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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의 여론女論] ‘수요집회’ 기록 유감

중앙일보 2011.12.15 00:00 종합 37면 지면보기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교수
“싸움이 처창가열(凄愴苛烈)하여짐에 따라서 남자는 제1선의 군무에 또는 전쟁에 직접 필요한 중요산업부문으로 동원되어 차츰 근로자원이 질과 양에 있어서 부족하여지고 있다. 이때에 남자를 대신해서 여자들은 용감하게 직장으로 진출하여 생산증강에 돌격하는 것은 가장 숭고한 의무이다.(…)따라서 부인의 힘을 급속히 동원시켜 근로화시키고 생산화시키고 전력화(戰力化)시킴은 긴급한 전국(戰局)에 비추어 절대로 필요하다. 남자들은 이미 징용을 실시하여 철저히 그 근로력을 발휘시키고 있으므로 여성들의 근로력도 더욱 적극적으로 금후 동원시켜야 할 것이다.”(‘거룩한 황국여성의 손, 생산전(生産戰)에 남자와 동렬’, 『매일신보』, 1944.8.26)



 1940년대에 여자정신대가 필요한 이유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답변 내용이다. 조선인에 대한 민족적 차별을 당연시 여기던 일제는 전시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급한 마음에 조선인들까지 ‘황국(皇國)’의 일원으로 호명하여 전쟁터로 끌어들였다. 그들은 특히 조선여성들에게까지 ‘일할 수 있는 자는 남녀를 구별할 것 없이 모조리 멸적(滅敵) 생산전사가 된다는 숭고한 국민개로(國民皆勞)의 정신’을 내세우며 일본제국을 위해 몸 바칠 것을 요구했다.



 위 기사의 제목에서부터 일제의 이러한 불순한 의도가 담긴 꼼수가 눈에 띈다. 조선 여성을 ‘황국여성’이라며 일본인과 대등한 국민으로 치켜세우고 있으며, ‘남자와 동렬’에 놓음으로써 남녀평등을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탕발림’을 통해 조선총독부는 조선인 여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려 했다. 뿐만 아니라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런 식으로 근로정신대 명목으로 모집된 조선 여성들의 일부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기도 했다.



 어제로 1992년부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들에 대한 사죄와 진상 규명 등을 촉구하며 열어 온 ‘수요집회’가 1000회를 맞았다. 수요집회는 단일 사안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는 집회의 기네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은 집회 참가자들의 끈기와 집념에 대한 경외심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한 개탄의 심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대단하지만 달갑지 않은 기록이다.



 그동안 약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한국 정부에서 공식 인정된 피해자 234명 중 생존해 계신 할머니의 수는 63명에 불과하게 되어버렸다. 13일에도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 이 같은 사태에 대해서는 배상과 사죄를 거부하고 있는 일본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노력을 보이지 않은 한국 정부도 책임을 져야 한다. 한시가 급하다. 시간이 흘러 이 땅에 피해자가 남아 있지 않게 됨으로써 문제를 덮어버리려는 비겁한 속셈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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