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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서민 우대” … 은행, 1년 새 대출 문턱 높여

중앙일보 2011.12.15 00:35 경제 8면 지면보기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김모(39)씨는 최근 몇몇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다 실패했다. 신용등급이 낮고 소득이 불규칙해 대출을 내주기 어렵다는 게 은행 측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들 은행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김씨에게 대출을 받으라고 권유했었다. 창구 직원은 “올 들어 위험 관리가 강조되면서 대출심사가 크게 강화됐다”고 미안해했다. 김씨는 결국 금리가 연 20%에 가까운 저축은행 대출을 받았다.


경기침체 계속 … 돈줄 죄는 금융사

 

중산층과 서민이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기가 더 힘들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친서민’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은행 등 금융사가 일제히 ‘우량고객 선별’에 나섰기 때문이다.





 14일 개인신용정보사인 코리아크레딧뷰로(KCB)의 ‘개인신용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올 9월 말 현재 전체 금융권 대출잔액 중 상위등급(1~3등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1년 전 33.7%에서 35.9%로 커졌다. 올 9월 말까지 모든 금융권에서 이뤄진 1000만 건의 대출을 분석한 결과다.



반면 4등급 이하인 중간 및 하위등급 비중은 그만큼 축소됐다. 금융회사가 신용이 좋은 우량고객 위주로 대출을 늘렸다는 얘기다. 햇살론 등 대대적인 서민금융 확대에도 불구하고 7등급 이하의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비중(5.1%)은 1년 전과 차이가 없었다. 중간등급(4~7등급) 대출 비중은 2.1%포인트나 감소했다.



업권별로는 특히 보험과 카드사가 하위등급 고객에 대한 대출 비중을 많이 줄였다. KCB 변동준 책임연구원은 “글로벌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금융사들이 부실 가능성이 작은 고신용자 위주로 대출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은 고객의 평균 신용등급도 일제히 상승했다. 고객의 신용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등급이 낮은 고객을 많이 솎아냈기 때문이다. 은행권의 경우 대출고객의 평균 신용등급이 지난해 9월 4.55에서 올 9월 4.46으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카드론은 6.21에서 6.17로, 보험은 4.96에서 4.79로 평균 신용등급이 각각 상승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신용등급이 높지 않은 고객이 은행에서 저축은행이나 캐피털, 대부업체로 밀려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경기 전망이 나빠지면 금융회사가 서민부터 내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렇다고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높아진 것도 아니다. 가계의 상환 능력이 악화하면서 빚을 제때 갚지 못하는 고객이 계속 늘고 있다.



가계 소득 중 원리금 상환에 쓰는 돈의 비율인 총부채상환비율(DTI)은 지난해 3분기 평균 29%에서 올 3분기 32.1%로 급등했다. DTI 비율이 40%를 넘는 고위험 대출 비중도 15.8%에서 18.2%로 상승했다.



금융권 전체의 연체율은 지난해 3분기 1.11%에서 올 3분기 1.26%로 뛰어올랐다. 특히 올 들어 대규모 영업정지 사태가 일어났던 저축은행(14.32%)과 농·수협, 신협 등 상호금융(2.75%)의 연체율이 높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전체적으론 아직 안정권이지만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사의 연체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하위등급 고객의 연체율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은행(13.5%)·상호금융(16.8%)·저축은행(38.9%) 등 모든 업권에서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변 책임연구원은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밀려나는 중하위 등급 고객이 많아지고 남아있는 고객의 대출 상환능력도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전체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하면서도 중산층과 서민이 금융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힘든 과제가 내년에 기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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