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로벌 아이] 아득히 먼 ‘유럽합중국’

중앙일보 2011.12.13 00:00 종합 38면 지면보기
이상언
런던 특파원
유럽은 경계가 모호하다. 대륙별로 구분되는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북미·남미와 달리 유라시아 대륙을 아시아와 공유하고 있어 생기는 일이다. 보통 우랄산맥과 우랄강을 동쪽 경계선으로 삼는다. 하지만 김남일 선수가 최근까지 뛴 톰스크팀처럼 그 너머에 있는 러시아 축구팀도 유럽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할 자격이 있다. 러시아가 유럽축구연맹(UFEA) 소속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이라는 공동체로 경계를 구분하는 것도 마땅치가 않다. 지리적으로 유럽권에 있는 나라는 40개가 넘지만 EU 가입국은 27개뿐이다. 노르웨이나 스위스도 EU 회원국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가입을 거부한 나라들이다. 독일 등의 반대로 EU에 속하지 못한 터키는 자신도 유럽 국가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명백히 EU 소속이면서도 유럽 국가가 맞느냐는 의심을 받는 나라도 있다. 영국이다. 프랑스나 독일에 가면 “엄밀히 말해 영국은 유럽이 아니다”라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까지도 지난달 공개석상에서 “영국은 섬나라여서 유럽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영국은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하기까지 12년 동안 문전박대 설움을 당했다.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이 “영국은 유럽보다 미국에 가까운 나라”라며 번번이 가입을 가로막은 것이었다.



 지난 9일 EU 정상회의로 영국의 ‘유럽 정체성’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영국이 회원국의 재정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EU조약 개정안에 27개국 중 유일하게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발단이다.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EU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거래세 도입에 따른 자국 금융산업의 피해를 막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독일과 프랑스 언론들은 “유로존 경제위기 타개를 위한 고육지책에 영국이 매번 딴죽을 건다”며 성토 중이다. 영불해협을 유럽의 서쪽 경계선으로 여겼던 드골 전 대통령이 옳았다는 조롱까지 나온다. 영국은 ‘왕따’ 신세다.



 EU의 재정 규제 강화안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제안한 것이다. 그는 이를 내세우며 “유럽은 정치적 대통합이라는 목표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합중국’이라는 이상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9일의 회의에서 영국을 제외한 EU 회원국의 정상들은 조약 개정안에 동의(체코 등 3개국은 잠정 동의)를 표시했다. 불만이 있다 해도 경제위기를 해결할 돈줄을 쥐고 있는 독일에 대놓고 반기를 들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 뒤 상당수 나라에서 정당과 언론들의 반발이 시작됐다. 각국 의회의 승인 문제로 조약 개정에 이르기까지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 회의는 ‘하나의 유럽’이라는 원대한 꿈과 ‘개별 국가의 이해’라는 현실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유럽의 통합, 요원해 보인다.



이상언 런던 특파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