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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 열풍 13년 … 게임, 매출 7조 ‘국보급’ 산업으로 성장

중앙선데이 2011.12.18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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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스포츠의 사회경제학

17일 밤 서울 군자동 세종대 대양홀에서 열린 e스포츠 왕중왕 대회 결승전. 올 한 해 국내외 e스포츠대회에서 우승한 프로 게이머가 총출동한 이날 행사는 180개국에 인터넷 생중계됐다. 경기장은 명승부를 보러 온 국내외 게임 매니어들로 꽉 찼다. 최정동 기자




일본은 전통 게임 강국이다. 1994년 서울의 한 단칸방에서 출발한 넥슨이 창사 17년 만에 일본 수도 한복판에서 시가총액 세계 3위의 온라인 게임 상장사로 등극했다. 미국의 블리자드·징가 다음이다. 외환 위기에 신음하던 98년 지하실 PC방에서 선보인 한국의 온라인 게임은 13년 만에 세계를 주도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이번 주 서울에서 열린 e스포츠(온라인게임 대회) 국제대회는 180개국에 인터넷으로 생중계됐다. 한국이 주도한 온라인 게임 산업과 시장에는 종주국인 미국·일본은 물론 중국까지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자만심에 뒷짐지고 있으면 금세 중국에 추월당할 판이다.



14일 오전 9시 일본 도쿄 주오구(中央區)의 도쿄증권거래소 1부 시장. 상장사 리스트 전광판에 눈에 익은 ‘넥슨(ネクソン·코드 36590)’이 보였다. 넥슨의 창업자 김정주씨가 상장을 기념하는 타종을 했다. 사이토 아쓰시(齊藤惇) 일본도쿄증권거래소그룹 사장과 최승우 넥슨재팬 사장 등 관계자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상장주식 4억2500만 주의 시가총액은 5500억 엔(약 8조억원)에 달했다. 올해 도쿄증시 상장 최대 규모다. 특히 도쿄거래소 1부시장에는 한국 기업이 처음이다. 이날로 넥슨은 온라인 게임시장에서 세계 3대 회사가 됐다. 김정주 창업자와 가족이 보유한 지분은 모두 3조여원어치다. 주당 공모가격 1300엔으로 시작한 이 회사 주가는 18일 1100엔으로 마감했다. 최승우 넥슨재팬 사장은 “넥슨의 상장은 종착지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앞으로 세계 1위 회사의 꿈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온라인 게임들이 ‘해가 지지 않는 온라인 제국’의 깃발을 세계 곳곳에 꽂고 있다. 비디오 게임 분야의 종주국을 자부하던 미국·일본이 시장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고 한국이 원조인 온라인 게임 시장에 발 빠르게 뛰어들고 있다. 게임에서도 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은 아예 한국형 PC방 문화까지 송두리째 베껴 국가 주력 비즈니스로 키우려 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게임시장은 소프트웨어·하드웨어·온라인을 합쳐 848억 달러(약 98조원)에 달했다. 특히 해마다 급성장하는 온라인 게임시장은 150억 달러에서 2015년에는 260억 달러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국내 게임 산업도 수출 2조원, 총 매출 7조원 규모로 컸다.



주말인 17일 밤 서울 군자동 세종대 대양홀. 세계 e스포츠의 왕중왕 대회인 ‘GSL(글로벌 스타크래프트2 리그) 2011투어 블리자드컵’ 결승전이 열렸다. 올 한 해 국내외 e스포츠 대회 우승자 10명이 레드카펫을 통해 등장하자 1500여 명의 온라인 게임 매니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어 가수 아이유가 무대에 올라 축하공연을 벌이면서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한국어·영어·중국어 3개 언어로 180개국에 인터넷 생중계된 결승전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명승부였다. 이날 오후 10시쯤 끝난 경기에서 문성원 선수가 박수호 선수에게 4대 3으로 승리했다. 챔피언 시상대에 오른 그에게 각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다. 행사장 한편에선 국내 인터넷 1세대 벤처기업인 배인식 그래텍 사장이 눈시울을 적셨다. 대회를 진두지휘한 그는 “e스포츠가 13년 만에 세계 최대 온라인 게임대회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한국이 유행의 불씨를 댕긴 온라인 게임은 지구촌 젊은이들의 소통 코드로도 자리매김했다. ‘게임으로 세계와 소통(Connection with game)’하는 시대에 한국이 중심이 된 것이다. 특히 e스포츠의 열풍은 그동안 온라인 게임의 위상을 확 높였다. ‘테란 황제’ 임요한 등 연예인 못지않은 억대 연봉의 프로 게이머 스타들이 탄생했다. 이들 프로 게이머는 해외에서 더 인기다. 블리자드코리아의 정승헌 대리는 “해외 e스포츠대회에 한국 프로 게이머들이 나타나면 사진 촬영과 사인 요청 공세는 기본이고,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인터넷에 실시간 올라온다”고 소개했다. 프로야구단에 비견될 정도로 삼성·SK 등 대기업들은 물론 공군까지 앞다퉈 e스포츠 게임단을 창설했다. 김정주 넥슨, 김택진 엔씨소프트, 이해진 NHN 창업자 등 내로라하는 1세대 인터넷 벤처 스타들이 속속 온라인 게임 시장으로 몰렸다. 넥슨의 ‘카트라이더’,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NHN의 ‘한게임’ 등이 속속 선보였다.



14일 일본 도쿄증권거래소 중앙홀에서 최승우 넥슨재팬 사장이 주식 상장을 알리는 타종을 하고 있다
이번에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넥슨은 올해 매출이 1조2600억원으로 추정된다. 영업이익도 5517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최승우 넥슨재팬 사장은 “매출에서 해외 비중이 65%나 된다. 수출에 크게 기여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창업 초기부터 해외 시장을 노린 넥슨은 국내 첫 온라인 게임인 ‘바람의 나라’(미국명 넥서스)를 98년 미국에 팔아 토종게임 1호 수출회사로 기록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넥슨의 일본 상장을 놓고 “올해 최대 규모의 상장이 침체된 일본 IPO 시장에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의 e스포츠 열풍 덕분에 스타크래프트를 개발한 미국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는 초창기 자그마한 게임업체에서 세계 최대 온라인 게임사로 컸다.



온라인 게임의 역사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13년 전 서울 등 도회지 골방 지하실에서 탄생한 PC방이다. 98년의 히트상품을 꼽으라면 ‘PC방’과 ‘스타크래프트’를 빼놓을 수 없다. 아주대 김민규(문화콘텐츠학) 교수는 “젊은 세대는 이때부터 ‘만화’에서 ‘온라인 게임’으로 문화코드를 바꿨다”고 말했다. 세계 누구와도 인터넷으로 실시간 소통할 수 있는 쌍방향 엔터테인먼트에 매력을 느낀 것이다. PC방은 97년 외환위기라는 국가 위기 상황에서 청장년층의 생업 역할까지 톡톡히 했다. 기업 구조조정과 대량실업 속에서 일자리를 잃거나 아예 구하지 못하는 젊은 층의 창업 아이템으로 PC방 열풍이 불었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은 “우울한 시절 PC방은 사업주와 고객 모두에게 숨통을 터줬고 젊은이의 사랑방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아날로그 기성 세대와 디지털 신 세대의 간극은 크다. 특히 사회 지도층의 게임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근엄한 편이다. 게임 중독에 규제 일변도의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게임을 ‘철부지들의 시간 낭비’ 주범으로 몰기보다 ‘건전한 여가’, 나아가 ‘국보급 산업’으로 인식을 전환할 때라고 조언한다. 우선 게임은 이미 한국의 대표적 디지털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장주 연구소장은 “10년 전만 해도 아이들 푼돈이나 뜯는 사행성 오락으로 치부되던 게임이 우리나라의 미래 수종산업으로 컸다”고 강조했다. 폭력·선정성이나 게임중독 같은 부작용은 부모와 게임업체, 정책 당국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문제다. 부처 간 엇갈린 시각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셧다운제(자정 이후 청소년에게 게임서비스 금지)’라는 고육지책을 도입한 까닭이다.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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