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파란 브라 걸’ 충격 … 이집트 여심 폭발

중앙일보 2011.12.22 00:30 종합 16면 지면보기
20일(현지시간) 오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여성 시위대 1만여 명이 무자비한 시위 진압에 항의하는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 16일 여성 시위대원이 속옷이 드러난 상태에서 진압군에게 끌려가면서 발길질을 당한 사건(시위대가 든 플래카드 속 사진 장면)이 반(反)군부 시위에 기름을 부었다. [카이로 AP=연합뉴스]


“나를 끌어내라, 나를 벗겨라, 나의 형제들이 나를 지켜줄 테니!”

상의 벗겨진 채 끌려가는 모습에 분노, 1만 명 반정부 시위



 이집트 군인들이 여성 시위자들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상의가 벗겨지도록 끌고 가는 사진과 동영상이 공개되자 이집트 여성들이 들고 일어났다. 시위에 참여하지 않던 여성들이 반군부 시위의 선봉에 선 것이다. 20일(현지시간)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여성은 무려 1만여 명에 달했다고 뉴욕 타임스(NYT)는 전했다. 여성 시위로는 이집트 역사상 최대 규모. 올해 초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이 휩쓸었던 타흐리르 광장에서 여성 인권 보호를 위한 ‘여성의 봄’이 시작된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16일 군부 퇴진을 요구하며 3주째 연좌 농성을 벌이던 시위대와 군 경찰의 대치 과정에서 이뤄진 무력 진압이다. 여성 시위자 한 명이 단추가 풀려 속옷이 그대로 노출됐는데도 정부군 2~3명이 셔츠를 잡아끌고 발로 가슴을 차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일명 ‘파란 브라 걸’(Blue bra girl)로 떠오른 그녀의 모습은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에서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이 여성의 친구인 하산 샤힌 기자는 “잠깐만 기다려라. 여자인 내가 데리고 가겠다”고 말했지만 군인들이 들은 척도 않고 자신을 향해 곤봉을 휘두르기 시작했다고 진술했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물러난 후 과도정부를 이끌고 있는 이집트군의 유혈 진압이 이어지면서 사상자도 속출하고 있다. 닷새 동안 최소 14명이 숨지고 600여 명이 다쳤다. 군부가 조준사격 등 총기 사용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시위대의 분노도 극에 달했다. 이에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이집트 여성에 대한 구조적인 탄압은 민주 혁명을 모욕하고 위대한 이집트 국민에게 불명예를 안기는 것”이라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군부가 선임한 카말 간주리 이집트 총리는 지난달까지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했으나 최근 정치적 안정을 위해 강경 노선으로 선회했다. 지난달 28일부터 내년 1월 11일까지 3차에 걸쳐 진행되는 이집트 총선에서 군부에 조속한 민정 이양을 촉구하는 이슬람주의 정당이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적인 중장년층 여성들까지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군부는 이례적으로 시위가 끝나기도 전에 사과문을 발표했다. 군부는 “훌륭한 이집트 여성들에 폭력행위가 가해진 것에 대해 깊이 후회하고 있다”며 “여성의 정치 참여와 시위할 자유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폭력 행위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다.



민경원 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