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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뭐를 마이 멕여야지, 뭐 …

중앙일보 2011.12.19 00:00 종합 37면 지면보기
남윤호
정치부장
“고함 한번 지르지 않고 부락민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이 뭐유?”



 “뭐를 마이 멕여야지, 뭐.”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나오는 대사다. 산골 촌장의 답에 먹물 좀 먹어 보이는 인민군 장교가 머쓱해한다. 그야말로 촌철살인(寸鐵殺人)이다. 어려운 말 필요 없다. 대중에게 많이 먹여주는 거야말로 리더십의 획득과 유지를 위한 단단한 바탕 아닌가.



 1년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서도 바로 이 문제가 핵심으로 떠올랐다. 여야 할 것 없이 벌써부터 국민에게 뭔가 많이 먹여주려고 난리다. 지금까지 나온 복지 공약만 그대로 실현된다면 ‘걱정 끝, 행복 시작’일 것 같다. 일각에선 퍼주기 경쟁으로 재정이 거덜나겠다는 걱정도 한다. 하지만 여야 모두 비용 문제에 대한 답도 만들어 뒀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복지재원 조달 방법으로 6대4의 원칙을 제시했다. 나라 씀씀이를 줄여 60%를 마련하고, 세제개혁을 통한 세수 증대로 40%를 충당하겠다는 거다. 민주당 손학규 전 대표는 ‘재정조정’이란 표현을 쓴다. 재정적자를 확대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지출의 우선순위를 복지 쪽으로 돌려 놓겠다는 거다. 둘 다 버는 것보다 더 쓰는 ‘복지 폭주’에 대한 브레이크를 나름대로 갖춰둔 셈이다. 이상향으로 안내하겠다는 허황된 메시아적 복지론과는 일단 선을 그었으니 다행스럽다.



 문제는 유권자 눈엔 양쪽 다 엇비슷해 보인다는 거다. 변별력이 약하고, 차별화가 어렵다. 내년 선거시장이 크게 서기도 전에 복지는 이미 레드오션이 돼버린 느낌이다. 특히 우파가 성장이라는 전공을 팽개치고 복지라는 선택과목에서 점수를 따려고 나섰으니, 복지 레드오션의 색은 갈수록 짙붉어질 듯하다.



 또 다른 문제는 복지가 반드시 국민의 만족도로 연결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정치와 정책’이란 미국 학술지엔 국내총생산(GDP)에서 복지지출이 차지하는 비중과, 그 나라 국민의 만족도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문이 실렸다. 결론은 ‘상관관계가 약하다’는 거였다. 복지지출이 GDP의 30%에 가까운 독일과 프랑스에서 국민 만족도가 낮은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도 안 되는 캐나다에선 만족도가 상위권으로 측정됐다. 뭘 많이 먹인다고 다 흡족해 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복지 경쟁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뜻일까.



그 연장선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이 과연 복지 부족에서만 나온 것인가도 생각해 볼 문제다. 2007년 대선 때 새 정권에 대한 기대는 역시 성장과 효율이었다. 그러나 성장에 실패하고, 인사 그르치고, 측근 단속 못하는 바람에 인기 없는 정권이 돼버렸다. 야권에서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가 반 세기 만에 리바이벌된 것도 그런 원인이 겹쳐 복합골절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최고의 복지 프로그램을 만든다 해도 인기를 만회한다는 보장이 없다.



 다음 정부도 마찬가지다. 누가 됐든 복지공약을 잘 만든 덕에 집권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복지를 아무리 잘해도 경제가 어려우면 빛을 잃는다. 복지는 성장과 함께 굴러가야 할 한쪽 바퀴다. 복지는 결단과 선택의 영역이지만, 성장은 맘대로 되질 않는다. 국제 금융위기, 유럽발 재정위기와 같은 외부 충격이 우리 경제를 예고 없이 뒤흔든다. 예전엔 집권당 프리미엄이란 게 있어서, 선거 앞두고 돈을 뭉텅뭉텅 풀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젠 정부가 득표를 의식해 할 수 있는 경제대책이라곤 재정집행을 선거 즈음으로 앞당기거나 물가를 어거지로 내리누르는 정도다. 성장은커녕 정권의 운신 폭 자체가 크게 좁아졌다. 집권정부로선 복장을 칠 노릇이지만 어쩌겠나, 그게 현실인데. 2012년만 그런 게 아니다. 2017년, 2022년에도 그럴 공산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뭘 많이 먹일 것이냐’와 함께 ‘어떻게 많이 먹일 것이냐’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후보를 보고 싶다.



남윤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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