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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나가수’ 있는데 ‘나판사’ 왜 없나

중앙일보 2011.12.15 00:00 종합 39면 지면보기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
요즈음 자기 정체성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말들이 유행이다. 가수인 사람은 ‘나가수’라고 하고 꼼수인 사람은 ‘나꼼수’라고 하는 세상이다. 하기야 너나 할 것 없이 커밍아웃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도 아니고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이다. 꼼수인 주제에 ‘나꼼수’라고 하지 않고 ‘나가수’라고 한다든지, 가수인 사람이 ‘나가수’라고 하지 않고 ‘나꼼수’라고 한다면 얼마나 헷갈리는 처신일까.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선 판사이면서도 ‘나는 판사다’라고 소신 있게 말하는 목소리가 광야에서 부르짖는 소리만큼이나 외롭다. 오히려 판사이면서도 ‘나정치인’ ‘나연예인’이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요란하다. 과연 판사는 어떤 직책인가. 인간의 유무죄를 판단할 뿐 아니라 형량까지 가늠하는 엄숙한 직책 아닌가. 솔로몬의 지혜나 다니엘의 혜안과 같은 것을 갖지 못한 인간이 다른 사람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죄를 지어도 죄가 있다고 자백하는 경우는 별로 없고 큰 죄라도 작은 죄인 양 꾸민다. 반대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무죄를 확신하기에 자신의 죄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애써 노력하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유무죄를 가늠하는 것이 힘들고 엄숙한 일이기에 판사가 지향해야 할 아이콘이 있다면, 바로 ‘정의의 여신’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정의의 여신을 ‘디케(Dike)’라고 불렀고 로마인들은 ‘유스티티아(Justitia)’로 불렀는데, 한결같이 이 여신은 스스로 눈을 감고 한 손에는 저울을, 또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저울을 들고 있는 것은 죄의 무게를 달기 위함이고 칼을 들고 있는 것은 죄지은 사람을 벌주기 위함이다. 그런데 왜 유독 눈을 감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당사자의 얼굴을 보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판결하겠다는 비장한 의지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바로 눈을 감은 ‘정의의 여신’이야말로 판사들의 로망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판사들은 어떤가. 저울도 들고 있고 칼도 들고 있는데, 눈만은 감고 있지 않다. 갑갑해서일까. 아니면 세상 돌아가는 사연이 궁금해서일까. 여신도 아닌 인간이 세상일에 온갖 참견을 하면서 같은 인간의 유무죄를 판단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일부 판사는 항변한다. 판사도 생각이 있고 또 입도 있는데, 왜 가만히 있어야 하느냐고. 표현의 자유가 있는데 왜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해 말을 해선 안 되느냐고. 



 맞다. 판사도 생각이 있고 입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일반인들과 달라야 하는 것은 일반인들은 눈을 감을 이유가 없지만 판사들은 눈을 감을 막중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동맹국과 FTA를 맺으면 매국이 되고 동맹국의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고 믿을 정도로 뼛속까지 반미인 판사라고 해도 ‘눈뜬장님’이나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재판의 공정성 때문이다. “한·미FTA로 나라와 서민을 팔아먹었다”고 비아냥거린 판사가 최근 민노당에 당비를 낸 전교조 교사에 대해 무죄라고 했으니 그 판결의 공정성을 어떻게 믿겠는가. 스스로 눈을 감지 않고 입을 닫지 않았기에 부메랑이 됐고 자업자득이 된 것이다. 



 이미 2500년 전 아테네의 데모스테네스는 흥미롭게도 재판관에게 그들이 재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누가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법이 그렇다고 스스로 답한다. 하지만 법이 어떻게 그런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법이라고 하는 것은 누군가 불의의 희생자가 되어 도움을 청했을 때 곧장 달려오는 119구조대는 아니다. 그런 구조대와는 거리가 먼 창백한 문서에 불과한 게 법 아닌가. 그래서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까운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법의 힘을 행사하는가. 그것은 판사가 공정한 재판을 하기 위해 스스로 눈을 감고 입을 닫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눈을 감고 입을 닫는 것이야말로 판사가 법의 힘을 행사하고 법이 판사의 안전 귀가를 보장해 주는 비법이다. 그래야 판결에 불만을 품고 판사 집 근처에서 화살을 날리는 석궁교수가 생기지 않는다. 



 그럴진대 판사도 생각이 있고 입이 있다고 강변하지 말라. 또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외치지 말라. 정의의 여신도 눈을 감고 말이 없는데, 왜 유독 한국의 판사들만 눈을 뜨고 말을 해야 하나. 가수는 입을 연다. 그래야 노래가 되기 때문이다. 꼼수도 입을 연다. 그래야 온갖 소문을 퍼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사는 눈을 감고 입을 닫아야 한다. 그래야 공정한 재판이 되기 때문이다. 눈을 뜨고 입을 여는 판사가 ‘나판사’라고 할 수 있는지 ‘애정남’까지 부를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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