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지역주의에 도전하는 이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최근엔 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대구 출마를 선언했다. 세 번이나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수도권의 썩 괜찮은 지역구 군포를 떠나 고향으로 가겠다고 한 것이다. 까닭을 물었더니 “수도권에서 세 번 했으면 됐다. 이젠 정치판에 작은 기여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민주당엔 김 의원처럼 한나라당 아성인 영남에 출마하는 이들이 제법 많다. 서울 광진갑에서 재선을 한 부산 출신 김영춘 전 최고위원은 부산진갑에 나간다. 지난해 부산시장 선거 때 45%를 득표하고서도 패배한 김정길 전 의원, 10·26 재·보선 때 부산 동구청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이해성 전 청와대 홍보수석도 부산 지역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민주당의 대선주자로, 총선 때 부산에 나갈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영남 유일의 민주당 현역인 조경태 의원(부산 사하을)과 함께 부산에서 민주당 돌풍을 일으키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문 이사장이나 김부겸 의원 등이 영남을 두드리는 데엔 지역주의 타파 말고도 다른 목적이 있다. 정권을 잡으려고 그러는 것이다. 총선 결과 민주당이 부산에서 몇 군데를 건지고, 대구에서도 교두보를 마련할 경우 정치판 분위기는 달라질 게 틀림없다. 한나라당은 동요하고, 민주당의 기세는 올라갈 것이다. 양당의 이미지도 대조적으로 비칠 것이다. 민주당은 호남당을 탈피한 전국정당이란 인상을 줄 테고, 한나라당은 영남당 색채를 더 강하게 풍길 터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어느 쪽 모양새가 보기 좋은지, 대선 때 어느 편이 당당해 보일 것인지 답은 물어보나 마나다. 민주당의 영남 성적표가 기대 이하로 나와도 그들에겐 할 말이 있다. “지역주의 해체와 민주당의 전국정당화를 위해 우린 몸부림쳤으니 대선 땐 지지해 달라”고 얼마든지 큰소리칠 수 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은 어떤가. 가상한 뜻을 가진 이들이 없진 않다. 친박근혜계 비례대표로 전남 곡성 출신인 이정현 의원은 광주 서구을, 전북 고창 태생인 정운천 전 농림부 장관은 전주 완산을에 도전장을 내고 지역을 갈고닦은 지 오래다. 이 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 때 같은 곳에 나가 1%에도 못 미치는 720표를 얻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의 역풍이 거세게 불던 광주에 출마해 ‘미친 놈’이란 소리까지 들었던 그에게 “왜 또 사지(死地)로 가는 거냐”라고 물었다. 그는 “지역주의는 주장이나 구호만으로 없앨 수 없다”며 “누군가 온몸으로 부닥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해 전북지사 선거 때 한나라당 후보로 나가 18.2%를 득표했던 정 전 장관은 “지역에서 바보라는 말도 듣고, 창피도 종종 당하지만 내 도전은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주눅들지 않는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이런 정신을 가진 이들을 더 찾아야 한다. 호남에 적극 도전해 영남당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걸 실증적으로 보여주란 얘기다. 호남 배려 덕분에 최고위원을 지낸 국방장관 출신 김장수 의원(비례대표) 같은 이가 고향 광주에 몸을 던지면 어떨까. 호남이 달라지길 원한다면 한나라당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총선 때 호남을 또 피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면 재집권 능력이 없다는 걸 자인하는 셈이 된다. 그러고서 대선 때 무슨 낯으로 호남에 표를 달라고 할 건가. 민주당이 영남표를 조금이라도 더 챙기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마당에 한나라당은 과거처럼 호남표를 잊고 살 텐가.
이상일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