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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과 코딩이론

중앙선데이 2011.12.25 01:07 250호 31면 지면보기
어미 기러기 한 마리가 낳은 알 몇 개를 인공부화기에 넣어 부화시켰다. 또 다른 몇 개는 거위 둥지에 넣어 부화시켰다. 거위 둥지에서 껍질을 깨고 나온 새끼 기러기들은 거위가 제 어미인 양 졸졸 따라다녔다. 반면에 인공부화기에서 나온 기러기들은 부화시킨 사람을 어미로 착각하고 따라다녔다. 거위 둥지에서 나온 기러기 형제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인식하고 따르는 현상을 ‘각인(imprinting)’이라고 한다. 1973년 노벨상을 받은 콘라트 로렌츠가 발견한 현상이다. 기러기와 똑같지는 않지만 모든 동물은 비슷하다. 늑대 젖을 먹고 자란 늑대소년도 늑대를 제 어미로 알고 자랐다. 늑대처럼 기어 다녔으며, 늑대 울음소리를 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현상을 ‘코딩(coding)이론’이라 부른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다르다. 유전자가 다르게 코딩되어 서로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같은 부모에게 태어난 형제도 코딩이 다르다. 심지어 일란성 쌍둥이도 다르게 코딩된다. 그 때문에 사람은 달리 행동한다. 하지만 같은 부모 아래서 자라면 다르지만 비슷하다. 이 또한 비슷하게 코딩되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돌연 사망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마치 재방송을 보는 것처럼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와 비슷한 광경이 TV 화면을 통해 보인다. 울부짖는 북한 주민들을 보면서 과연 자신의 부모가 죽었을 때도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확실히 이들과 나는 코딩이 다르게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일부에서는 연출이니 억지니 하며 북한 주민들의 행동을 깎아내린다. 그러나 이런 반응들을 코딩 효과로 분석해 보면 어렵지 않게 해석할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자마자 북한 내부적으로 신격화를 시작하는 것도 코딩의 일종이다. 그의 사망 직전에 백두산 천지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온통 붉은색의 신비한 노을이 백두산에 새겨진 김 위원장의 친필 주위를 비췄다는 것이다. 또 함흥시 동흥산 언덕에 있는 김 위원장 동상 주위에 백학이 나타났다고도 한다. 과거 김일성이 나뭇잎을 타고 압록강을 건넜다는 신격화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이지만 코딩 효과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코딩이 필수적이다. 페달을 밟지 않으면 자전거는 쓰러지게 마련이다.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의 시신을 영구 보존하는 것도 지속적인 코딩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코딩은 정치적 상징조작이란 측면에서 미국의 정치학자 찰스 메리엄이 주장하는 ‘미란다(miranda)’ 개념과 비슷하다. ‘미란다’란 각종 상징조작을 통해 사람들을 내면적으로 복종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감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측면이 강하다. 특히 정치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강력한 카리스마와 같은 인적 상징을 코딩시켜 일반인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고독에 대한 공포를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다. 이른바 ‘격리불안’이다. 그래서 어떤 정서적인 공감대를 늘 갈구한다. 유사한 코딩을 통한 정서적 공감대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강력한 코딩이 이뤄지면 “팥으로 메주를 쒔다”고 말해도 믿는다.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조차 한번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사실을 믿게 된 것도 인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장기집권에 성공한 독재자들은 모두 상징조작을 통한 코딩에 능했다. 그래서 합리적 의심이 없는, 일방적 코딩은 백지상태보다 위험하다. 북한 주민에게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한 이유다.




이창무 미국 뉴욕시립대 형사사법학(Criminal Justice) 박사. 마르퀴즈 후즈후 세계인명사전 형사사법 분야에 국내 최초로 등재됐으며 저서로 『패러독스 범죄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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