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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냄비 근성도 쓰기 나름이다…라면 제맛 내는 양은 냄비처럼 말이다

중앙일보 2011.12.13 00:00 종합 39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올해 교보문고가 취급한 신간은 4만5000여 종인데 하나당 평균 140권씩 팔렸단다. 그렇다면 올 한 해 팔린 책이 630만 권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그중 베스트셀러 100위까지의 판매량이 210만 부가 넘는다. 0.002%의 책이 전체 판매부수의 3분의 1을 차지한 셈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심해진다. 210만 부의 4분의 3이 상위 50위까지의 책들이다. 또 그 4분의 3의 절반이 베스트 1, 2, 3 단 세 권의 책이다.



 좋은 책이 많이 팔리는 건 당연한 이치지만, 이건 좀 심해 보인다. 이른바 ‘냄비 근성’으로 일컬어지는 우리네 극단적 쏠림의 불편한 단면이다. 책뿐만 아니다. 우리 사회의 양은 냄비는 영화나 사교육, 주식시장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라면의 국물 색깔까지 ‘대세’를 따르는 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양은 냄비에 끓여야 제맛이 나는 게 라면이니 말이다.



 오늘날에만 그런 것도 아니다. 단재 신채호의 개탄을 들어보자. “한 사람이 떡장사로 이득을 보았다 하면 온 동네에 떡방아 소리가 나고, 동쪽 집이 술 팔다가 손해를 보면 서쪽 집의 할머니도 용수를 떼어 들이며, 나아갈 때에 같이 ‘와’ 하다가 물러날 때에 같이 ‘우르르’ 하는 사회가 어느 나라 사회냐, 제 흉을 제가 봄이 좀 열없는 일이지만 우리 조선의 사회라고 자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재는 이 땅의 ‘맹종부화(盲從附和)’를 질타했지만 쏠림에도 긍정적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태안 앞바다 유조선 사고 때 오염된 태안 해안을 순식간에 치워낸 100만 명 이상의 자원봉사자도 그랬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자식 손자 돌반지를 내놓아 세계를 감동시킨 시민들이 그랬다. 단재 때 일어났던 국채보상운동 역시 이 사회의 쏠림 덕분 아니었던가.



 침몰 직전의 집권여당에서 초선 의원과 최다선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나왔다. 여야 모두에서 잇따른 움직임도 보인다. 그것이 우리의 뿌리 깊고 저변 넓은 쏠림으로 이어질지 사뭇 기대된다. 이미 쏠림의 두 가지 방향 중 하나는 질리도록 경험한 터다. 저마다 잘났고 똑똑한 사람들이 정치판에만 들어가면 사리당략(私利黨略)이라는 쏠림에 몸을 맡기는 행태 말이다. 정치권 공멸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다른 방향의 쏠림이 있어야 할 때다.



 앞선 불출마 선언의 사연과 이유는 제각각 다르다. 하지만 기왕에 쏠린 움직임에 묻어가는 것도 삶의 지혜 아니겠나. 사리당략 좇은 거 말고는 한 일 없는 의원나리들한테 하는 말이다. 원래 난사람들이니 의사당 말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 책을 써보는 건 어떨는지. 여러 분야에서 좋은 책 많이 나오면 출판계의 고질적 쏠림이라도 나아지지 않겠나. 행여 자서전 같은 거 쓸 생각은 접고 말이다.



이훈범 문화스포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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