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화사집』 출간 70주년에 부쳐

중앙일보 2011.12.19 00:17 종합 29면 지면보기
이남호 교수
고려대 국어교육과
1941년 출간된 미당 서정주 시인의 『화사집』은 우리 시문학사에서 ‘시혼의 신대륙’을 발견한 일대 사건입니다. 『화사집』에 실린 ‘바다’라는 시에서 젊은 미당은 다음 같이 외쳤습니다.


시의 신대륙을 찾아 떠난 여행 『질마재신화』로 문학적 귀향 이뤄



 에비를 잊어버려



 에미를 잊어버려



 형제와 친척과 동모를 잊어버려,



 마지막 네 게집을 잊어버려,



 



 아라스카로 가라 아니 아라비아로 가라 아니 아메리카로 가라 아니 아프리카로 가라 아니 침몰하라. 침몰하라. 침몰하라!





 20대의 젊은 미당은 혼신의 힘을 다해 고향을 등지고자 했습니다. 부모와 형제 그리고 친척과 계집까지도 버리고 아득히 먼 미지의 대륙으로 떠나고자 했습니다.



그곳은 아직 한국인의 영혼과 한국어가 도달해보지 못한 무시무시한 심연이요 새로운 에너지가 약속된 미지의 검은 대륙입니다. 그 신대륙을 찾아가는 길은 차라리 태평양 바다에 침몰하는 것이나 다름없이 멀고 험난하였습니다.



그래서 젊은 시인은 침몰을 각오하고 고향의 모든 것을 버린 채 먼 바다로 신대륙을 찾아 떠났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미당은 『화사집』이라는 시혼의 신대륙을 발견, 우리 시문학사에 헌정했습니다. 2011년은 미당이 시혼의 신대륙을 발견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먼 곳까지 가서 소중한 것을 얻은 사람은 돌아오는 길에서도 많은 것을 얻습니다. 아주 먼 곳까지 가서 『화사집』을 얻은 미당은 고향인 질마재로 돌아오기까지 도중에서 많은 세계를 만납니다.



『귀촉도(1948)』『서정주시선(1956)』 『신라초(1960)』 『동천(1968)』 등은 모두 신대륙을 발견한 미당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만난 멋진 나라요 보물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소중한 보물들을 가지고 질마재마을로 귀향해 『질마재신화(1975)』라는 우주적 질서를 구성합니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이 『화사집』이라는 머나먼 신대륙의 발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닌가 합니다. 미당이 평생 이루어낸 이 거대한 형이상학적 역사(役事)는 아마도 한국문학사의 가장 큰 빛이요 자랑일 것입니다. 『화사집』은 그 역사의 핵심이요 씨방일 것입니다.



 『화사집』은 빛나고 화려하지만 그것이 태어난 시대는 암울했습니다. 1941년 일본은 한반도를 지배하는 강한 나라였습니다. 모든 면에서 일본은 강하고 우리는 약했으며, 일본은 높고 우리는 낮았습니다. 우리는 자랑할 만한 그 어떤 것도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런 1941년에 젊은 미당은 『화사집』이라는 놀라운 시집을 세상에 내 놓았습니다. 아마도 1941년에 우리가 일본보다 더 훌륭한 것을 만들어 일본을 압도하고 민족적 자존을 높인 유일한 사례가 『화사집』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문학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오래 그리고 널리 기려 마땅한 우리문학의 자랑입니다.



이남호 교수 (고려대 국어교육과)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