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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주 처벌을 보는 눈

중앙선데이 2011.12.25 01:12 250호 30면 지면보기
민주주의는 가장 덜 끔찍한 국가운영 방식이다. 하지만 지나치면 좀 무섭다. 2년 전 스위스에 살고 있을 때다. 직접투표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이 나라에서 국민투표를 한 적이 있다. 은행원, 치즈공장 직원, 시계 장인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인 건 이슬람식 첨탑 건축 허가 여부였다. 국민투표까지 간 끝에 이제 이슬람식 첨탑을 짓는 건 중립국 스위스에서 불법이다.

영국에 이런 제도가 없는 게 천만다행이다. 아마 있다면 (농담이지만) 영국인들은 이슬람교를 금지하거나, 143년 만에 공개처형을 재도입하자는 결정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영국인들은 유럽연합(EU)을 탈퇴하자는 투표를 할 게 뻔하다.

‘EU 때리기’만큼 영국의 각계각층을 똘똘 뭉치게 하는 주제도 없다. 대다수(71%)가 EU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주장한다. 만약 내일 당장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면 영국은 아마 며칠 후면 대서양에서 홀로서기를 하게 될 거다.

EU 회의론의 핵심은 두려움이다. 과거에 전쟁을 했던 나라들과 왜 같은 침대에 누워야 하는가. 대륙인들, 특히 프랑스인과 독일인들이 영국인 삶의 방식을 바꿀 거라는 추측도 한몫했다. 예전엔 “왜 영국에선 유로화를 쓰지 않느냐”고 많은 이들이 내게 물었다. 지금은 “유로화를 안 써서 다행이겠다”는 말을 듣는다. 어느 쪽이든 별 차이는 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영국이 유로화에 동참하지 않은 것, 또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최근 EU 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건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어서다. 게다가 보수당 자체의 반EU 정서도 강한 편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건 실수라고 본다. 국제사회에서 자신들의 위상이 낮아지고 있다는 걸 아는 프랑스·독일은 EU 핵심 국가로서 영향력이 확대되길 기대할 것이다. EU와 같은 정치·경제 블록에 속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영국에 숨쉴 틈을 만들어준다. EU 없이는 영국도 어려워질 게 자명하다.

이건 다른 얘기지만, 정봉주 전 의원에게 내려진 유죄 판결은 최악의 자책골이라고 생각된다. 이명박 정부와 한국법률 체계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그보다 더 좋은 비판 소재는 없을 거다. 이명박 대통령이 다음주 있을 사면(赦免)조치 때 기업인뿐만 아니라 정 전 의원에게도 사면조치를 내린다면 정치적으로 스마트한 결정이 될 수 있다.

나쁜 의도를 갖고 거짓말을 한 것으로 판명된 순수한 명예훼손은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다른 민주국가에서 하듯 벌금형을 매기고 공개적 비판을 받게 하는 것으로도 족하지 않을까. 한국에선 권력자에 대한 비판 때문에 형사처벌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놀라운 일이었다.

어느 부처 장관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그런 질문을 하는 우리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표정으로 “명예훼손”이라고 즉답했다. 하지만 비판의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를 상상할 수 있는가.

비판을 감내하는 능력은 좋은 정부를 가리는 척도다. 특히 풍자는 국민이 기성 정치권에 맞서는 최고의 방패다. 정치인들로서는 매주 풍자의 대상이 되는 것이 수년에 한 번씩 오는 재선보다 더 두렵다. 요즘 한국에서도 정치 풍자가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한국에선 좌파들만 정치 풍자를 해온 것 같지만 또 누가 알겠나, 민주통합당 역시 풍자의 대상이 될 것인지를.

2012년은 한국과 전 세계가 불확실성을 느끼는 해가 될 것 같다. 이럴 때, 우리는 국가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 즉 정치인들을 직시해야 한다. 또 우리에게 웃음을 줄 사람들도 필요하다. 이 둘을 하나로 엮는 게 좋지 않을까.



다니엘 튜더 옥스퍼드대에서 철학·경제학을 전공한 후 맨체스터대에서 MBA를 땄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처음 방한했으며 지난해 6월부터 서울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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