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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차의 세상읽기] 버마도 빗장 여는데 … 북한은

중앙일보 2011.12.14 00:00 종합 37면 지면보기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미국의 버마(또는 미얀마)에 대한 정책이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1962년부터 변화가 없었던 워싱턴과 네피도(버마의 행정수도)의 관계는 이 외진 동남아시아 국가에 대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역사적 방문으로 분수령을 맞게 됐다. 클린턴 장관은 지난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이 나라를 방문한 미 국무장관이 됐다. 그는 이 나라의 테인 세인 대통령과 야당 지도자이자 민주 인사인 아웅산 수치 여사를 만났다. 방문 목적은 이 나라가 정치 개혁의 바람직한 신호를 보낸 것을 지지하고 관계개선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클린턴은 “미국은 버마와 동반자가 되고 싶다. 버마가 더욱 민주화되고, 모든 정치범을 석방하며, 오랫동안 계속됐던 종족 간 충돌을 종식하기 위해 비록 어렵지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을 시작하고, 자유롭고 공정하며 신뢰할 만한 선거를 치른다면 우리는 함께 일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러스트=강일구]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북한만큼 고립된 버마가 미국과 관계개선에 나서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다. 평양이 아닌 네피도에서 이런 일어 벌어진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는 한국인이 많을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미국과 버마의 해빙을 가져온 가장 중요한 요인이 미국 전략의 변화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데릭 미첼 국방부 아태 담당 수석 부차관보를 버마 특사로 지명했음에도 미국은 정책적 패러다임에서 극적 돌파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반대로 미국의 관계개선 제안은 버마 내부에서 온 변화에 대한 응답 차원에서 이뤄졌다.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들이 갑작스럽고 예측 불가능했다는 점에 동의한다. 20년 만에 치른 첫 선거에서 군사정권이 후원하는 정당이 집권한 뒤 군정 출신인 테인 세인 대통령은 지난해 아웅산 수치 여사와 직접 대화했고, 사회 통제를 상당 부분 완화했으며, 몇몇 정치범을 석방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버마 측은 이렇게 미국보다 더 많은 획기적 변화를 이뤘다. 그 원인에 대해 일부 전문가는 ‘외부 세계에 눈뜬 버마 장성들’의 역할을 꼽았다. 이들은 해외여행 뒤 자기 나라가 얼마나 뒤져 있는지를 깨닫고 시대착오적인 고립보다 국제사회와 더 많이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둘째, 아웅산 수치 여사의 존재 때문에 외교적 돌파구 마련이 용이했다는 점이다. 버마 정권은 이 민주 지도자에게 관심을 보이며 접근함으로써 미국과 이 나라의 개혁을 원했던 세계에 신뢰할 만한 신호를 보낼 수 있었다. 오늘날 미국의 정책은 아웅산 수치 여사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그가 군정 관련 인물과 만나줌으로써 가까운 장래에 워싱턴이 테인 세인 정부와 접촉하게 된 것이다.



 북한은 이와는 지극히 대조적이다. 첫째, 우리가 알기론 북한에는 자기 나라가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어 정치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장군들이 없다. 외부 세계에 눈뜬 계층은 사실 냉전 이후가 아니라 냉전 전성기에 많았다. 인민군 장성들과 당 간부들은 특히 동독과 루마니아를 포함한 동유럽과 옛 소련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다. 북한의 현재 세대는 이론의 여지 없이 역사상 가장 고립적일 것이다.



 둘째, 지금 북한에는 미국과 접촉하려고 하는 상징적 민주투사가 없다. 미국에 진짜 개혁 의도가 있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인물 말이다. 평양 정권은 반체제 인사나 반정권 활동가들의 등장을 신중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막아왔다. 버마의 아웅산 수치나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하 김대중처럼 저항의 상징으로 이름을 알릴 만한 인물이 북한에 등장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지원을 끌어들일 구심점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버마의 개방 시험이 북한에서 똑같이 나타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 다른 상황은 중국에 흥미로운 딜레마를 안겨줄 것이다. 만일 중국 정부가 북한 개혁을 촉진하기로 마음먹고 이를 성공적으로 이룬다면 이 정권에 대한 영향력만 잃게 된다는 딜레마 말이다. 중국은 북한 군부와 독자적 접촉이 가능한 유일한 나라다. 버마의 사례에 따른다면 중국은 가능한 한 많은 북한 인민군 장성을 나라 밖으로 불러내 중국 도시들을 방문하게 해서 이 핵심 인사들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외부 세계에 눈뜬 버마 장성들처럼 말이다. 이는 북한에 덩사오핑(鄧小平)식 개혁·개방 노선을 따르라고 주문했던 중국의 오랜 전략과도 완전히 일치한다.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980년 이후 중국 방문 내용을 추적 조사했다. 중국이 이 북한 지도자를 데려갔던 장소(즉, 컴퓨터·휴대전화·자동차·광섬유 공장)들을 살펴보면 김 위원장의 비개혁적 행동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아마 중국은 김정일이 아니라 현재 김정은과 가까운 인민군 장군들을 목표로 이 장소들을 고른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런 전략을 택할 경우 중국의 딜레마는 북한에 개혁을 촉구하기 위해 복잡하게 얽히면 얽힐수록 평양에 대한 영향력을 잃을 가능성도 그만큼 더 커진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중국처럼 큰 나라의 그늘에 있는 정권은 어떤 경우에도 조만간 중국 패권에 대항하는 울타리를 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버마는 여기에 완벽히 들어맞는 사례다. 미국과 버마의 관계 회복의 셋째 요인은 버마 정부의 개혁 정책도, 아웅산 수치 여사의 연금 해제도 아니다. 미국을 끌어들여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양곤(버마의 옛 수도)의 희망이 그것이다. 오늘날 북한은 중국의 영향권 안에 있다. 이러한 상황이 불편해지면 북한은 조만간 미국과 접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미얀마라는 나라 이름은 군사정권이 만든 것이라 미국 정부는 버마라는 옛 국호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미얀마로 표기하지만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국장과 6자회담 미 차석 대표를 지낸 필자가 버마로 써달라고 요구해 그대로 표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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