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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빛깔] 뜨개질 아줌마 손성숙씨

중앙일보 2011.12.13 04:04 2면 지면보기
손성숙씨가 움켜 잡은 실과 바늘은 병마와 싸우는 그에게 고통을 잊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자 길이다.



오색실과 바늘 쥔 거친 손 … 넉넉하지 않아도 행복하다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에 사는 손성숙(57)씨는 하루 종일 뜨개질을 한다. 버스 안, 기차 안에서도 그의 손에서 코바늘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동네에서 ‘뜨개질 아줌마’로 통하는 그가 뜨개질을 시작한 것은 40년 전. 10살 무렵부터 봐온 솜씨 좋은 외사촌 언니들 덕분이다. 장갑, 목도리, 옷을 척척 짜내는 것을 보고 욕심이 나 어깨 너머로 솜씨를 베껴 냈다. 그가 완성한 뜨개질은 다가동 차돌고개에서 유명했다. “꼼꼼히 잘 뜬다”며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 대단했다. 뜨개질로 용돈을 벌기 시작해 넉넉지 않은 살림에 힘을 보탰다. 그때부터 쓰던 몇 권의 뜨개질 책은 지금도 그에게 가보나 다름없다.



 4년 전 사고로 다리를 다친 손씨는 입원을 해서도 손을 그냥 놀리지 않았다. 오색실이 순식간에 지갑이 되고 인형이 되니 어린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밝은 성격 탓에 ‘명랑 환자’라는 애칭도 붙여졌다. 퇴원 후 지속된 후유증으로 담당의사에게 고통을 호소했는데 ‘제일 잘하는 게 뭐냐’고 물어왔다. 단박에 ‘뜨개질’이라고 답한 그에게 명진단이 내려졌다.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면 통증을 잊을 수 있으니 뜨개질을 하라”고 했다.



 복합통증 증후군과 외상 증후군 병명을 얻은 그였지만 롯데마트 쌍용점 앞 노상에 좌판을 벌였다. 이런 확고한 결심 없이는 병을 이겨내지 못할 것 같았다. 가족에게는 목욕탕에 간다고 핑계를 댔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고 남편과 아들뿐만 아니라 동네가 난리가 났다. 길에 앉아 있는 초라한 행색에 “왠 청승이냐, 몸도 아픈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오갔다. 하지만 그는 “내가 최고로 잘할 수 있는 일이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러던 중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잘 돼가던 남편 사업이 좌절을 맛봤다. 먹고 사는 문제가 급선무였던 그는 뜨개질을 본업으로 우회했다. 처음 좌판을 벌일 때 쭈뼛했던 것도 사라졌다.



 여장군의 기질이 다분했던 그는 예전에 수퍼우먼이었다. 쌍용3동 통장, 학교 자문위원, 급식위원, 상담사로 일하며 고민을 해결해 줬다. 남편과 함께 급식소 봉사와 시설 봉사활동도 활발히 했다. 그래서인지 그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이제 그를 찾아온다. 도움을 줬던 학생이 어엿한 사회인이 돼 “너무 늦게 찾아와 죄송하다”며 인사를 할 땐 눈물이 쏙 빠지기도 했다. 만원짜리 지폐를 살짝 놓고 가는 사람, 따뜻한 어묵과 떡볶이를 사다 주는 칼갈이 할아버지, 방석 대신 큰 깡통을 가져다 주는 맘씨 좋은 아저씨도 있다. 한 달 약값을 일주일로 나눠 받는 주변 약국도 그에겐 큰 힘이 되고 있다. 이처럼 따뜻한 배려와 사랑이 그를 다시 일으켰고 그의 가정을 살렸다. 그래서 수입 외적으로 들어오는 돈은 따로 모아 꼭 필요한 사람에게 쓰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그는 “주변 수예방에 피해가 갈까 싶어 늘 노심초사다. 배우고 싶다는 사람이 있을 때는 꼭 수예방을 이용하라고 권한다. 단 장애인이나 근처 나사렛대 학생들에게는 용돈이라도 벌 수 있게 가르쳐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보이지 않으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속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는 그를 사람들은 좋아한다. 그는 자신을 ‘말만 풍년’인 사람으로 비유했다. “노점이다 보니 행인들한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어요. 대형마트 앞에서 자리를 잡은게 항상 미안해서 장은 꼭 마트에서 봐요. 아픈 것도 잊고 작게라도 주위 분들을 도울 수 있으니까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손씨는 언제나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산다. 수세미, 핸드폰 고리, 동전지갑 뜨기는 누워서 식은 죽 먹기다. 스웨터, 조끼, 모자, 가방도 그의 손에서는 단박에 만들어진다. 하루한 두개 팔 때도 있지만 장애인, 할머니, 아이들한테는 후한 인심을 쓴다. 왔던 손님이 또 오고 호기심에 구부리고 앉아 뜨개질 하는 모습이 측은해 보여 이것저것 사가기도 한다. 그는 “많지는 않지만 이웃을 돌아보며 살고 있다. 맨 바닥에 앉아 뜨개질 하는 모습을 짠해 하는 분들이 있는데 안 그러셔도 된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속내를 털어 놨다. 40년 된 스웨터를 지금도 입고 다니는 그는 결혼을 앞둔 조카를 위해 스웨터를 짜고 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태가 나는 선물은 못할 것이 뻔해 직접 짠 겨울 옷을 선물하기로 맘먹었다. 그는 비록 길거리 좌판이지만 손뜨개 명장이라 자부한다. “잘 자라 앞길 개척해 나가는 아들에게 고마움이 큽니다. 그래서 지금 하는 일을 맘 편히 할 수 있어 가장 행복하죠. 오늘도 뜨개마당에 가는 것이 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걸작품을 날마다 완성해 나갈 겁니다” 말을 하는 그의 표정에 함박 웃음이 가득했다.



이경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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