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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의 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다]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어야 좋은 지식이다

중앙선데이 2011.12.18 00:30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⑧ 검증가능성(verfiability)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 편집가능성(editability)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다니다 책상에 앉으면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리 바쁠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처연해지기까지 한다. 대부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이다. 열심히 할수록 더 큰 상처로 돌아올 때도 많다. 우울하다. 그래서 네이버(NAVER)에 아무 생각 없이 검색해봤다. ‘왜 마음이 아플까요?’

한심하다고 뭐라 하지 마라. 요즘 젊은 애들은 쓸쓸하면 죄다 이런 식으로 논다. 화면 가득히 ‘아픈 마음’과 관련된 온갖 이론이 다 뜬다. 거창한 심리학이론으로부터 사소한 일상에서 경험되는 눈물에 이르기까지, ‘아픈 마음’의 스펙트럼은 참으로 다양하다. 한참을 들여다보면 공연한 쓸쓸함은 사라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검색놀이의 재미가 쏠쏠하다. 네이버의 ‘지식인’이 만들어낸 새로운 즐거움이다.



네이버와 ‘폭소노미’의 탄생

사이버공간의 카페에 사람들이 떼로 모여드는 것에 만족한 다음(DAUM)과는 달리, 네이버는 사람들이 도대체 왜 그곳에서 떼로 몰려다니는가에 관해 관심을 가졌다. 오프라인의 만남에선 얼굴표정, 몸짓, 목소리로 표현되는 비언어적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잘했군!’이라고 말할 때, 얼굴표정과 목소리의 높낮이에 따라 비아냥거림이 되기도 하고, 칭찬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이러한 상대방의 표정, 몸짓을 파악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이모티콘(emoticon)’이다. 자판의 기호를 조합해 정서를 표현하려 한 것이다. (최초의 이모티콘은 웃는 얼굴의 ‘:-)’과 슬픈 표정을 나타내는 ‘:-(’이다.) 그러나 아무리 다양하게 자판을 조합해도, 컴퓨터의 이모티콘이 인간의 변화무쌍한 비언어적 표현들을 대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기능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이야기다.



정서공유의 기능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오프라인의 상호작용에 비해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가장 큰 심리학적 동기는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데 있다. 쉽게 말해 공부하고 싶다는 거다. ‘공부’라고 표현하면 다들 좀 당황스러워한다. 대부분 학교에서 억지로 배우는 것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위해 강요되는 왜곡된 지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죄다 지겹다. 창조적 사고의 국내 최고전문가인 성균관대의 최인수 교수는 아예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에게 컴퓨터게임을 못하게 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학교에서 가르치면 된다.”



학교(school)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스콜레(scole)’다. 스콜레는 여가를 즐기는 것, 교양을 쌓는 것 등을 뜻한다. 그러니까 공부한다는 건 본래 삶을 즐기기 위한 기술을 배우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근대 이전에는 국가와 신에 봉사하기 위한 공부가 전부였고, 근대 이후에는 ‘남의 돈 따먹기’와 관련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 되어 버렸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된 현대인에게 온라인은 새로운 학습의 공간이 된다. 예를 들어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은 사진기와 관련된 새로운 정보, 사진 찍기와 관련된 새로운 기술 등을 언제든지 인터넷에 접속해 공부할 수 있다. 이런 공부야말로 정말 즐거운 놀이가 된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지식을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는 학연·혈연·지연을 떠난 새로운 ‘재미의 학습공동체’가 된다.



네이버의 ‘지식인’은 바로 이러한 ‘재미의 학습공동체’를 시스템적으로 가능케 한 것이다.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모든 지식을 블로그(blog)에 올려놓는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먼저 올리면, 그 자료를 퍼가는 이들로부터 감사와 찬사를 받는다. 새로운 형태의 ‘인정투쟁(Kamp um Anerkennung)’이다. 가끔은 ‘파워블로거’가 되어 온라인상의 지식권력자가 된다. 아주 가끔은 오프라인과 연계해 막대한 수입을 올려 세무조사의 대상이 되기까지 한다.



블로거들은 이런 지식공유의 장을 제공하는 네이버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동영상을 포함한 온갖 자료를 무제한으로 올릴 수 있게 해주는 그 친절함에 감격할 정도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지식공유의 더 큰 수혜자는 오히려 네이버다. 네이버는 이용자들이 올려놓은 온갖 종류의 지식을 분류하고 체계화한다. 마치 미국의 심리학교과서가 한국의 심리학자들의 지식권력의 표준이 되는 것처럼, 네이버에서 체계화된 지식은 새로운 권력이 된다. 다음과 같은 방식이다.



열성 블로거들은 자신의 글을 거의 매일 올린다. 거의 강박적 수준이다. 21세기적 존재는 포스팅(posting)으로 확인된다. 이때 자신의 글이 쉽게 그리고 자주 검색되기 위해 ‘태그(tag)’를 붙인다. ‘연관 검색어’ 같은 것들이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와 관련한 글을 잔뜩 써놓고, 이 글과 관련된 각종 키워드들(정신분석, 콤플렉스 등등)을 태그로 붙인다. 네이버는 이 태그들을 모아 다시 ‘메타태그’를 만들고, 그 메타태그들의 또 다른 메타태그를 만들어 나가는 방식으로 태그를 재편집한다. 그 결과 지식의 새로운 분류법이 생겨난다. ‘폭소노미(folksonomy·대중 분류법)’다. 폭소노미는 ‘folk’와 ‘order’ ‘nomous’의 합성어로 ‘사람들에 의한 분류법’이란 뜻이다.



기존의 지식권력은 ‘디렉토리(directory)’와 같은 계층구조다. ‘학문-심리학-발달심리학-인지발달-…’과 같이 상위범주의 지식과 하위범주의 지식으로 나뉘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트리(tree)’ 구조의 지식은 권위적일 뿐만 아니라 변화에도 느리다.



폭소노미의 지식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성된다. 디지털 세상에 적합한, 이리 튀고 저리 튀는 하이퍼 텍스트식의 탈(脫)중심화된, 상호 텍스트의 구조로 지식은 편집된다. 발달심리학과 생리학이 연결되기도 하고, 심리학과 지식고고학이 연결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기존의 대학 교과서나 브리태니커와 같은 지식권력이 네이버나 구글·위키피디아와 같은 새로운 지식권력에 의해 해체되는 것이다.



검증가능성 vs 반증가능성

‘검색(search)’만으로는 새로운 지식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검색된 지식과 정보들을 ‘재검색(re-search)’하여 새로운 지식연관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재검색은 제한되어 있다. 일단 저장된 데이터베이스의 크기가 네이버나 구글에 비해 형편없이 작기 때문이다.



데이터베이스가 크면 클수록 재검색의 범위가 넓어진다. 재검색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새로운 차원의 지식구성이 가능해진다. 편집가능성이 ‘발견(discovery)’되는 것이다. 이제까지 전혀 연관이 없어 보였던 정보와 정보들 간의 새로운 연관관계가 발견된다는 이야기다. ‘검색엔진’이 ‘발견엔진’으로 승화하는 순간이다.



‘데이터마이닝(data mining)’, 즉 이제까지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던 데이터들 간의 연관관계를 발견하여 응용가능성을 넓히는 ‘발견엔진’은 철저하게 심리학적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인터넷책방 ‘아마존’은 내가 지금까지 ‘아마존’에서 검색하고 구입한 책의 목록으로 내 취향과 관심영역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그 데이터를 기초로 내 관심분야의 책이 나올 때마다 잊지 않고 꼬박꼬박 알려준다. 더 나아가 보내주는 광고만으로도 내 관심분야의 최신 트렌드를 깨닫게 해주고,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정보까지 알려준다. 엄청 친절(?)하다. 아마존은 검색과 태그 등을 통해 파악된 소비자들의 욕구와 관심을 해당 광고주들과 연결시켜주는 에디톨로지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애플의 아이팟 셔플의 성공도 바로 이런 개인에게 맞춤화된 데이터마이닝에 있다. ‘셔플(shuffle)’ 기능, 즉 교묘하게 뒤섞는 기능을 가진 성냥갑만 한 아이팟 셔플은 중독성이 강하다. 자신의 기분에 맞는 음악을 귀신같이 알아준다고 하여, ‘아이팟 고스트(iPod Ghost) 신드롬’까지 생겨났다. 음악을 단순히 섞어서 들려주는 여타 MP3 기기의 셔플기능과 아이팟 셔플기능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아이팟 셔플은 그날그날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이미 저장된 내 취향이나 바이오리듬에 맞춰 메인컴퓨터로부터 선별하여 옮겨준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기계가 내 하루하루의 기분을 알아주는가가 놀라울 따름이다. 매일 달라지는 테이크아웃 음악을 편집해서 내보내주는 나만의 DJ를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고용한 기분이다.



내게 맥북의 모든 프로그램 사용방법을 전수해 주는 ‘디지털 카우보이’ 서재원은 발견엔진의 에디톨로지를 의료솔루션까지 넓히려는 고민을 하고 있다(미국에서는 이미 시작되었다). 즉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올려진 글을 통해 글쓴이의 심리상태나 생활패턴을 인지하여 병리학적 카테고리와 데이터마이닝해 병원마케팅에 응용하려는 시도다(가끔 남의 블로그를 들여다보면 정신상태가 심각한 이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상습적인 댓글 중독자들에게도 아주 ‘맛이 간’ 상태가 발견되곤 한다. 국민건강복지 차원에서 배려해줘야 할 집단이다).



‘재검색’과 ‘발견’이라는 에디톨로지가 미래의 지식권력을 결정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애플이 구글을 이기기 어렵다는 예언은 바로 이런 ‘편집가능성’ 때문이다. 단지 스티브 잡스가 죽었기 때문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고집한 애플의 폐쇄적인 구조로는 데이터의 축적과 편집가능성에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과학과 비과학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검증가능성(verfiability)’을 주장한다. 경험적으로 검증가능한 이론만이 과학적 지식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포퍼는 인간의 경험은 시간과 공간적으로 한계가 있기에 모든 것을 다 경험할 수는 없다며 논리실증주의의 ‘검증가능성’을 비판한다.



포퍼는 과학적 지식과 비과학적 지식의 기준으로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을 내세운다. ‘백조는 희다’라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백조를 검증할 수는 없지만, 검은 백조 한 마리만 발견되어도 그 가설은 틀린 것이 된다. 모든 지식은 이렇게 반증의 사례가 발견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옳은 것이고, 과학적 지식은 이러한 반증할 수 있는 가능성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포퍼에 따르면 마르크스 이론이나 프로이트 이론은 비과학적이다. 반증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내부의 논리구조는 그럴듯하지만 이론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가능성 자체가 닫혀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포퍼의 과학과 비과학을 나누는 ‘반증가능성’에는 시간이라는 요인이 빠져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성되고 변화하는 ‘구성주의적 세계관’과는 거리가 먼 낡은 실증주의적 세계관의 변종이라는 이야기다. 주체적 행위의 개입이 불가능한, 인식의 주체와 개체가 철저하게 격리된 세계관일 따름이다.



21세기에는 지식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 자체가 그리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증명해야 하고, 확인해야 할 ‘객관적 세계’에 관한 신념 자체가 폐기된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지식의 옳고 그름보다는, ‘좋은 지식’과 ‘좋지 않은 지식’으로 구분하는 게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다. 좋은 지식의 기준은 ‘편집가능성’에 있다. 객관적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변화를 가능케 하는 주체적 행위가 가능한, 즉 편집가능성에 열려 있는 지식이 좋은 지식이라는 이야기다.








김정운 문화심리학 박사.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와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등의 저서와 방송 활동, 특강을 통해 재미와 창조의 철학을 펼치고 있다. cwkim@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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