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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 남북기본합의서 정신 되살리자

중앙일보 2011.12.13 00:00 종합 37면 지면보기
이석범
변호사
꼭 20년 전인 1991년 12월 10일부터 13일까지.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리고 있던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는 남과 북의 대표들이 협상 타결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극심한 이견대립을 보여왔던 ‘불가침의 보장조치’ 조항과 ‘정전체제의 남북간 평화체제로의 전환’ 조항은 타결이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11일 밤 일찍 잠에 든 임동원 대표는 갑작스러운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깨 ‘지금 자신의 방으로 와 달라’는 북의 최우진 대표의 요청을 받고 새벽 2시까지 비공식 심야협상을 벌였다. 이후 몇 차례의 실무대표회담을 거쳐 마침내 1991년 12월 13일 오전 9시 서문과 4개장 25개 조항으로 구성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정식 채택됐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을 향한 ‘기본 틀’이라는 점, 제3자의 개입 없이 남북 간에 공개적인 협의를 거쳐 채택·발효된 최초의 공식 문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서문에서 남북관계를 민족내부 특수관계로 규정하고 서명란에 남북한의 정식 국호를 사용함으로써 남북한이 상호 체제 인정·존중을 약속했다는 사실은 더욱 그렇다.



 분단 후 첫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2000년 6·15 공동선언은 남북기본합의서의 합의사항 가운데 실천 가능한 최소한의 부분이었다. 2007년 10·4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도 마찬가지였다고 볼 수 있다. 발효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사문화된 남북기본합의서를 되살리고자 하는 것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밝은 광장으로 나가기를 희구하는 데에서 비롯한다. 남북관계의 되돌아간 길에서 다시 화해와 번영의 길로 나가는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 즉 남북기본합의서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수밖에 없다. 그 길은 남과 북 사이에 체결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대해 법 규범성을 명확히 부여하는 데서 시작된다. 남북기본합의서의 의미와 가치를 중시할 때 비로소 남북은 공히 새로운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한 발걸음을 구체화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석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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