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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먼삭스 vs 리먼브러더스, 운명 가른 리스크 경영

중앙선데이 2011.12.25 01:31 250호 24면 지면보기
2008년 미국 월가에서 시작돼 글로벌 시장을 강타한 금융위기는 전 세계 금융산업 지형을 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15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4대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한 것을 비롯해 미국에서만 모기지업체 2위 뉴센추리파이낸셜(New Century Financial)을 포함해 모두 80여 개 대출회사가 문을 닫았다.

딜로이트와 함께하는 위기관리 비법 ④ 리스크 인텔리전스 경영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을 계기로 시장을 강타한 금융위기도 따지고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상처가 곪아 터질 징후는 이미 사태 발발 전에도 도처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조짐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응한 업체는 살아남았고 변화의 흐름에 둔감했거나 무시한 회사는 사라졌다.

대표적 승자가 골드먼삭스다. 이 회사는 이미 2006년 말부터 대재앙의 씨앗을 감지했다. 날마다 자체 손익계산서를 검토하는 내부 시스템에 따르던 중 열흘간 회사 전체의 융자금 규모가 줄어드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른 부문에서도 많은 지표가 미약하지만 분명한 신호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즉시 부문별 리스크 관리자들과 자산운용 담당자들을 회의에 소집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수집한 다양한 데이터를 리스크 관리 모델을 통해 분석했고, 상황이 한층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위기가 현실화할 경우 직접 타격을 받게 될 자산담보부증권(CDO)을 처분하는 등의 방식으로 위험에 대한 노출도를 줄였다. 경영진은 리스크 관리 모델의 분석 결과를 중시하면서 외부환경 변화에 대해 신속한 ‘판단’을 내리는 데 주력했다.

기업들이 불확실성 시대에 생존과 성공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수많은 잡음 가운데 묻혀 있는 미약한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기업의 경계심을 늦추는 요인은 도처에 깔려 있다.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사력을 다하는 신생 업체는 물론이고 시장에서 입지를 굳힌 기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성공은 자기 만족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또 다른 성공을 만들어낼 수 있는 변화를 거부하게 만들기도 한다. 변화에 대한 불감증은 조직구조의 속성에 따라 증폭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계층적 조직은 복합적 사업부 구조 또는 사일로 구조(개별 독립구조)로 복잡하게 구성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분산형 조직의 경우 효과적 의사소통이 어려워지고, 변화에 대한 경계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구조적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무시되고 축소되고 일상 업무에 묻혔던 신호들은 위기가 표면화하기 이전인 그때 그 시점에도 도처에 널려 있었다. 스스로의 역량이나 시장 지배력을 과신하거나 새로운 기술과 경쟁자의 출현 등 환경 변화를 살피는 것을 게을리할 때 변화가 야기하게 될 영향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길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AIG의 금융 계열사를 이끌었던 조셉 카사노는 2008년 9월 미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결코 손실을 입지 않을 것이다. 다양한 투자처에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강력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또 글로벌 트레이딩 시스템을 통해 훌륭한 재무구조를 보유하고 있다”고 자신만만해했다. 그러나 불과 6개월 뒤 AIG는 18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반면 현명한 기업은 다가올 미래의 변화를 읽는 데 많은 것을 투자한다. 기업 외부에서 기업 안으로 들어오는 신호를 감지하는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은 물론이고 외부환경의 변화 자체를 연구하는 데도 상당한 주의를 기울인다.

1973년 1차 석유파동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다국적 석유기업 로열더치셸은 중동 정세의 진전 방향과 대응에 대한 몇 가지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 한 시나리오는 석유를 생산하는 나라의 군국주의 확대에 따른 석유 위기 발발에 관한 것이었다. 회사는 이미 마련해둔 위기 시나리오에 시시각각 표출되는 여러 신호를 더해 변화에 적극 대응해갔다. 위기를 예견한 상태에서 생산설비의 증설을 자제하고 정제 효율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운영전략을 재빠르게 수정했다.

반면 경쟁 기업들의 반응은 대체로 굼뜨기 그지없었다. 대부분 회사는 중동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변화를 눈치채는 데 수년이 걸렸고 앞다퉈 정제설비를 증설하기 시작했다. 이는 과잉생산과 수익성 감소를 낳았고 덕분에 로열더치셸은 그로부터 약 20년간 안정적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160년 역사에 걸쳐 세계 최고 수준의 성장을 지속해오고 있는 독일의 장수기업 지멘스(Siemens)는 상황 변화 추세에 부합하는 신성장동력을 발 빠르게 발굴하고 업계를 선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비결은 ‘미래의 모습(Picture of the Future)’이라는 자체 연구결과를 통해 가시화된다. 이 회사 경영진은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주요 도구로 미래 연구를 수용할 뿐 아니라 연구결과들을 곧바로 전략수립과 경영, 리스크 관리에 반영해 활용하고 있다. 10~15년 후 사회와 경제·정치 시스템이 어떻게 발전해갈지에 대한 감지와 예측을 통해 미래에 선택·집중해야 할 투자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성장 가능성이 적은 사업은 정리하는 등의 시나리오를 수립하는 것이다.

2025년 세계 물 소비량이 현재보다 약 40% 이상 늘 것으로 예상한 지멘스는 최근 수자원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과학적 연구와 조사를 통해 미래 고객들의 새로운 요구를 찾아내고 그에 부합하는 신상품을 개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내년 1월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논의될 글로벌 리스크와 대응 방안이 초미의 관심사다. ‘새로운 모델 수립을 위한 대변혁’이라는 주제는 비장하기까지 하다. 지난 3월 일본 대지진에서부터 유럽발 재정위기, 리비아 사태, 월가 점령 시위까지 올 한 해 증폭된 불안정한 글로벌 기업 경영환경을 해쳐나가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다. 포럼 기간 중 발표되는 ‘글로벌 리스크 2012 보고서’에서는 리스크 환경에 대한 사전 감지와 재빠른 대응을 강조할 예정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분명 녹록지 않은 일이지만 위기관리 측면에서는 빠뜨릴 수 없는 과제다. 시나리오 플래닝 등 동원 가능한 다양한 분석모델을 적용하고, 금리와 인플레이션, 소비자 지출, 경제성장을 예측하는 데 좀 더 힘쓸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을 둘러싼 외부환경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적극 고려하고자 하는 경영진의 의지와 능력이다. 경영진이 보상 없는 리스크와 보상 있는 리스크, 즉 위협과 기회를 제대로 인식할 때만 비로소 적절한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글로벌화하는 만큼이나 각종 리스크 또한 국경을 뛰어넘는 것이 오늘날의 기업환경이다. 기업 경영의 전 영역, 조직의 전 부문에 걸쳐 지속적 경계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리스크 인텔리전스 경영의 핵심 축이다.



송정선 딜로이트 기업 리스크 자문본부 이사.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국내 다수 대기업의 리스크 관리 관련 컨설팅에 참여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내부감사협회와 기업체들을 상대로 전사적 리스크 관리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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