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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사형수

중앙일보 2011.12.14 00:00 종합 37면 지면보기
옛날에는 사형을 판결할 때 대시(待時)와 부대시(不待時)로 나누었다. 대시는 때를 기다려 집행한다는 뜻이다. 춘분(春分)부터 추분(秋分)까지는 만물이 생장하는 기간이므로 이때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시다. 부대시는 때를 기다리지 않고 사형을 집행하는데 십악죄(十惡罪) 등이 여기 해당한다. 『대명률(大明律)』 ‘십악(十惡)’조는 ①모반(謀反) ②모대역(謀大逆) ③모반(謀叛) ④악역(惡逆) ⑤부도(不道) ⑥대불경(大不敬) ⑦불효(不孝) ⑧불목(不睦) ⑨불의(不義) ⑩내란(內亂)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크게 국가보안법과 가정 파괴범죄가 해당한다. ①모반(謀反)은 사직을 위태롭게 하는 범죄고, ②대역은 종묘·산릉·궁궐을 모해하는 범죄다. ③모반(謀叛)은 적과 내통하는 것이고, ⑥대불경은 어보(御寶) 위조 등이고, ⑨불의는 백성이 지방관 등을 살해하는 행위로 요즘으로 치면 모두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한다. ④악역은 자신이나 부인의 조부모·부모를 살해하려고 모의하거나 구타하는 행위이고, ⑤부도는 일가 살해범이고, ⑦불효는 자신과 부인의 조부모·부모 등을 저주하거나 꾸짖는 범죄고, ⑧불목은 친척을 살해한 범죄며, ⑩내란은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첩과 간통하는 행위로 모두 가정파괴범에 해당한다.

 십악은 선비족(鮮卑族)이 세운 북제(北齊)에서 『북제률(北齊律)』 ‘중죄십조(重罪十條)’로 법제화한 이후 수(隋)·당(唐)을 거쳐 송(宋)·원(元)·명(明)·청(淸) 등 역대 왕조가 계승했고, 조선도 형법으로 준용했다. 십악은 대사면에도 포함되지 않았지만 사형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기에 극도로 신중하게 판결했다. 조선은 태종 때부터 형조·의정부·국왕을 거치는 삼심제를 법제화했고, 세종은 재위 19년(1437) 사형수를 여진족 진영에 보내 정보를 습득해오면 죄를 속(贖)해 주기도 했다. 『고려사』 문종 10년(1056) 8월조는 임금이 내외의 사형수를 판결했으므로 정전(正殿)을 피하고 소선(素膳)을 들었으며 음악을 철폐했다고 전하고 있다. 사형수가 발생했다는 자체가 정사 잘못이라는 자기반성이다.

 중국에서 2003년 사형당한 25세 여성의 처형 직전 사진이 화제다. 애인의 꾐에 빠져 마약 몇 번 운반한 죄로 사형 당했다니 어이가 없다. 한국 해경 살해범에 대해 중국 정부에서 인도주의적 조치를 요구했다는 소식이 겹친다. 한국 정부는 공안(公安) 살해범에 대해 중국에서 어떤 인도주의적 조치를 취한 전례가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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