의당면 청룡리 357-2, 전화 041)856-5945

그래서 당연히 진공(進貢) 대상이 됐다. 피적률은 경상도 상주와 선산에서, 연율은 경상도 밀양에서, 생률은 전라도 옥구에서, 황률은 경상도 청도에서 진공했다('여지도서(輿地圖書)', 1757).

물론 이 진공된 밤은 산야에서 자생한 밤나무에서 채취한 것이 아니고 10년 계획으로 밤나무를 심어 육성한 결과물이었다. 홍만선(1643~1715)은 그의 저서 '산림경제'에서 “옛말에 10년 계획으로 나무를 심는다”는 뜻에 의하여 ‘종수(種樹)’의 기술 취지를 설명하면서 당시 민중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던 밤 심는 방법을 소개했다.
밤나무; 종자 밤은 한 송이에 세 톨씩 들어 있는 것이 좋다. 반드시 가운데 박혔던 것을 골라 심어야 한다. 만일 양쪽 가에 있던 것이나 외톨밤을 심으면 맺히는 송이마다 전부 한 톨씩만 여무는 외톨밤밖에 달리지 않는다. 밤나무는 씨로 심고 다음해 봄에 옮겨 심는다. 접붙이기는 하지 않는다.

연율이든 생률이든 불에 직접 구우면 목기(木氣)가 죽기 때문에 뜨거운 재에 묻어 푹 익기 직전 약간 설컹설컹한 상태(즙이 나오는 시점)에서 꺼내 먹었다. 푹 익히면 위장과 신장에 유익한 밤의 효능이 없어진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구워진 밤은 명나라 사신 접대 상차림에 올랐고, 궁중 진찬과 진연 등의 경사스러운 잔칫상에 올랐다.
생밤의 경우에는 여러 의례에 사용됐다. 첫 번째는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가례(嘉禮·궁중 혼례) 때 신부가 시아버지에게 올리는 현구고례(見舅姑禮·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뵙는 의례)에서 폐백용으로 쓰였다. 왕 가례에서는 5되, 왕세자 가례에서는 3되가 올랐다. 두 번째는 크고 작은 길례(吉禮)와 흉례(凶禮)의 유교식 제례(祭禮) 때 황율이 변(
·대나무로 만든 굽다리그릇)에 담겨 제사상 차림에 올려졌다. 세 번째는 궁에서 치르는 비공식적인 불교식 공양이나 무속제사에서 굽다리그릇에 담아 차려졌다.

이 밖에 가공식품을 만들기도 했다. 밤을 넣은 밥, 밤을 넣어 끓인 죽, 밤을 넣어 만든 김치, 밤을 넣어 만든 떡, 밤소를 넣은 단자, 밤을 넣어 만든 찜 등이 그것이다. 단자로 예를 들어 그 만드는 법을 보면, 무르도록 푹 찐 밤(생률 또는 황률)에다 쪄서 곱게 다진 대추·계핏가루를 꿀과 합해 소로 만들었다. 여기에 쑥을 합한 찹쌀가루를 쪄서 피(皮)로 한 뒤 앞에서 만든 소를 넣고 단자로 만든 다음 잣가루 고물을 묻혔다. 이것이 ‘청애단자(靑艾團子)’다(1829년).
산촌에서는 먹을 것이 없을 때 구황식물(救荒食物)이 되기도 했던 밤은 1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다사다난한 우리의 삶과 동고동락하고 있다.




한양대 식품영양학 박사.『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 『한국의 음식생활문화사』 『조선시대의 음식문화』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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