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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248) 예첸위

중앙일보 2011.12.18 10:30


▲1994년 고향인 저장(浙江)성 퉁루(桐廬)의 푸춘화위안(富春畵苑)에서 작업에 몰두하는 87세의 예첸위. [김명호 제공]

폭우 속 “제국주의 타도” 외치던 여학생 보고 충격



1925년 5월 상하이, 일본 사람이 운영하던 방직공장에서 직장 폐쇄에 항의하던 중국 노동자 한 명이 일본인 작업반장에게 맞아 죽었다. 분노가 극에 달한 시민들은 난징루(南京路)에 있는 공동조계(共同租界) 순포방(巡捕房)으로 몰려갔다. 조계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장악하고 있던 외국인들이 치안을 담당하기 위해 설립한 순포방에는 중국인 건달과 폭력배 출신이 많았다. 거의가 비밀결사 청방(靑幇)이나 홍방(紅幇) 소속이었다.



5월 30일,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후일 중국 현대사에서 “5·30참안(五三十慘案)”이라 불릴 대형 사건이었다. 전 도시가 파업에 들어갔다.

중국인을 상징하는 남색(藍色)의 예쁜 문양을 넣은 삼각표 타월과 털 목도리, 손수건으로 일본인들이 장악하고 있던 상권을 조금씩 잠식하기 시작한 삼우실업사(三友實業社) 직매장도 난징루에 있었다.



모든 상가가 철시하는 바람에 한가해진 18세의 매장 카운터 예첸위(葉淺予·엽천여)는 비슷한 또래 직원 두세 명과 3층 창가에 앉아 적막에 싸인 거리를 내려다보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텅 빈 도로 양쪽에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곤봉을 든 인도인과 코가 유난히 큰 프랑스 기마 경찰들이 간간이 오갈 뿐 평소 사람과 자동차 행렬이 그치지 않던 난징루는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정치나 사회적인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던 예첸위는 처량하다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날 따라 폭우가 쏟아졌다. 더욱 처량했다. 갑자기 거리 서쪽에서 단발머리를 한 여학생이 나타났다. 온몸이 비에 젖은 여학생은 오른손을 높이 치켜들고 주먹을 불끈 쥔 채 구호를 외쳐댔다. “제국주의(帝國主義) 타도하자! 북양군벌(北洋軍閥) 타도하자!” 벽안의 기마 경찰들은 당당한 기세에 눌렸는지, 아니면 빗물을 뒤집어 쓴 동양인의 여체를 감상하느라 넋이 빠졌는지 멍하니 쳐다 보기만 할 뿐 여학생에게 손끝 하나 대지 못했다. 이 대담한 여학생은 경찰들의 도열을 받으며 동쪽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예첸위는 이날의 광경을 평생 잊지 못했다. “그날 밤 꿈속에서 그 여학생을 만났다. 아름다운 여체에 반해 열심히 스케치를 했지만 백지에 아무것도 묻어나지 않았다. 한동안 잠자코 서 있던 여학생은 빈 스케치북을 낚아채 보더니 흥, 소리와 함께 집어 던졌다. 다시 구호를 외치며 안개가 자욱한 곳을 향해 천천히 사라졌다. 그림을 마칠 때까지 붙잡아 두기 위해 비에 젖은 여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구호를 외쳤지만 목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기를 써도 마찬가지였다. 여학생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무서워서 뻘떡 깨어보니 온몸이 땀투성이였다. 그 여학생은 먹을 것과 스케치북만 있으면 아무 생각도 없던 나에게 애국과 민족이 뭔지를 일깨워 준 스승이었다”고 훗날 회상했다.



북방의 군벌들을 타도하기 위해 국공합작이 성사되고 국민혁명군을 주축으로 북벌(北伐)전쟁이 시작되자 예첸위는 현실에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27년 북벌군이 상하이에 진입했을 때 휴가를 얻어 고향에 가있던 예첸위는 항저우(杭州)에서 회색 군복을 입은 북벌군과 처음 조우했다. “위풍이 당당했다. 국민혁명군 사령관 장제스(蔣介石·장개석)가 손을 한번 휘저으면 군벌들은 혼비백산, 도망가기에 바빴다”고 일기에 적었다.



상하이로 돌아온 예첸위는 북벌군 휘하에 있던 상하이 경비 총사령부를 찾아갔다. 2년 전 꿈 속에서 본 여학생이 그 안에 있을 것 같았다. 예첸위는 소위 계급장을 달고 10년간, 지금도 중국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만화 ‘왕선생(王先生)’ 시리즈와 잡지에 삽화를 그리며 입에 풀칠을 했다.



1937년 항일전쟁이 시작되자 만화 선전병으로 차출된 예첸위는 일본군의 공중폭격에 시달리는 전시수도 충칭(重慶)의 모습을 담은 ‘전시중경(戰時重慶)’ 100폭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아무도 만화가의 작품으로 보지 않았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했을 때 예첸위는 홍콩에 있었다. 갓 결혼한 무용가 다이아이롄(戴愛蓮·대애련)과 함께 일본군 치하의 홍콩 탈출 체험을 화폭에 재현한 ‘향항탈출(香港脫出)’ 20점은 장다첸(張大千·장대천)과 쉬페이훙(徐飛鴻·서비홍) 같은 당대의 대가들을 감탄시키고도 남았다. 생활이 곧 예술이었던 예첸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계속)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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