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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세상에서 하나뿐인 샌들

중앙일보 2011.12.13 00:00 종합 37면 지면보기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건축학
도쿄의 쇼핑가(街) 오모테산도에서는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신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연예인이 그의 브랜드 로고가 박힌 옷을 입거나 핸드백을 들고 드라마에 출연한 것만으로 화제가 될 정도로 웨스트우드의 유명세는 대단하다. 하지만 그의 디자인이 처음부터 상업적인 것은 아니었다. 안전핀, 면도날, 자전거 체인을 단 넝마 같은 ‘펑크룩’으로 1970년대 세계 패션계를 흔들었던 그는 70이 넘은 나이에도 파격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의 대표 작품도 굽이 20㎝가 넘는 요란한 하이힐이다. 1993년 이것을 신고 패션쇼를 하던 세계적 모델 나오미 캠벨마저 넘어졌다고 하니 신발로서의 실용성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회 통념을 향한 비판을 미학으로 반전시킨 것이 이 신발의 힘이다.



 반면 보기만 해도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신발이 있다. 지난해 한국 사회를 잔잔하게 흔든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고 이태석 신부는 맨발로 걸어다니는 한센인의 신발을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가난한 아프리카 수단 사람들 중에서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이 신부는 그들의 발을 하나하나 그려서 케냐에 있는 신발공장에 주문을 했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샌들을 신은 뭉툭한 발 모습은 어떤 설명도 수사(修辭)도 필요 없었다. 영화 소개말처럼 “인간이 인간에게 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한 남자의 이야기”는 우리들을 부끄럽게 했다.



[일러스트=백두리]


 패션쇼의 하이힐과 나병환자의 샌들은 비교 대상도 아니고, 또 우리의 일상과는 멀리 떨어진 세계의 이야기다. 하지만 두 가지 신발은 상반된 건축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우선 불합리한 사회에 대해 고민했던 전위 건축가들이다. 그들은 특정 건축주가 원하는 것을 충실히 맞춰주기보다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건축을 택했다. 서양에서 이런 운동이 가장 뜨겁게 달아올랐던 때가 20세기 초반이었다. 그들이 설계한 집은 당시의 기준에서는 생경하고 불편해서 살 수가 없었다. 실제 최고의 근대건축으로 꼽히는 주택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기념관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현실화되었고 보통의 삶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이후 건축계가 사회 문제에 눈을 돌리고 대안을 찾고자 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발언과 참여는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추동력을 잃었다.



 한편 미디어의 화려한 조명이 닿지 않는 곳에서 현실과 묵묵히 마주하는 건축가들이 있다. 세상을 향한 날 선 비판이나 주장보다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다. 미국 남부의 농촌에서는 폐자재를 활용해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짓는 데 일생을 보낸 건축가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폐광촌과 농촌의 독거노인을 위해 10년간 학생들과 집을 짓고 있는 건축가가 있다. 이들이 만든 작고 소박한 집은 건축의 흐름을 주도하지는 않지만 한센인의 샌들처럼 삶을 보듬는다.



 신기에 불편하지만 메시지가 담긴 하이힐,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맞춤형 샌들, 이 두 가지 모델이 모두 건축계에 필요하다. 거대한 자본에 휩쓸려 방향을 잃은 도시 건축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만, 자신을 낮추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샌들과 같은 집을 짓는 사람들도 절실한 때다. 제도를 바꾸는 것은 전자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후자다.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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