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코드명 ‘블랙 타이’를 찾아라

중앙선데이 2011.12.25 03:25 250호 24면 지면보기
턱시도는 1880년대 미국 뉴욕에 있는 ‘턱시도 파크’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이 공원은 ‘켄트’로 유명한 미국의 담배회사 ‘로릴란드’ 가문이 만들었다. 명사들은 공원에서 사냥과 낚시를 즐기고, ‘턱시도 클럽’이란 사교모임을 조직했다. 모임은 1886년 첫 번째 파티를 열었는데, 로릴란드 가문의 후손인 그리스월드가 ‘꼬리 없는’ 재킷을 입고 나타났다. 당시 예복은 옷자락이 길게 늘어진 연미복이었고, 19세기 미국인이라면 영국 신사의 규범을 충실하게 따랐을 터다. 그의 짧은 재킷은 무례하다 비난받을 만했지만, 오히려 새로운 것으로 인정받았다. 뉴욕의 신사들이 그를 따라 짧은 재킷을 입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턱시도 차림을 받아들이면서 한낱 유행이 아닌, 공식적인 예복으로 자리 잡았다.

연말 파티룩, 턱시도

2011 F/W 남성 컬렉션에서 선보인 화려한 이브닝웨어. 1 광택 있는 새틴 소재로 만든 랑방(LANVIN)의 이브닝 재킷. 2 로베르토 카발리(Roberto Cavalli)는 턱시도의 기본인 블랙에 반짝이는 시퀸으로 장식을 더했다.
이처럼 턱시도는 파격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예복답게 입는 법은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먼저 재킷은 라펠(lapel)에 따라 두 가지 형태가 있다. 가장자리를 둥글게 만든 숄 라펠(shawl lapel)과 아래 깃이 위로 솟은 피크트 라펠(peaked lapel)이다. 보통 턱시도는 모직 소재를 기본으로 하는데, 라펠은 실크나 새틴처럼 광택 있는 소재를 사용해 장식 느낌을 주기도 한다. 바지는 측면의 재봉선을 라펠과 같은 소재로 띠를 덧대 장식한다. 벨트는 매지 않는다. 대신 15㎝ 정도로 넓은 커머번드(cummerbund)를 복대처럼 허리에 두른다. 셔츠는 반드시 흰색이어야 한다. 가슴 부위에 주름 장식이 있는 프릴 셔츠가 기본이다. 칼라는 깃이 하늘로 솟은 윙칼라가 원칙이지만, 보통의 칼라도 괜찮다. 구두는 검은색 옥스퍼드화를 신거나, 광택 있는 소재인 페이턴트로 된 구두를 신으면 된다.

3 페이즐리 무늬를 새긴 에트로(Etro)의 화려한 턱시도. 4 알프레드 던힐(Alfred Dunhill)의 턱시도와 캐시미어 코트. 5 중국풍으로 붉은색 재킷과 차이나 칼라 프록코트를 선보인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
턱시도 차림을 요구할 땐 드레스코드를 ‘블랙 타이’라고 준다. 턱시도가 검은색 보타이를 ‘정석’으로 하기 때문이다. 보타이는 직접 묶거나, 묶인 채 나온 것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왕 보타이를 맬 거라면 직접 묶어보는 게 낫다. 리본 매듭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원하는 대로 스타일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타이의 나비가 풍성하면 귀엽고 위트 있는 분위기를, 나비가 작으면 차분한 분위기를 낼 수 있다. 턱시도가 약식 예복인 만큼 법칙에는 유연성이 있다. 보타이의 경우 다른 색깔이나 무늬가 있는 것을 맬 수도 있다. “드레스코드가 ‘블랙 타이’인 모임에서 참석자들이 검은 정장에 검은 넥타이를 맸다더라.” 드레스코드를 몰라 벌어진 해프닝을 탓하며 전해지는 말인데, 턱시도에 일반 넥타이를 매는 것도 괜찮다. 대신 우아한 느낌의 광택 있는 소재로 검은색이나 흰색 솔리드 타이를 선택해야 한다.

이처럼 재킷·바지·타이·구두 등 턱시도 차림을 구성하는 요소는 공식처럼 정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평등하게, 평균 이상으로 맵시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꽉 짜인 틀에선 조금만 빗나간 실수도 두드러져 보이고, 작은 센스가 감각적으로 돋보일 수 있다. 한 끝 차이가 성패를 판가름하는 만큼 일단은 기본에 충실하게 입는 게 최선이다.

6 화사한 노란색 타이는 짙은 색깔의 슈트 차림을 산뜻하게 바꿔줄 아이템이다. 알프레드 던힐 7 안경은 얼굴을 장식하는 액세서리가 된다. 동그란 뿔테 안경은 개성 있고 클래식한 분위기를 낸다. Dita by Optical W. 8 보타이는 턱시도의 상징이다. 이미 묶인 상태로 제작된 벨벳 보타이. 개인 소장품. 9 장갑은 가을부터 초봄까지 남성의 멋내기 도구다. 보통 구두와 색깔을 맞추므로 턱시도엔 검은 가죽 장갑을 낀다. DENTS by 유니페어10 로딩(Loding)의 브라운 레이스업 슈즈. 컬러 구두끈으로 딱딱한 슈트 차림의 분위기를 확 바꿀 수 있다.
‘블랙 타이’도 밝고 화사하게
‘블랙 타이’ 차림을 요구한다고 턱시도만을 입어야 하는 건 아니다. 일단 규칙을 터득했다면, 자신의 개성으로 규칙을 깨는 것이 진정으로 옷을 잘 입는 방법이다. 디자이너들도 ‘블랙 타이’란 코드명이 무색하게 화려한 이브닝웨어를 선보였다.2011년 가을·겨울 컬렉션에는 특히 다채로운 색과 다양한 소재의 재킷이 대거 등장했다. 매끄러운 벨벳과 광택 나는 실크 소재로 노란색, 와인색, 분홍색처럼 격식과는 멀어 보이는 색깔을 사용했다. 화려한 자수까지 놓아 ‘블랙 & 화이트’의 예복 전통을 전복시켰다.
랑방은 새틴 소재로 노란색과 옅은 핑크색 이브닝 재킷을 선보였다. 셔츠 안엔 터틀넥을 겹쳐 더 젊고 가벼운 느낌을 줬다. 에트로는 벨벳 소재 재킷과 셔츠에 브랜드 특유의 페이즐리 무늬를 넣었다. 가장 센세이셔널한 ‘블랙 타이’는 에르메네질도 제냐다. 황동색과 붉은 새틴 소재에 자수를 놓은 중국풍 예복을 런웨이에 올렸다. 로베르토 카발리는 기본 검은 재킷에 라펠의 변화를 줬다. 시퀸(반짝거리는 얇은 장식 조각)으로 반짝이는 효과를 주거나, 과감하게 가죽을 재킷 라펠 소재로 선택했다.

이런 파격은 턱시도가 패션 피플 사이에선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옷차림이 되면서 나타났다. 쫙 빼 입는 자리가 늘어난 것보다는 청바지를 입고 새틴 소재의 검은색 재킷을 매칭하는 식으로 일상에서의 턱시도 응용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다만 이런 시도는 런웨이에서조차 주목 받는, 난이도가 높은 스타일링이라는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

평소 슈트 차림에 구두 끈만 바꿔도
소중한 결혼식에 입을 턱시도도 빌려 입기가 다반사인데, 1년에 몇 번 없는 날을 위해 턱시도를 따로 장만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이땐 갖고 있는 슈트에 액세서리를 잘 활용하면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옷차림을 완성할 수 있다. 실제 격식 있는 자리에서도 턱시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라운지 슈트(lounge suit)’ ‘세미 포멀(semi formal)’ ‘블랙 타이 옵셔널(black tie optional)’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땐 짙은 감색이나 회색 등 평소에 입는 어두운 색깔의 슈트에 소품으로 변화를 주는 것으로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쉽고 간단한 변화는 타이로 줄 수 있다. 한국 남성들은 평소 슈트 차림에 빨강·노랑·주황색 등 밝은 타이를 매는데, 이런 화려한 색은 사실 비즈니스용이 아니라 파티용이다. 그중에서도 짙은 색깔의 슈트에 노란색 타이를 매면 모임에서 산뜻하고 발랄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일반 슈트에 보타이를 매는 건 권하지 않는다.

구두도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검정 구두 대신 회색으로 그라데이션(색상에서 명도를 서서히 달리하는 표현기법) 된 것을 선택하거나 구두 끈을 바꿀 수도 있다. 보통 구두 끈은 구두 색깔에 맞춰 묶는데, 빨강·노랑·보라색처럼 튀는 색으로 교체한다. 갈색 구두라면 빨간 끈, 검정 구두라면 민트색 끈으로 확실한 포인트를 줄 수 있다.

f행커치프나 부토니에도 활용할 수 있는 소품이다. 재킷 왼쪽 가슴의 주머니에 꽂는 행커치프는 남성들의 최고 멋내기 중 하나다. 주머니 위로 약간 삐져나온 천조각이지만 가슴 부분에 자연스러운 입체감으로 부드러운 이미지를 줄 수 있다. 부토니에는 결혼식에서 신랑들이 왼쪽 깃에 꽂는 꽃을 떠올리면 된다. 재킷의 왼쪽 깃에는 ‘플라워 홀’이라고 부르는 작은 구멍이 있는데, 여기에 생화나 동전만 한 액세서리를 꽂는다. 멋을 내겠다고 타이와 행커치프, 부토니에를 모두 하는 건 금물이다. 지나친 건 안 하느니만 못하다. 타이든, 구두든 한 가지를 선택하고 집중하는 것이 좋다. 또 평소 입는 슈트를 활용할 때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반드시 내 몸에 맞는 슈트여야 한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