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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군정치 종착점은 대형마트

중앙선데이 2011.12.25 01:05 250호 31면 지면보기
깨끗한 대형마트의 진열대 위엔 각종 공산품과 생필품이 푸짐하게 놓여 있다. 진열대 옆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내려온다. 그 뒤엔 여동생인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과 그의 남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최용해 노동당 비서 등 북한 실세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따른다. 김 위원장이 사망 전 마지막으로 북한 주민에게 보여준 현지지도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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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김 위원장의 사망 시점을 지난 17일이라고 발표했다. 그보다 이틀 전인 15일 북한 매체들은 그가 평양시 광복지구 상업중심을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대형마트인 이곳을 둘러보는 사진도 공개됐다. 이 한 장의 사진 속엔 북한 통치의 모순이 담겨 있다. ‘선군정치’를 내걸었던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의 종착점은 군이 아닌 마트였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통치 방식은 현지지도를 빼놓곤 얘기할 수 없다. 그가 방문하는 지역·분야는 정책적으로 최우선 순위를 뜻한다. 그가 발전소를 찾을 땐 자력갱생과 생산성 증대를 독려하는 ‘강계 정신’이 강조된다. 군 부대를 찾으면 ‘선군(先軍)으로 다져진 총대의 위력’이 어김없이 부각된다. 그가 간 곳의 모범적 성과는 당 조직을 통해 해당 분야의 전범이 돼 북한 전역에 전파된다.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는 “대·소한의 강추위와 삼복의 무더위도 가리지 않는 애국헌신의 강행군”으로 북한 주민에게 선전된다. 그뿐 아니다. 누가 몇 차례나 현지지도를 수행했느냐에 따라 측근과 실세로 분류된다. ‘문고리 권력’의 크기를 재는 가늠자다.

하지만 불행히도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가 가장 많은 분야는 군 부대였다. 이관세 전 통일부 차관의 분석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08년까지 총 1141회의 현지지도 가운데 군은 642회(56.3%)나 된다. 반면 경제 분야는 192회(16.8%)에 불과했다. 김일성 주석의 ‘3년상’을 마무리한 97년 10월 김 위원장은 사회주의 권력의 정점인 노동당 총비서에 추대된다. 그 직후 첫 현지지도 대상은 제564군 부대(공군사령부)였다. 당시 북한방송은 “세계의 그 어느 사회주의 지도자도 당의 최고위직에 오른 후 첫걸음으로 군대를 찾은 예가 없다”고 치켜세웠다. 선군정치를 내건 김 위원장에게 군은 통치의 수단이자 표현이었다.

그사이 북한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김용현 동국대(북한학) 교수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94년과 올해를 비교하면 후계 구축 과정이 짧았고, 경제적으로도 훨씬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두 차례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에 뭉칫돈을 쏟아 붓는 사이 북한을 떠나 한국에 온 새터민은 지난 10월 현재 2만2892명이었다. 북한 인구(2400만 명)를 감안하면 1000명 중 1명이 남한에 있는 꼴이다.

김 위원장의 마지막 현지지도 장소가 대형마트였다는 사실은 북한 체제의 모순과 고민을 잘 말해준다. 선군정치·병영국가의 역설이자 김정은 체제가 갈 길에 대한 시사점이다. 대형마트의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는 병든 아버지의 뒤에서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은 과연 무엇을 느꼈을까. 그는 과연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회생을 추구할 담력이 있을까. 그의 선택에 새삼 시선을 던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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