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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 발생, 세포 분열 … 생명현상 조절하는 몸속 실세

중앙선데이 2011.12.25 01:18 250호 28면 지면보기
1989년 하버드대 세포 및 발생생물학과 조교수이던 빅터 앰브로스(Victor Ambros)는 실험실에서 기존 생물학적 지식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결과를 관찰했다. 앰브로스 박사는 발생학 연구의 좋은 모델인 1㎜ 길이 꼬마 선충(지렁이의 일종)을 이용해 발생과정에서 중요한 스위치로 작용하는 유전자를 연구하고 있었다. 초점은 선충이 유충에서 성충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조절하는 스위치 중 하나인 ‘lin-4’라는 유전자였다. 기능적으로는 유전자가 분명한데 크기가 너무 작고 실제로 ‘단백질 형성’이라는 유전자의 특성을 갖고 있지 않아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했다.

송기원의 생명과 과학 마이크로 RNA

92년 다트머스대로 옮긴 박사는 lin-4 유전자가 단백질 형성 기능을 하는 대신 22개 핵산으로 이루어진 작은 RNA조각을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RNA는 유충이 성충으로 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lin-14 유전자의 단백질 발현을 조절하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RNA는 DNA와 유사하나 산소 원자를 하나 더 가지고 있는 다른 종류의 리보핵산이다. 박사는 꼭 18년 전인 93년 12월 과학 잡지 셀(Cell)에 논문을 발표했다. 이렇게 해서 마이크로(micro) RNA의 존재와 기능이 세상에 처음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 과학계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마이크로 RNA에 의한 단백질 발현 조절이 선충의 발생 과정에만 있는 이상한 현상이라고 여기고 생명 현상의 일반적인 조절과정으로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2000년 선충이 또 한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선충에서 lin-4와 유사한 발생과정의 여러 유전자를 한꺼번에 조절하지만 단백질을 만들지 않는 또 다른 작은 유전자 let-7이 발견됐다. 또 그와 유사한 유전자가 선충뿐 아니라 진화과정에서 식물 및 모든 포유류와 사람에게까지 보존되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마이크로 RNA의 중요성이 비로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마이크로 RNA는 평균 22개의 핵산으로 만들어진 작은 RNA 분자다. 기존 분자생물학에서 RNA는 유전정보 전달의 주체인 DNA의 지시에 따라 생명 현상의 여러 기능을 하는 단백질을 만들기 위한 매개체 정도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 결과는 통념을 깨고 RNA가 유전자의 발현을 직접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마이크로 RNA는 ▶대상 유전자가 단백질을 만들도록 중개하는 ‘발현 매개체 RNA’에 결합해 이를 억제하거나 ▶매개체 RNA를 아예 분해해 버리도록 유도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실제 유전자의 발현이 억제되는 효과가 나타나므로 결국 유전자의 기능 수행을 조절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빛내리 교수의 연구 덕분에 마이크로 RNA가 과학에 흥미를 갖고 과학자의 꿈을 키우고 있는 학생들에게 매우 친숙한 주제다. 김 교수는 이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로 마이크로 RNA 연구가 태동되던 2001년 서울대에 부임한 이후 줄곧 이의 생성 과정과 생체 내 기능을 연구해 왔다. 마이크로 RNA는 그 유전자에서 ‘머리핀 모양’의 좀 큰 마이크로 RNA 전구체로 만들어진 후, 실제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21~22개 핵산으로 이루어진 마이크로 RNA로 잘려진다. 김 교수는 어떻게 전구체 RNA가 마이크로 RNA로 만들어질 수 있는지 그 과정과 이 과정에 작용해 전구체를 잘라내는 드로샤-DGCR8 등의 효소를 세계 최초로 규명하기도 했다.

사람의 유전체에는 1000개 이상의 마이크로 RNA를 만드는 유전자 코드가 존재한다. 따라서 1000 종 이상의 마이크로 RNA가 생체 내에서 만들어진다. 또한 사람에서 발현되는 유전자의 약 60%가 이 RNA의 조절을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끼치다 보니 마이크로 RNA에 의해 조절을 받지 않는 생명 현상이 없을 정도다. 처음 알려진 것처럼 개체의 발생과정뿐 아니라 줄기세포의 분화, 세포 분열, 세포의 암화 과정, 신경 신호 전달 등이 마이크로 RNA에 의해 조절되는 것으로 최근 속속 밝혀지고 있다.

마이크로 RNA가 많은 중요한 생명 현상의 조절 기능을 수행하므로 그의 발현에 이상이 있을 경우 여러 질병의 직접적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인위적으로 합성된 마이크로 RNA를 인체에 집어넣고 발현시켜 다양한 생체 기능을 조절하게 함으로써 질병 치료에 응용하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가장 어려운 기술적 난관은 생체의 표적이 되는 세포 내로 어떻게 마이크로 RNA를 전달하는가 하는 부분이다. 지난 10년간 새로이 태동되었던 마이크로 RNA 분야 연구의 눈부신 발전을 보며, 마이크로 RNA가 실제로 난치병 등의 새로운 치료법으로 개발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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