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럽 위기, 잔다르크가 필요하다

중앙선데이 2011.12.25 01:39 250호 21면 지면보기
내년 국내외 주식시장에 대한 소견을 밝히면서 연재를 마무리할까 한다.
국내 상황을 먼저 살펴 보면 김정일의 사망은 주식시장의 심각한 이슈는 아닌 것 같다. 과거 김일성 사망을 비롯해 각종 북한 이슈는 시장 단기 조정 요인이었을 뿐 길게 지속되지 못했다. 북한 체제 붕괴에 대한 우려가 상존하지만 중국·미국 등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 상황을 고려하면 체제 급변 가능성을 크게 보기 어렵다. 새삼스레 북한 문제를 이유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거론될 상황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오히려 주식시장 참가자 입장에서는 북한과 같은 과도기적 이슈보다 경기 둔화의 장기화와 기업 실적 변화라는 이슈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필자가 최근 기업 실무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최소한 내년 1분기까지는 기업 실적 둔화가 이어질 전망이다. 시장 컨센서스를 보면 국내 대표기업들의 올해 순이익은 약 92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전년보다 5.8% 늘어났지만, 연초 예상한 104조원에 비하면 11% 적은 것이다. 올해 2분기까지 기업 실적이 호조를 보였지만, 3분기 들어 경기 둔화의 영향이 반영되며 실적이 악화됐다. 애널리스트의 추산을 모아보면 내년 예상 순이익은 105조원으로 올해보다 14% 급증할 전망이다. 증시 애널리스트들의 추정치가 기업 실무자들의 감보다 꽤 낙관적이다. 따라서 내년이 되면 실적추정치 하향 조정 가능성이 커 보인다. 내년 1분기 기업 실적에 대해 면밀한 점검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으로 유럽 부채 위기가 내년 주식시장을 여전히 괴롭힐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유럽 정부와 유럽중앙은행(ECB)이 이 문제를 해결할 적극적인 의지나 능력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미국이 2008년 금융위기에서 탈출한 경우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분명하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자 미 정부는 금융위기에 대응해 부실 자산 매입, 은행 자본 확충 목적의 7000억 달러 규모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을 단행했다. 중요한 것은 대규모 구제금융 준비를 한 달 정도의 짧은 시간에 해치웠다는 점이다. 이후 미 정부는 7870억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안,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제로금리 및 양적 완화 정책을 잇따라 단행하며 위기를 타개해 나갔다.

반면 유럽은 미국의 TARP와 유사한 기능을 맡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2010년 중순에 출범시켰지만, 규모 면에서 부실 자산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그 역할과 규모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유로존 17개국의 의회 비준을 모두 거쳐야 해 의사 결정 속도가 느렸다. 결국 유럽은 스스로 EFSF 실효성을 반감시키고 있다. 또한 ECB가 유럽연합(EU) 조약상의 제약을 이유로 FRB와 같은 대규모 부실채권 직매입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ECB가 금융회사에 자금 대출을 지원해 금융회사의 국채 매입을 유도하는 간접 방식을 시도 중이지만, 대출받은 자금으로 금융계가 부실 국채를 매입할 가능성이 작고 대출 규모가 2000억 유로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럽 부채 위기를 진정시키기에 부족해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유럽 각국에 재정 긴축을 독려하는 상황에서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도 기대하기 힘들다.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 두 가지 모두 유럽 위기를 완화하는 도구가 되기 힘든 상황이다. 잉글랜드의 공격으로부터 프랑스를 지켜낸 잔다르크처럼 총대를 메고 유럽 위기 해결을 위해 유럽 국가들을 적극 설득할 사람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장에서는 미국 FRB 버냉키 의장처럼 ECB의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그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했지만 최근의 거동은 실망스러운 편이다.

올해 한국 증시는 중국·대만 등 주변 아시아 국가에 비해 꽤 선방하고 있다. 주변국들이 연초 대비 20% 이상 급락한 데 비해 코스피는 9% 하락에 그쳤다. 한국 대표 기업들의 펀더멘털이 좋기에 가능한 일이다. 내년 1분기까지는 올해 하반기 주식시장을 힘들게 했던 세계 경기 둔화와 유럽 위기가 지속돼 보수적 투자가 부득이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 와중에 위대한 기업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도 병존하리라 생각된다. 내년 주식시장을 준비하는 지금, 최악을 대비하되 최선을 꿈꾸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필자가 이 난에 연재를 시작한 지 어언 9개월이다. 제법 긴 시간이었지만 대형 이슈들로 거시경제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이라 금세 지나간 느낌이다. 매달 글을 연재하면서 급변동하는 주식시장 최전방에서 체감한 솔직한 심정을 독자들께 전달하려고 나름대로 애썼다. 여러분의 현명한 투자에 도움이 됐길 바라며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박건영(44) 2004년 미래에셋자산운용에 몸담은 뒤 간판 펀드인 디스커버리펀드를 최고 수익률 펀드로 만들었다. 2009년 브레인투자자문을 세워 투자자문사 전성시대에 일조했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