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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양극화

중앙일보 2011.12.19 00:00 종합 37면 지면보기
후한(後漢)의 양홍(梁鴻)이 수도 낙양(洛陽)을 지나면서 오희가(五噫歌)를 지었다. 다섯 구절 모두 ‘슬프다(噫)’로 끝난다. “저 북망(北芒)을 오르네, 슬프다!(陟彼北芒兮, 噫), 제경(帝京)을 돌아보네, 슬프다!(顧瞻帝京兮, 噫), 궁궐은 높고 높구나. 슬프다!(宮闕崔巍兮, 噫!), 백성들은 힘들게 노동하네, 슬프다(民之?勞兮, 噫), 끝없는 미앙궁이여, 슬프다(遼遼未央兮, 噫)”라는 노래다. 지배층의 화려한 생활과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대비시킨 ‘오희가’는 당시 사람들의 큰 공감을 얻었다.

 『후한서(後漢書)』 ‘일민(逸民)열전 양홍’조는 숙종(肅宗)이 듣고 그르게 여겨 잡으려고 하자 양홍이 이름을 바꾸고 처자와 숨었다고 전한다. 성호 이익(李瀷)은 ‘염탐(廉貪)’이란 글에서 “나라는 백성에게 의지하고 백성은 재물에 의지하는데, 재물이 마르면 백성이 무너지고, 백성이 무너지면 나라가 망한다는 사실은 알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갈파했다. 고대 주(周)나라 때 강상(姜尙:강태공)이 지었다는 책이 『육도(六韜)』다. 황석공(黃石公)이 지었다는 삼략(三略)과 합쳐 『육도삼략(六韜三略)』이라고 하는데, 단순한 병법서가 아니다. 위수강 (渭水江)에서 낚시하다 문왕 (文王)에게 발탁돼 왕사(王師)가 된 강상(강태공)은 『육도』 ‘문도(文韜)’조에서 문왕에게 “임금은 삼보(三寶)를 남에게 빌려주면 안 되는데, 빌려주면 임금의 권력을 잃게 됩니다”고 말한다. 문왕이 “감히 삼보가 무엇인지 묻습니다”고 묻자 강태공은 “농업, 공업, 상업을 삼보라고 이릅니다. 농업을 그 마을에서 주로 하면 곡식이 풍족하고, 공업을 그 마을에서 주로 하면 물건이 풍족하고, 상업을 그 마을에서 주로 하면 재화가 풍부합니다…삼보가 온전하면 나라가 편안합니다(三寶全, 則國安)”고 답했다.

 통계청의 2011년 사회조사 결과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하층민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45.3%에 달했다는 소식이다. 양극화가 더 심해진 것으로, 실제로 저잣거리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겠다는 아우성이다. 성호 이익은 앞의 ‘염탐(廉貪)’에서 “위로는 재상부터 아래로는 유생까지 백성을 우대하고 백성들의 재물을 풍족하게 할 방법을 말하지 않는 자 없지만 단 한 가지 정책도 단행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말이 비단 이익이 살던 조선 후기의 상황 묘사로만 들리지 않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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