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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좀 사라” 꼬시는 레옹, 아니 도라에몽

중앙선데이 2011.12.11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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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의 코소코소 일본문화 : 실사 광고로 등장한 도라에몽

친구들에게 놀림당하고 “도라에몽~도와줘!”를 외치던 소년 노비타(한국이름 진구)는 20년이 흘러도 여전하다. 돈 없고 인기 없는 서른 살의 독신.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시즈카(이슬이)와 모처럼 데이트에 나서지만 버스 놓치고 길 잃고 실수 연발, 결국 시즈카는 멋진 스포츠카를 끌고 나타난 스네오(비실이)를 따라 가버린다. 낙심해 집에 돌아온 노비타는 “도라에몽~, 차를 줘”라고 흐느끼지만 돌아오는 건 “안 돼!”라는 차가운 대답. “왜~?” 도라에몽이 답한다. “면허가 없잖아.” “아, 면허~!” 그리고 멍한 노비타의 얼굴 위로 겹치는 자막, ‘면허를 따자. 펀 투 드라이브, 어게인 도요타(Fun to Drive, Again Toyota).’



요즘 일본에서 화제 속에 방영 중인 도요타의 ‘도라에몽’ 광고 시리즈 중 하나다. 후지코 후지오 원작인 애니메이션 ‘도라에몽’ 주인공들의 20년 후를 실사판으로 꾸민 깜찍한 기획. 출연진이 화려하다. 주인공 노비타는 배우 쓰마부키 사토시가 맡았고, 시즈카는 ‘노다메 칸타빌레’의 미즈카와 아사미가, 얄미운 스네오 역은 자니스 출신 배우 야마시타 도모히사다. 그러나 사람들을 진짜 놀라게 한 건 도라에몽 역의 배우 장 르노다. 파란색 슈트에 방울 목걸이를 달고 도라에몽으로 등장한 장 르노는 어눌한 일본어로 노비타와 티격태격하며 웃음을 선사한다.



이 인기광고의 뒤에는 요즘 일본 자동차업계가 처한 엄혹한 현실이 있다. 버블 붕괴 후 계속되는 내수시장 침체와 더불어 일본 젊은이들이 점점 자동차에 대한 관심을 잃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닛케이신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도쿄 거주 20대의 자동차 보유율은 2000년 23.6%에서 2006년에는 13%로 뚝 떨어졌다. 도요타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20대 중 ‘차를 갖고 싶다’고 답한 비율은 2002년 48.2%였으나 2007년에는 25.3%로 줄었다.



원인으로 취미의 다양화, 대중교통의 완비 등 여럿이 꼽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경제적인 문제다. 노동시장의 악화로 사상 최악의 취업률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일본 젊은이들에게는 20만~30만 엔(약 300만~450만원)씩 들여가며 면허증을 따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실제 필자 주변의 대학생, 대학원생들을 봐도 자동차는커녕 면허증조차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설령 자동차를 사거나 물려받는다 해도 그것을 유지할 만한 여유가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오너 드라이버’에 대한 동경도, 자동차에 대한 관심도 점점 적어지게 되는 것이다.



도요타의 ‘도라에몽’ 광고는 젊은층에 친근한 노비타를 내세워 이런 젊은이들에게 ‘면허도 좀 따고, 자동차도 사라’고 말하고 있다. 심지어 시리즈 3탄에서 노비타는 도라에몽의 ‘어디로든 통하는 마법의 문’을 따라 도쿄 모터쇼에 간다. 12월 2일부터 11일까지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리는 제 42회 도쿄 모터쇼에는 도요타의 소형 스포츠카 ‘하치로쿠’, 닛산의 스포츠카형 전기자동차 ‘에스프로’ 등 각 업체가 젊은이들을 겨냥해 만든 야심작들을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 모터쇼도 20~30대 젊은이들보다는 40대 이상의 중년 남성들로 북적인다 하니, 도요타가 우리의 ‘찌질이’ 노비타에게 너무 어려운 숙제를 맡긴 건 아니었나 싶다.






이영희씨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현재 도쿄에서 공부하고 있다. 아이돌과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을 학업으로 승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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