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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BEST] 4060 다시 세상으로 ③ CJ오쇼핑 이애경씨

중앙일보 2011.12.22 03:30 주말섹션 4면 지면보기
두 딸을 키우며 집안 살림에만 몰두했던 서른일곱 살 전업주부. 어느 날 TV에 나오기 시작했다. 주부 리포터로 아침방송을 휘젓더니 마흔여덟의 나이에는 엄청난 경쟁을 뚫고 쇼호스트 공채시험에 합격했다. 주부판 신데렐라 이야기라고? 아니, CJ오쇼핑의 11년차 쇼호스트 이애경(58)씨의 삶에 로또 같은 행운은 없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치열한, 그리고 준비된 삶이 있을 뿐. 이씨는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고 말했다. “나이를 탓하며 주저앉기엔 남은 인생의 기회가 너무 많다”는 그를 만났다.


마흔여덟에 쇼호스트 합격
주부리포터 10년 경력 덕 봤죠

글=문은영 객원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출근하면서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인 서울 방배동 CJ오쇼핑 2층 분장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예쁘게 찍어 주세요. 하지만 주름은 굳이 가리지 말아 주세요”라는 말에서 예순을 눈앞에 둔 최고령 쇼호스트의 자부심이 묻어난다.
-전업주부에서 TV 주부 리포터로, 쇼호스트로 거듭된 변신이 놀랍다. 전업주부로서의 삶은 어땠나.



“1978년, 스물다섯에 동갑인 남편과 연애결혼했다. 시부모님 밑에서 살림 배우며 두 딸을 낳고 여느 주부들처럼 평범하게 살았다. 내 집 마련을 위해 허리띠 졸라매고 억척스럽게 살림하는 주부였다. 아침에 남편 출근시키고 옆집으로 마실 가서 차 한잔 마시며 수다 떠는 주부들도 있지만, 나는 생산성 없는 일이 싫어 피했다. 외출도 거의 하지 않고 애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했다. 가진 것 없고 아는 것 없지만 배움에 대한 욕망과 갈증이 큰 시기였다. 방학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학교며 식물학교·곤충학교·동물학교 등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남들은 아이들만 데려다주고 자기 볼일을 봤지만, 나는 나도 전문가 선생님에게 배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싶어 아이들과 함께 공부했다.”



-전업주부에서 TV 주부 리포터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90년 7월 KBS 방송국에서 박물관학교로 취재를 나왔다. 학부모 인터뷰를 해야 했는데 선생님이 나를 추천했다.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라 창피하기도 했지만 ‘주부 모습 그대로라 자연스럽다’고 해서 20분 정도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작가와 PD가 ‘편집할 것이 없을 정도로 말을 조리 있게 잘한다’면서 ‘주부 리포터로 일해 보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그해 8~9월에 KBS 주부 리포터 공개채용 시험이 있다고 알려와서 응시했다. 주로 30대 초반의 젊은 주부들이 뽑혔는데 내 나이는 서른일곱, 당시 최고령 주부 리포터로 뽑힌 것으로 기억한다.”



-원래 방송 분야의 일에 관심이 있었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다. 식품영양사 자격증이 있으니 결혼 후에라도 취직하기 쉬울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워놓고 취직을 하려 했더니 일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분했고 한편으론 실망도 컸다. 원래 성격이 소극적인 편인 데다 방송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서 내가 주부 리포터로 일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전업주부였을 때부터 스크랩하고 메모해 온 노트. 벌써 11권이나 쌓였다. 방송을 준비할 때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보물창고다
-방송이 힘들지 않았나.



“첫 방송을 할 때다. 이계진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내 순서가 되니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할 말과 안 할 말, 실수하면 안 되는 부분 등이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첫 방송이고 생방송인데 실수하지 않고 방송을 마칠 수 있었다. 그 방송이 내 인생을 바꿨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주부 리포터로서 어떤 프로그램을 주로 했나.



“90년 가을부터 2001년 봄까지 일했다. 주로 주부 대상의 아침 프로그램을 많이 맡았다. ‘아침마당’ ‘생방송 지금’ ‘사랑방 중계’ 등 KBS 프로그램뿐 아니라 EBS 교육방송까지 하게 됐다. 주부 리포터의 영역이 생활 전반을 다루는 것이라 생소하지 않았고, 내 관심사와 많이 겹쳐 있어 별 어려운 점은 없었다. 원래 성격이 소극적이라 남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편이었는데 리포터로 일하면서 성격이 달라졌다. 아니, 적극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나만의 강점이 있었나.



“주부 리포터는 기동성이 생명이다. 방송이 잡히면 새벽에 출근해 저녁에 일을 마친다. 젊은 엄마들은 아이들 때문에 지속적으로 일을 하기 어려웠다. 반면에 나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4학년, 1학년이라 시간을 내기 수월한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 둘 그만두는 가운데 나는 끝까지 일을 할 수 있었다. 또 살림살이에 대해 많은 경험을 한 후에 방송을 시작하게 되니 유리한 점이 많았다. 취재를 할 때면 ‘인간적으로 풍성한 느낌이 든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많았다.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



-주부 리포터에서 쇼호스트로 직종을 바꾸게 된 이유는.



“내가 맡은 프로그램이 개편 때 없어져서 2~3개월 정도 리포터 일을 쉬게 되었다. 이러다 일을 영영 접게 되는 건 아닌가 걱정하던 차에 CJ오쇼핑에서 방송 경력이 있는 쇼호스트를 뽑는다는 신문 광고를 보았다. 나이 제한이 없었다. 그래도 나이 마흔여덟에 쇼호스트 시험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무모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해볼걸. 그때 해봤으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하는 후회는 하고 싶지 않았다. 평소에 딸들에게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돌아서서 후회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얘기했었다. 그런 용기로 시험을 봤다.”



-쇼호스트 공채 때 최고령으로 합격했다. 나이의 한계를 뛰어넘은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면접을 볼 때 ‘빛나는 50대를 여기서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중년의 또 다른 말로 숙년(熟年)이 있다.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이 젊은 나이와 다르다는 의미다. 내 나이에 맞게 방송하는 것이 나의 강점이다. 쇼호스트는 예쁜 얼굴과 빼어난 말솜씨만으로 승부를 거는 직업이 아니다. 온갖 분야의 상품을 화면을 통해 시청자에게 소개하면서 믿음을 주는 직업이다. 수의나 제기 같은 상품을 삶의 경험이 적은 젊은 쇼호스트가 소개하기는 쉽지 않다. 처음 입사했을 때 수의 방송을 했다. ‘누구나 옷 한 벌 입고 저 세상 가는건데 이왕이면 장례식장에서 고민하지 말고 미리 준비하자’는 말로 시작해서 아버지·시부모님 수의 입혀드린 얘기며, 칠순 선물로 해드린 수의를 친정 어머니께서 너무 귀하게 간직하고 계신다는 얘기를 했다. 젊은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말이다. 염색 제품도 마찬가지다. ‘염색 16년차인데 이 제품만 7년째 쓰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 지금 여기선 나밖에 없다. 많은 경험을 통해 얻게 된 이야기들을 소비자들에게 진솔하게 전달할 수 있어 나는 쇼호스트라는 직업이 정말 좋다.”



주방용품을 소개하고 있는 이애경씨(오른쪽)의 홈쇼핑 방송 장면.
-방송 준비는 어떻게 하나.



“전업주부 시절부터 신문 스크랩을 열심히 해왔다. 책을 읽을 때도 좋은 구절이 나오면 ‘이건 꼭 기억해 뒀다가 아이들에게 남겨주어야겠다’싶어 공책에 적었다. TV를 보다가도, 신부님 강론을 듣다가도 메모를 했다. 고사성어부터 좋은 시, 생활의 지혜까지 기억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담았다. 그렇게 만든 공책이 벌써 11권이다. 방송 준비를 하면서 그 공책을 들여다보면 그 자체가 보물이다. 인생에는 로또가 없다고 생각한다. 미리 준비하고 노력한 것이 이 세상 어디에서도 살 수 없는 귀한 자료가 되었다.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월급을 타면 한 달에 세 권씩 책을 사서 읽었다. 주로 옛글과 역사에 관심이 많지만, 신문에 나오는 ‘그 달의 책’도 빠뜨리지 않으려 한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준비해야 쇼호스트로서 살아남을 수 있다.”



-쇼호스트로서 힘들 때는 없나.



“홈쇼핑 방송은 심의도 까다롭다.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1~2시간 방송에 임하다 보면 중압감에 방송이 끝난 후 탈진하게 된다. 특히 신상품을 처음 소개하는 방송은 신경을 많이 쓴다. 또 열심히 방송하고도 판매율이 저조하면 마음이 무겁다.”



-‘나의 일’이 남편·아이들에게 미친 영향은.



“아이들이 엄마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내 일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한다는 것에 대해 남편도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 지금은 두 분 다 돌아가셨지만 시부모님도 든든한 지원군으로 잘 도와주셔서 일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쇼호스트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



“쇼호스트는 고객의 입장에서 상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상품을 소개하는 사람이다. 풍부한 경험과 공부를 바탕으로 상품에 대한 장단점을 골라내고 어떤 사람에게 필요한지 전해줘야 한다. 외모보다는 풍부한 경험과 믿음을 주는 것, 나의 진심을 전달하는 것이 쇼호스트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4060 다시 세상으로 육아와 내조, 그리고 살림에 ‘올인’하며 살아온 주부들. 마흔이 넘어서면서 삶의 고민이 커진다. 남편도, 자식도 옆에 있지만 내 존재를 대신 증명해 주진 않는다. 그렇다고 쇼핑으로, 모임으로 시간을 보내버리기엔 삶이 너무 길다. 그 고민에 대한 답을 늦깎이로 일을 찾아 ‘성공한 프로’로 자리잡은 여성들에게 들어본다. 새로운 길을 열망하는 ‘4060’에게 롤 모델이 될 여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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