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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창코 랄프’의 뛰어난 후각, 사자왕 철옹성 깨뜨리다

중앙선데이 2011.12.18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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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으로 푸는 세상만사 <8> 道의 의미를 찾아서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주(州)의 작은 도시 레 장들리스 인근에 있는 샤토 가이야르 성(城). 프랑스 말로 ‘잘 지은 멋진 성’이라는 뜻이다. [노병천 제공]




옛말에 개똥도 쓸 데가 있고,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했다.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그 사람이 가진 재주 때문에 위기를 해결하는 경우가 있다.



영국 국왕 리처드1세(Richard I)는 사자처럼 용감하다고 해서 사자심왕(獅子心王)으로 불리지만 간략하게 사자왕(獅子王)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스라엘 성지를 점령한 이슬람교 지도자 살라딘(Saladin)에 대항해 1190년 십자군전쟁을 일으켰다. 그는 기사다운 풍모와 무용(武勇)을 과시해 당대의 민심을 얻었고, 무수한 낭만적 전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리처드 1세는 1198년 여름 프랑스 센강이 내려다 보이는 앙들리 절벽에 난공불락의 성 샤토 가이야르(Chateau Gaillard)를 건설했다. 샤토 가이야르는 프랑스말로 ‘잘 지은 멋진 성’이라는 뜻이다.



리처드 1세는 왜 이곳에 성을 건설했는가? 당시 영국은 노르망디를 포함해 프랑스 땅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땅을 재탈환하기 위해 프랑스 국왕 필리프 2세(Philippe II)가 노리고 있는 것을 의식해 리처드 1세는 전략적 요충지에 성을 세운 것이다. 리처드 1세는 성을 완공한 지 1년도 안 된 1199년 4월 6일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당한 부상이 악화돼 숨지고 만다.



리처드 1세의 뒤를 이어 그의 동생 존(John)이 왕위에 오르자 때를 만난 프랑스 왕 필리프 2세는 프랑스 영토를 되찾기 위해 샤토 가이야르 성을 공격한다. 이때가 1203년 8월. 성 안에는 1년가량 버틸 만한 풍족한 군수물자와 충분한 물이 있었다. 마침 존 왕은 출타 중이었는데 그를 대신해 명장 로저 드 라시(Roger de Lacy)가 성을 지키고 있었다. 필리프 2세 역시 신중한 왕이었다. 섣불리 공격을 하지 않았다. 7개월에 걸쳐 공성(攻城)을 위한 여러 가지 준비를 끝낸 뒤 드디어 1204년 2월 공격을 시작했다. 투석기는 성을 향해 무수히 돌을 날렸고, 성벽을 향해 이동식 망루가 힘차게 전진했다. 성안의 영국군도 이들을 맞아 죽기 살기로 싸웠다.



필리프 2세는 성벽 아래를 지나는 여러 개의 땅굴을 파고 그 속에다 불을 질렀다. 성벽의 기반을 열로 달궈 약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뜻대로 성벽의 일부가 무너지자 그 틈을 통해 프랑스군이 성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백병전 끝에 견디지 못한 영국군은 중간지대로 후퇴했다. 그런데 과연 샤토 가이야르는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프랑스군은 퇴각해야 했다.



필리프 2세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완벽한 성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 안에는 약점이 있게 마련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부하들에게 결정적인 약점을 찾으라고 명령했다. 이때 랄프라고 하는 평민 출신의 병사가 등장했다. 코가 위로 들려 있어 ‘들창코’라는 별명을 가진 사내였다. 그런데 못 맡는 냄새가 없었다. 성안 침투로를 찾느라 이리저리 다니던 중 드디어 ‘냄새’를 맡았다. 똥 냄새였다. 인분통의 오물이 통과하는 배수로를 찾아낸 것이다. 이 배수로는 10m의 높이로 성안과 통하고 있었다. 잠시 후 랄프와 그의 동료들은 배수로를 통해 성 내벽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똥을 덮어 쓴 랄프 일행을 발견한 영국군은 몹시 당황했다. 양쪽이 서로 뒤얽혀 싸우는 가운데 주변에 있던 성벽 일부에 불이 붙었고 불길은 삽시간에 주변에 옮겨 붙었다. 혼란 속에 영국군은 마지막 방어선으로 물러갔고 랄프와 동료들이 내벽의 성문을 열자 프랑스군이 물밀 듯이 성안으로 들어왔다. 드디어 1204년 3월 6일 마지막 방어선이 무너졌고 라시와 함께 끝까지 버티던 140여 명의 병사는 항복을 하고 말았다. 샤토 가이야르를 7개월 동안 포위했지만 본격적인 전투는 한 달 만에 끝이 났다.



이 전쟁의 패배 뒤 정치적 입지가 약해진 존 왕은 1215년에 국왕의 권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그 유명한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대헌장)에 서명하게 된다. 오늘날 세계적인 관광지로 유명한 샤토 가이야르에 가면 ‘들창코’를 기리는 기념비는 없지만, 필리프 왕이 그에게 기사 작위와 함께 많은 토지와 금화를 준 전설 같은 얘기를 관광가이드들로부터 들을 수 있다.



손자의 道는 상하 한마음으로 뭉치는 것

동양에서는 계명구도(鷄鳴狗盜)라는 고사가 잘 알려져 있다. 출처는 사기(史記)의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이다. 계명(鷄鳴)은 닭 울음소리라는 뜻이다. 구도(狗盜)는 개 도둑이라는 뜻이다. 제(齊)나라의 맹상군은 식객을 많이 데리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진(秦)나라 소왕(昭王)의 부름을 받았는데 이때 흰색 여우가죽으로 만든 외투인 호백구(狐白<88D8>)를 바쳤다. 소왕은 맹상군을 재상으로 중용하려 했지만 그에 반대하는 대신들이 맹상군을 죽이려 했다. 음모를 알아차린 맹상군이 소왕의 총희(寵嬉)에게 궁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하니 그녀는 자기에게도 호백구를 달라고 요구했다. 이때 식객 중 한 명이던 개 도둑이 밤에 몰래 진나라의 창고에서 호백구를 꺼내 와서 그녀에게 줘 겨우 풀려나게 되었다.



그곳을 빠져나와 밤중에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는데 아직 날이 새지 않아 관문을 열 시간이 아니었다. 그러자 식객 중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이가 ‘꼬끼오’ 소리를 내니 모든 닭이 따라 울어 관문이 열려 무사히 제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맹상군은 계명구도지웅(鷄鳴狗盜之雄)이라는 별칭을 하나 더 얻게 된다. 닭 울음소리를 내는 자와 개 도둑의 영웅이라는 뜻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계명구도는 얕고 비겁한 잔재주로 물건을 훔치거나 남을 속이는 사람을 일컫지만 사실상 ‘천박한 재주도 필요한 때가 있다’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손자병법 시계(始計) 제1편에는 도(道)의 개념이 나온다. 도는 중국 철학의 핵심 화두(話頭)이며 사용자에 따라 용법도 다양하며 난해하다. 노자(老子)의 도는 변화(變化)를 관장한다. 노자는 그 변화를 ‘유무’(有無)라고 말하고 있다. 유무는 자연(自然)으로 이해해도 좋다. 자연의 속성은 생겨나고(有) 또 사라진다(無). 있다는 것은 없다는 것에서 나왔다(有生於無). 이와 같이 만물이 생성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하는 이치를 도라고 했다.



공자(孔子)가 말하는 도는 노자와 다르다. 공자는 자연이 아니라 사람의 도를 말한다. 마땅히 사람이 밟아야 하는 길이다. 왜 사람은 도를 따라야 하는가? 사람은 만물의 일부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노자가 자연 사상의 출발이라면 공자는 인문 사상의 출발이다. 공자의 도는 사람이 닦아가는 길인데 이를 ‘문(文)’이라 했다. 그래서 공자는 학문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말한다. 반면 노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일을 완성한다는 ‘무위(無爲)’를 주장했다. 이렇게 도의 개념은 각각이다.



그렇다면 공자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손자는 도를 어떻게 말했을까? 손자가 말하고 있는 도는 당시 제자백가(諸者百家)들이 주장하는 도의 개념과 확연히 다르다. 시계편에서 말하고 있는 도는 이렇다. “도라는 것은 위와 아래가 같은 마음을 갖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가히 함께 죽기도 하고 가히 함께 살기도 하여 어떤 경우에도 마음이 갈라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道者 令民與上同意也 故可與之死 可與之生 而民不詭也).”



무슨 뜻인가? 그렇다.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한다. 마음이 ‘하나’가 되면 삶과 죽음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자가 말하는 ‘무위’도 아니고 공자가 말하는 ‘문’도 아니다. 손자의 배짱이 놀랍지 않은가? 당시 세상을 풍미했던 백가의 사상을 따르지 않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도를 논한 것이다. 손자의 통찰력(洞察力) 또한 놀랍다.



손자는 춘추시대 말기 당시 제후들이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그 속내를 정확히 짚어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도 아니고 사람이 마땅히 가야 할 ‘길’도 아니었다. 당시 제후들의 관심은 오직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땅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있었다. 그래서 손자는 거기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미사여구(美辭麗句)에 천착(穿鑿)되지 않은 철저한 현실주의다. 가능한 한 싸우지 않고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다. 그러나 그게 불가능하다면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싸우는 사람들이 ‘한 마음’을 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야 생사를 건 전투를 할 수 있다. 손자의 도는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과연 ‘무성(武聖)’이라는 손자답다. 많이 본 사람이 통찰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 많이 보고 제대로 보는 법이다.



손자가 말하는 도의 의미를 조금 더 깊이 새겨보면 이렇다. ‘하나’의 의미 속에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 차별하다 보면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가 될 수 없다. 성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세상이 되다 보니까 성과를 낼 ‘능력’ 위주로 사람들을 선발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능력에 의한 차별이 생길 수밖에 없다.



맹상군에게는 닭소리 내는 사람과 개 도둑도 있었지만 풍훤(馮<8AFC>)이라고 하는 걸출한 인재가 있었다. 그는 맹상군이 제나라 민왕의 노여움을 사서 자리를 떠날 때 ‘교토삼굴’(狡三窟)을 제안해 위기를 넘기게 한 인물이다. 교토삼굴은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판다’는 의미로 위기 극복의 처세술을 말한다. 만약에 맹상군이 진나라 소왕에게 잡혔을 때 풍훤과 같은 ‘잘난’ 책략가만 옆에 있었더라면 누가 호백구를 훔쳐내고 누가 닭소리를 내어 함곡관을 열게 하겠는가? 만약에 랄프의 코가 들창코라고 해서 놀림감으로 만들었거나 병사로 받아주지 않았더라면 누가 샤토 가이야르 성의 지저분한 똥 냄새를 맡을 수 있었겠는가?



손자는 말한다. 세상의 모든 리더여, 도의 진정한 의미를 알라.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라. 그러기 위해선 사람을 외모나 선입관으로 평가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품어 ‘내 사람’으로 만들어라. 이것을 잘 알고 실천하는 리더는 성공하고, 이것을 모르는 리더는 실패한다. 세상에 쓸모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리더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노병천 한국전략리더십연구원장 1919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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