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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다시 스티브 잡스를 생각한다

중앙일보 2011.12.13 00:37 종합 38면 지면보기
이철호
논설위원
스티브 잡스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인물은 인물이다. 그의 전기를 보면 잡스는 1982년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에 뽑히리라 굳게 믿었다. 막판에 그의 어두운 사생활을 눈치챈 타임은 부랴부랴 표지 인물에 애플 컴퓨터를 대신 올려버렸다. 좌절한 잡스는 눈물을 흘렸다. 그런 그가 영면한 지 두 달 만에 다시 타임의 올해의 인물 후보에 올랐다. 만약 잡스가 뽑히면 사후(死後) 인물로는 사상 처음이다. 그와 아인슈타인을 비교하며 “천재냐 아니냐”고 입씨름하는 것도 부질없는 짓이다. 서로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여성 속옷 회사인 ‘빅토리아 시크릿’의 레슬리 왁스너. 그는 ‘여자의 마음을 훔친 남자’로 유명하다. 꽁꽁 숨겨온 란제리를 과감히 바깥으로 노출시켰다. 비밀을 슬쩍 내보이고 싶은 여성의 숨겨진 마음을 자극한 것이다. ‘보이는 속옷’은 삽시간에 패션이 됐고,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란제리 시장이 열렸다. 대성공이었다. 그럼에도 왁스너는 자신을 결코 천재로 여기지 않았다. “내가 창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성 브래지어를 만들지도 않았다. 거들을 처음 발명한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 “다만 그저 다른 시각을 지녔을 뿐”이라 했다. 잡스도 똑같은 인물이 아닐까 싶다. 생각이 다른 것이다.



 우리 사회가 청년 실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30세대를 달래느라 온갖 콘서트로 북새통이다. 하지만 그들을 위로하고, 소통만 잘하면 될까. 무리해서라도 일자리만 늘린다면 분노를 다스릴 수 있을까. 누구의 책 『닥치고 정치』처럼 투표로 정권만 바꾸면 신천지가 열리는 것일까. 한마디로 만병통치약은 없다. 보수진영이 “청년 백수가 무슨 벼슬이냐”고 다그치면 화만 돋울 뿐이다. 진보진영의 달콤한 유혹은 당의정(糖衣錠)에 지나지 않는다. 청년 실업은 이념이 아니라 경제 문제다. 지구적 범위의 3과잉(과잉공급·과잉부채·과잉경쟁)이 풀리지 않는 한 우리만 용뺄 재주는 없다.



 다시 한번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는 잡스의 표어(標語)를 떠올렸으면 한다. 지난달 7일 손사탐(메가스터디 손주은 대표)도 신문 인터뷰에서 똑같은 말을 했다. 사교육의 얼굴인 그는 한때 “공부만이 너희를 구원하리라”며 2030세대의 정신세계에 압도적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가 최근 인터뷰에서 “그때는 생각이 모자랐다. 더 이상 공부는 기득권층 뒷다리만 잡고 편하게 살자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고해성사(告解聖事)를 했다. 손사탐은 “이제 ‘깽판’도 좀 치고, 남들이 안 가는 다른 길로 치고 들어가라”고 주문했다. 생각을 바꾸라는 것이다.



 세계 산업사를 둘러보면 위대한 기업들은 대개 위기의 절정에서 탄생했다. 대공황을 전후해 IBM·모토로라·캐논이 줄줄이 세워졌고,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오일쇼크가 절정이던 1970년대 중반 설립됐다. 굳이 대기업만 선망하며 주눅들 필요도 없다. 요즘은 시각의 차이가 기업의 갑-을 관계마저 뒤바꾸는 세상이다. 대표적 사례가 일본의 6조원짜리 초대형 제휴다. 의류업체 유니클로가 새로운 옷을 기획하면, 덩치가 훨씬 큰 도레이가 군소리 없이 개발부터 생산까지 도맡는 것이다. 유니클로의 한발 앞선 시각에 도레이가 한 수 접은 것이다.



 지금 기성세대가 무슨 이야기를 한들 2030에겐 ‘공자왈 맹자왈’로 들릴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미안하지만, ‘잡스 왈(曰), 게이츠 왈(曰)’로라도 대신하고 싶다. 빌 게이츠는 98년 “가장 두려운 상대가 누구냐”는 질문에 한참 고민했다. 돌아온 대답은 “어딘가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전혀 새로운 뭔가에 매달려 있을 젊은이”였다. 잡스의 스탠퍼드대 졸업 연설의 마지막도 기억했으면 한다. “Stay hungry. Stay Foolish.(현실에 안주하지 말라. 무모한 도전을 두려워 말라)” 아무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싫더라도 이런 좋은 말(言)은 그냥 무관세로 수입했으면 한다. 어쩌면 청년실업의 처방전이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올해의 인물에 꼭 잡스가 뽑혔으면 좋겠다.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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