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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의 시시각각] 한나라당, 호남에 도전하라

중앙일보 2011.12.22 00:00 종합 38면 지면보기
이상일
논설위원
한나라당에 영남은 금수강산, 호남은 적막강산이다. 영남에서 총선 후보로 공천받으면 당선은 떼어놓은 당상이지만 호남에선 공천이 곧 낙선 확인증이어서다. 민주통합당(약칭 민주당)의 경우엔 정반대다. 그래서 영·호남엔 팔자 좋은 의원들이 즐비하다. 이십여 년 전이나 십 수년 전부터 봤던 얼굴들이 지금도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다. 영·호남에 뿌리내린 일당 독식 체제는 지역주의를 나라의 고질병으로 키웠다. 정치를 왜곡하고, 국민통합도 해치는 지역주의의 폐해를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지역주의에 도전하는 이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최근엔 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대구 출마를 선언했다. 세 번이나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수도권의 썩 괜찮은 지역구 군포를 떠나 고향으로 가겠다고 한 것이다. 까닭을 물었더니 “수도권에서 세 번 했으면 됐다. 이젠 정치판에 작은 기여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민주당엔 김 의원처럼 한나라당 아성인 영남에 출마하는 이들이 제법 많다. 서울 광진갑에서 재선을 한 부산 출신 김영춘 전 최고위원은 부산진갑에 나간다. 지난해 부산시장 선거 때 45%를 득표하고서도 패배한 김정길 전 의원, 10·26 재·보선 때 부산 동구청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이해성 전 청와대 홍보수석도 부산 지역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민주당의 대선주자로, 총선 때 부산에 나갈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영남 유일의 민주당 현역인 조경태 의원(부산 사하을)과 함께 부산에서 민주당 돌풍을 일으키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문 이사장이나 김부겸 의원 등이 영남을 두드리는 데엔 지역주의 타파 말고도 다른 목적이 있다. 정권을 잡으려고 그러는 것이다. 총선 결과 민주당이 부산에서 몇 군데를 건지고, 대구에서도 교두보를 마련할 경우 정치판 분위기는 달라질 게 틀림없다. 한나라당은 동요하고, 민주당의 기세는 올라갈 것이다. 양당의 이미지도 대조적으로 비칠 것이다. 민주당은 호남당을 탈피한 전국정당이란 인상을 줄 테고, 한나라당은 영남당 색채를 더 강하게 풍길 터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어느 쪽 모양새가 보기 좋은지, 대선 때 어느 편이 당당해 보일 것인지 답은 물어보나 마나다. 민주당의 영남 성적표가 기대 이하로 나와도 그들에겐 할 말이 있다. “지역주의 해체와 민주당의 전국정당화를 위해 우린 몸부림쳤으니 대선 땐 지지해 달라”고 얼마든지 큰소리칠 수 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은 어떤가. 가상한 뜻을 가진 이들이 없진 않다. 친박근혜계 비례대표로 전남 곡성 출신인 이정현 의원은 광주 서구을, 전북 고창 태생인 정운천 전 농림부 장관은 전주 완산을에 도전장을 내고 지역을 갈고닦은 지 오래다. 이 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 때 같은 곳에 나가 1%에도 못 미치는 720표를 얻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의 역풍이 거세게 불던 광주에 출마해 ‘미친 놈’이란 소리까지 들었던 그에게 “왜 또 사지(死地)로 가는 거냐”라고 물었다. 그는 “지역주의는 주장이나 구호만으로 없앨 수 없다”며 “누군가 온몸으로 부닥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해 전북지사 선거 때 한나라당 후보로 나가 18.2%를 득표했던 정 전 장관은 “지역에서 바보라는 말도 듣고, 창피도 종종 당하지만 내 도전은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주눅들지 않는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이런 정신을 가진 이들을 더 찾아야 한다. 호남에 적극 도전해 영남당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걸 실증적으로 보여주란 얘기다. 호남 배려 덕분에 최고위원을 지낸 국방장관 출신 김장수 의원(비례대표) 같은 이가 고향 광주에 몸을 던지면 어떨까. 호남이 달라지길 원한다면 한나라당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총선 때 호남을 또 피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면 재집권 능력이 없다는 걸 자인하는 셈이 된다. 그러고서 대선 때 무슨 낯으로 호남에 표를 달라고 할 건가. 민주당이 영남표를 조금이라도 더 챙기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마당에 한나라당은 과거처럼 호남표를 잊고 살 텐가.



이상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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