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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라, 저 꽃뱀 … 스물여섯 미당의 도발

중앙일보 2011.12.19 00:21 종합 28면 지면보기
미당 서정주는 2000년 12월 24일 흙으로 돌아갔다. 생전 미당은 “사람들의 간절한 심우(心友) 노릇”을시인의 일이라 여겼다. 『화사집』 출간 이후, 미당은 한국인의 오랜 마음의 벗이었다. [중앙포토]
그는 벼락이었다. 아니, 벼락 같은 축복이었다. 1941년 2월 10일, 한국 문단은 찬란한 미적 충격에 휩싸인다. 스물여섯의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가 첫 시집 『화사집(花蛇集)』을 내밀었다. 미당의 시는 하늘에서 내리 꽂힌 듯 신묘했다. 『화사집』에서 그는 한국어에 새로운 혼을 입혔다. 한국어에 감춰진 관능미가 맨살을 드러냈다. 미당이라는 벼락, 그 아찔한 빛은 우리 문학에 쏟아진 축복의 섬광이었다.


서정주 『화사집』 출간 70주년 맞아 26일 동국대서 시 낭송 공연

 올해로 『화사집』이 세상에 나온 지 꼭 70년 째다. 미당에게서 문학적 자양분을 길어온 후배 문인들이 모른 체 할 수 없는 노릇이다. 26일 오후 7시 서울 동국대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화사집』70주년 기념 시 낭송 공연(02-2260-3023)이 펼쳐진다.



 이 공연에는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란 타이틀이 매달렸다. 『화사집』 머리에 올라 있는 시 ‘자화상’의 한 대목, ‘스물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에서 빌려왔다.



 시 낭송 공연은 바로 그 바람을 더듬는 시간이다. 20대 청년 미당이 품고 있던 시혼(詩魂)의 바람을 더듬으며 『화사집』의 시편들을 불러낸다. 공연에선 『화사집』에 수록된 시 24편 전편이 낭송된다. 낭송에는 김남조·유안진·신달자·문정희·이영광·문태준 등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들과 손숙·박정자·이정섭·김성녀·정경순 등 배우들이 대거 동참했다. 이들은 『화사집』에 수록된 순서대로 ‘자화상’부터 ‘부활’에 이르기까지 한 편씩 낭송한다. 『화사집』은 노래로도 재탄생한다. 인디밴드 블루코크와인과 커플디가 각각 ‘벽’과 ‘서름의 강물’에 곡을 붙여 노래한다.





 『화사집』은 출간 당시 100권 한정으로 찍었다. 동료 시인 오장환(1918~51)이 운영하던 출판사 남만서고(南蠻書庫)에서 나왔다. 초판본 속지에는 ‘1백부한정인’이라고 적고, 번호별 용도까지 밝혔다. 1~15번은 저자 기증본, 16~50번은 비단장정의 특제본, 51~90번은 병제본(竝製本), 91~100번은 발행인 기증본으로 적혀있다. 특제본은 5원, 병제본은 3원이 정가였다.



화사집
 『화사집』은 당대 문단을 들썩이게 했다. 김기림·임화·김광균·오장환 등 문인 9명이 명월관이란 음식점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어줬다는 기록이 있다. 미당 본인은 이 시집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미당이 83년에 쓴 ‘화사집 초판본’이란 시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내 처녀시집 화사집 초판본은/그건 정말 문둥이의 우자[愚者] 같은 거였지’



 미당 자신에겐 ‘어리석은 문둥이’었는지 몰라도『화사집』은 한국 시의 큰 물줄기를 틀었다. 미당의 제자인 동국대 윤재웅 교수(국어교육과)는 “몸과 관련된 시어를 강렬하게 사용한 최초의 시집”이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순네는 스믈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슴어라! 베암!’(‘화사’)과 같은 시어에서 우리는 한국어의 아름다운 속살을 목격한다. 생전의 미당은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자화상’)라고 노래했는데, 가도가도 『화사집』의 미학적 성취는 넘어설 수 없는 벽처럼 아득하다.



정강현 기자

가시내 -화사집(1941)에서



눈물이 나서 눈물이 나서



머리깜어 느리여도 능금만 먹곺어서



어쩌나…하늬바람 울타리한 달밤에



한집웅 박아지꽃 허이여케 피었네



머언 나무 닢닢의 솟작새며, 벌레며, 피릿소리며,



노루우는 달빛에 기인 댕기를.



산(山)봐도 산(山)보아도 눈물이 넘처나는



연순(蓮順)이는 어쩌나… 입술이 붉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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