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의 이혼으로 형은 엄마와 함께 가고시마(鹿兒島)에, 동생은 아빠와 함께 후쿠오카(福岡)에 살고 있다. 가끔 휴대전화로 안부를 주고 받는 형제의 소원은 예전처럼 오사카(大阪)에 함께 모여 행복하게 사는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새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형제의 소원이 영화 제목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과 같다고 해서 해피 엔딩으로 기대해선 곤란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의 성향만 봐도 그런 기대가 섣부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아무도 모른다’(2004) ‘걸어도 걸어도’(2008) 등에서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고 늘 얘기해 왔다. 그런 그가 보여주려는 ‘기적’은 뭘까.
형제는 마주 달리는 두 신간센 열차가 서로 스쳐 지나갈 때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소문을 듣고 기적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접선 장소는 가고시마와 후쿠오카의 중간지점이자 두 대의 열차가 스쳐 지나가는 구마모토(態本). 형제와 함께 따라온 아이들은 ‘기적’의 순간 온 힘을 다해 각자의 소원을 외친다. “여배우가 되고 싶어요” “죽은 애견이 다시 살아나게 해주세요” “아빠가 빠칭코에 안 가게 해주세요” 등등.

두 형제가 빌었던 소원이 가족의 재결합이 아니었다는 게 의외로 느껴질 수 있지만 감독의 메시지는 되레 선명하게 표출된다. 형제는 가족 분열이란 절망적 상황에 놓여졌지만 각자 처한 상황과 고통을 겪으며 한 뼘 더 성숙해졌고, 그 정신적 성장이 각자의 소원에서 드러난다. 감독은 이런 과정이야말로 ‘진짜 기적’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고통 속에서 성장해 가는 게 어디 아이들뿐이랴. 해가 지날수록 시간이 더욱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고, 올 한 해에도 어느 하나 이룬 게 없어 가슴 한 구석이 헛헛해진다면 이 영화를 통해 위안받는 것도 좋겠다. 당신은 올해도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텨냈고, 또 그만큼 더 성숙했을 게 분명하기에…. 22일 개봉. 전체 관람가.
◆주목! 이 장면= 동생은 자신의 ‘세계’에 몰입해사는 인디뮤지션 아빠(오다기리 조)에게 묻는다. “아빠, 세계(世界)가 뭐야?” 동료와 함께 기타를 퉁기던 아빠의 대답. “세계? 그거 역 앞 빠칭코 이름 아닌가?”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유머가 돋보인다.
정현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