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두 기차가 스칠 때 크게 외쳐봐, 네 소원을

중앙일보 2011.12.19 00:14 종합 29면 지면보기
아내와 이혼해 둘째 아들과 함께 사는 인디뮤지션 아빠(오다기리 조·오른쪽)는 따로 떨어져 사는 장남에게 세상을 더욱 넓게 보라고 말한다. 생계에 얽매이지 않는 꿈을 갖고 살라고 조언한다.


부모의 이혼으로 형은 엄마와 함께 가고시마(鹿兒島)에, 동생은 아빠와 함께 후쿠오카(福岡)에 살고 있다. 가끔 휴대전화로 안부를 주고 받는 형제의 소원은 예전처럼 오사카(大阪)에 함께 모여 행복하게 사는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새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형제의 소원이 영화 제목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과 같다고 해서 해피 엔딩으로 기대해선 곤란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의 성향만 봐도 그런 기대가 섣부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아무도 모른다’(2004) ‘걸어도 걸어도’(2008) 등에서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고 늘 얘기해 왔다. 그런 그가 보여주려는 ‘기적’은 뭘까.



 형제는 마주 달리는 두 신간센 열차가 서로 스쳐 지나갈 때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소문을 듣고 기적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접선 장소는 가고시마와 후쿠오카의 중간지점이자 두 대의 열차가 스쳐 지나가는 구마모토(態本). 형제와 함께 따라온 아이들은 ‘기적’의 순간 온 힘을 다해 각자의 소원을 외친다. “여배우가 되고 싶어요” “죽은 애견이 다시 살아나게 해주세요” “아빠가 빠칭코에 안 가게 해주세요” 등등.



고레에다 감독
 감독이 “이 순간을 위해 (영화상영) 2시간이 존재한다”고 했을 정도로 기적의 순간 아이들의 표정은 순수함, 그 자체다. 사운드는 사라지고 아이들이 겪어온 일상의 순간과 소품이 몽타주 형식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여기에 방점이 찍힌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순간이야말로 삶의 기적이라는…. 등굣길, 교실, 친구의 방에서 이뤄지는 아이들의 대수롭지 않은 대화. 불필요한 듯 보였던 이런 장면이야말로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는 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두 형제가 빌었던 소원이 가족의 재결합이 아니었다는 게 의외로 느껴질 수 있지만 감독의 메시지는 되레 선명하게 표출된다. 형제는 가족 분열이란 절망적 상황에 놓여졌지만 각자 처한 상황과 고통을 겪으며 한 뼘 더 성숙해졌고, 그 정신적 성장이 각자의 소원에서 드러난다. 감독은 이런 과정이야말로 ‘진짜 기적’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고통 속에서 성장해 가는 게 어디 아이들뿐이랴. 해가 지날수록 시간이 더욱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고, 올 한 해에도 어느 하나 이룬 게 없어 가슴 한 구석이 헛헛해진다면 이 영화를 통해 위안받는 것도 좋겠다. 당신은 올해도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텨냈고, 또 그만큼 더 성숙했을 게 분명하기에…. 22일 개봉. 전체 관람가.



 ◆주목! 이 장면= 동생은 자신의 ‘세계’에 몰입해사는 인디뮤지션 아빠(오다기리 조)에게 묻는다. “아빠, 세계(世界)가 뭐야?” 동료와 함께 기타를 퉁기던 아빠의 대답. “세계? 그거 역 앞 빠칭코 이름 아닌가?”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유머가 돋보인다.



정현목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