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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종의 미술 투자] 세계가 먼저 알아봤다, 박종선 목가구의 유머

중앙일보 2011.12.15 03:30 주말섹션 6면 지면보기
박종선의 캐비 넷 ‘Trancs L-C’.
강원도 원주 토지문학관 근처의 판부면. 야트막한 야산에 둘러싸인 평범한 농촌 마을에 돼지우리를 개조한 박종선의 작업실이 있다. 소박하지만 기품과 위트가 있는 곳이다. 작업실 안에서는 조선시대 목가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박종선의 가구가 창조되고 있다. 작업실 밖에는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지만, 외계인과의 교신을 위해 외계인 전용 안테나가 설치돼 있다.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하이브리드 목수’의 작업실다운 장치다.



 장 푸르베, 찰스 임스, 르 코르뷔지에 등 이미 ‘앤틱’이 된 유명한 외국 명품 가구들을 서울에서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한국의 가구는 진돗개처럼 주인을 알아보며 주인에게 순응한다. 그러나 이런 유의 가구들은 독자성이 심해서 주인을 무시하는 느낌마저 준다. 정말 좋아하는 것인지 그저 유명세를 좇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나는 철학적 사유를 진지하게, 때로는 매우 유머러스하게 내재시키기로 조선의 목가구를 능가하는 가구를 본 적이 없다. 목가구의 전통을 가장 잘 이해하고 표현하고 있는 작가가 박종선이다. 그는 그 흔한 예술 대학을 다닌 적도 없고 스승도 없다. 손을 더듬어 나가듯 혼자 독학을 했다. 어떤 좋은 학벌을 가진 작가보다 그는 미감에서 높은 경지에 가 있다. 청빈한 삶을 견디다 보면 덤으로 생기는 강인한 인내와 열정이 그를 단단한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하고 있다. 그는 자기 일에 생을 걸 만한 가치를 발견하고 다만 묵묵히 정진하였다. 곁에서 지켜보면 실로 지난했고, 위대한 여정이었다. 아무런 배경이나 동료도 없는 그가 학연 중심의 배타적인 한국미술계에서 겪어야 했던 일은 본인 말고는 아무도 짐작조차 못할 것이다. 그런 그가 올해 제2회 홍진기 창조인상 문화부문 수상자가 되었다. 그의 수상소감은 “늘 하던 대로 하겠다”였다.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없이는 할 수 없는 말이다.



 2008년 도쿄의 내셔널아트센터에서는 흥미로운 전시가 진행되었다. 호주의 원주민 출신 에밀리 카메 크응와레예 (Emily Kame Kngwarreye, 1910∼96)의 전시였다. 그녀는 단 한 번의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바틱(batik)’이라는 원주민 전통 직물 공예를 하다 78세가 되던 해에 첫 전시를 가졌다. 미술계의 폭발적인 주목을 받은 그녀는 80세가 되어서야 비로서 첫 개인전을 갖는다. 그녀는 원주민의 고단한 삶 속에서도 고결한 정신과 자유로운 열정을 독특한 조형언어로 화려하고 장엄하게 쏟아냈다. 지금도 그녀의 그림은 세계 유수의 경매시장과 화랑에서 수십만 달러에 팔리고 있다. 진정 훌륭한 작품은 결국에는 인정받고 만다는 사례다.



 2005년 강원도 간현유원지 앞의 시골 조그만 화랑에서 ‘나무에게 말을 걸다’라는 제목으로 조그만 전시회가 열렸다. 눈 밝은 애호가들이 멀리 서울에서 전시를 보러 왔고, 기꺼이 그의 작품들을 구매했다. 이때 작품을 구매한 사람들 중에는 훗날 박종선의 작품이 높은 가격으로 되팔릴 것을 기대하고 구매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젊은 작가를 격려하는 순수한 호의와 재능을 알아보는 안목에서 비롯된 행위였다. 아마 출신학교나 배경 등을 따지는 시시한 생각을 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2010년 스위스 바젤 디자인 페어에서 박종선의 가구들은 세계 애호가들의 넋을 빼놓았다. 그의 작품은 이미 한 세트에 9000만원이 넘게 팔리고 있다. 그의 작품은 2005년 강원도 간현의 조그만 화랑에서 순수한 애호가들에게 200만원 선에 팔린 작품이었다. 미술시장에서 투자는 없다. 미술품 컬렉션은 작품을 다시 한번 탄생시키는 과정이다. 컬렉션이 되지 않으면 작품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다. 배경과 유명세에 현혹돼 ‘투자’를 해서는 안 된다. 안목과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컬렉션의 가장 든든한 자본이다.



서연종 하나은행 삼성역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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